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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게시글
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네 영혼의 중앙역 외 / 박정대
동산 추천 0 조회 70 09.07.26 22: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네 영혼의 중앙역 / 박정대




키냐르, 키냐르……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음악처럼, 문지방처럼, 저녁처럼
네 젖가슴을 흔들고 목덜미를 스치며
네 손금의 장강 삼협을 지나 네 영혼의
울타리를 넘어, 침묵의 가장자리
그 딱딱한 빛깔의 시간을 지나
욕망의 가장 선연한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네 육체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저녁마다 너를 만나던 이 지상의 물고기 자리에서
나는 왜 네 심장에 붙박이별이 되고 싶었는지
네 기억의 붉은 피톨마다 은빛 비늘의
지문을 남기고 싶었는지
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외로운 몸짓으로
네 몸을 거슬러 오를 때도
내 영혼은 왜 또 다른 생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

생이 더 이상 생일 수 없는 곳에서,
생이 그토록 생이고만 싶어하는 곳에서
부르지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은밀해서 생일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확실한 생이
겨자씨처럼 작은 숨결을 내뿜으며
덜컹거리는 심장의 비밀을 데리고
저녁처럼, 문지방처럼, 음악처럼
네 영혼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Love is in the air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다네
가슴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을 저녁寺 / 박정대


나는 걸어서 가을저녁寺에 당도합니다

한 사내가 물거울에 자신의 낯을 비추어보며 추억을 빨래하고 있는 가을 저녁입니다

잉걸불처럼 타들어가는 개심사 배롱낭구 꽃잎에는 어느 먼 옛날 백제 처녀의 마음도 하나 들어 있을 테지요

저녁 예불을 드리던 개심사 범종 소리는 서른두 번째에서 한참을 머뭇거립니다 마지막 종소리는 가을 저녁寺로 불어오는 바람에게나 내어주고요

가을 저녁寺에 호롱불이 돋는 地上의 유일한 저녁입니다

한 사내가 연못거울에 어두워지는 낯을 비추어보며 끝내 자신이 걸어가 당도할 집을 생각하는 참 고요하고 투명한 가을 저녁입니다

나는 걸어서 가을 저녁寺를 내려옵니다

 

 

 

 

 

 

 

Women in Wheatfield II

 

 

 

아무르 강가에서 /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 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 밑의 어둠
내 머리위의 어둠, 내 늑골이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덥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 제19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

 

 

 

On the Indus River in Kalabagh (Best in Larger View)

 

 

앵두꽃을 찾아서/ 박정대

 

 

 앵두꽃을 보러 나, 바다에 갔었네 바다는 앵두꽃을 닮은 몇 척의 흰 돛단배를 보여주고는 서둘러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으므로 나, 사라져 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다가 후회처럼 소주 몇 잔을 들이켰네 소주이거나 항주이거나 나, 편지처럼 그리워져 몇 개의 강을 건너 앵두꽃을 찾아 산으로 갔으나 산은 또한 나뭇잎들의 시퍼런 고독을 보여주고는 이파리에 듣는 빗방울들의 서늘한 비가를 들려주었네 남악에서 들려오는 비가를 들으며 나, 또 다시 앵두꽃이 피는 항산을 찾아 떠났으나 내 발걸음 비장했음은, 내 마음속으로 이미 떨어져 휘날리는 꽃잎의 숫자 많았음에랴 그리고 나, 문지방에 앉아 문득문득 앵두꽃에 관하여 생각할 때마다 가보지 않은 이 세상의 가장 후미진 아름다운 구석을 떠올리겠지만 앵두꽃을 보기에 그대만한 장소가 이 세상 또 어디에 있으랴 이제사 고요히 철들어 나, 앵두꽃을 보러 그대에게로 가노니, 하늘 아래 새로운 사실은 없고 그 사실 앞에서 앵두꽃이 피지 않는 곳 또한 없음에랴

 

 

 

 

 

 

 

하얀 돛배 / 박정대

 

 

 창밖엔 눈이 내렸네, 하루 종일 눈이 내렸네, 어디에서 부턴가 눈물의 경계를 지난 눈들의 육체, 영혼도 나무들을 떠나는 이 시각에 저 눈들은 다 뭐란 말인가, 물방울이 되지 못한,눈물이 되지 못한 딱딱한 눈들이 쳐들어오는 동안, 산골짜기에서는 어린 나뭇가지들이 뚝뚝 부러졌네, 산짐승들 굴 속에서 폭설이 멎길 기다렸네,

나는, 가스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또다시 물이 끓기를 기다렸네, 눈이 내렸네, 주전자 속에서 폭풍우가 치고 하루 종일 마음이 고요하게 들끓는 동안, 눈은 진눈깨비가 되어 퍼붓다가, 멎고, 하면서 집요하게 애인처럼 내렸네, 이미 초토화된 내 추억의, 삶의 공터 위로.....하루 종일 하얀 돛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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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방송 / 박정대

 

 

 

  긴 방파제를 따라 파도가 치지

 

  파도에 밀려 저녁이 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방송을 시작해

 

  당신은 듣고 있을까, 오로지 당신을 위해, 긴 긴 말레콘을 따라가며 부서지는 파도치는 말레콘 해적 방송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 찬찬이라는 음악과 함께파도치는 말레콘의 풍경이 나오지

 

  그런 말레콘을 따라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걷고 싶었어

 

  아바나의 밤하늘엔 노란색 별들이 떠 있고 우리는 가난한 건물들 사이를 아무 걱정도 없이 걸어가겠지

 

  베로니카, 삶이 가난한 것은 건물들 때문이 아니야

 

  우리는 지금 저녁의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 한 잔의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말레콘에 부서지는 파도의 음악 소리를 들을 수도 있잖아

 

  거리에는 가난한 악사들이 그들의 영혼을 연주하지

 

  선풍기가 없어도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의 가슴을 식혀줘, 겨울에도 우리는 춥지 않아, 베로니카, 당신의 따스한 가슴에

묻혀 잠들 수 있으니까

 

  저녁이 오면 낡고 오래된 말레콘에 앉아서 지나간 혁명이 찬란했다고 말하지는 말자, 삶은 결국 지나갈 테니까, 지나간 삶은 그래서 찬란할 테니까

 

  베로니카, 아직 따스한 내 손을 잡아줘, 당신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나를, 나의 혁명을 추억이라고 말하지 말아줘

 

  아직 내 마음의 말레콘에는 파도가 치고 별빛이 빛나고, 당신과 나는 작은 손전등 하나를 들고도 우리의 낡은 침낭 속으로 스며들 수 있으니까

  침낭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베로니카,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그냥 우리에게 망명해 버리자

 

  나는 지금부터 당신의 말레콘이야

 

  카리브해의 파도를 음악으로 바꿔 밤새도록 당신을 위한 단 하나의 해적방송을 할 테야

 

  당신만 들어주면 돼, 그러면 돼, 나는 밤새도록 당신의 귓가에서

파도치며 출렁일 테니 당신만이 꿈의 주파수로 날 들어주면 돼

 

  베로니카 그러니까 기억해야 해, 꿈속에서도 잊으면 안 돼

 

  사랑해, 그래 여기는 파도치는 말레콘 해적방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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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頭琴 켜는 밤 / 박정대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몽골의 악사는 악기를 껴안고 말을 타듯 연주를 시작한다

장대한 기골의 악사가 연주하는 섬세한 음률,

장대함과 섬세함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모닥불 저 너머로 전생의 기억들이 바람처럼 달려가고,

연애는 말발굽처럼 아프게 온다 

 

내 生의 첫휴가를 나는 몽골로 왔다, 폭죽처럼 화안하게 별빛을 매달고 있는 하늘

전생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던 시간이 지금 여기에 와서 멈추어 있다

 

풀잎의 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결이 인다,

풀잎들의 숨결이 음악처럼 번진다

고요가 고요를 불러 또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그토록 오래 꿈꾸던 사랑에 복무할 수 있다

 

대청산 자락 너머 시라무런 초원에 밤이 찾아왔다, 한 무리의 隊商들처럼

어둠은 검푸른 초원의 말뚝 위에 고요와 별빛을 메어두고는

끝없이 이어지던 대낮의 백양나무 가로수와 구절초와 민들레의 시간을

밤의 마구간에 감춘다, 은밀히 감추어지는 生들

 

나도 한때는 武川을 꿈꾸지 않았던가, 오래된 해방구 우추안

고단한 꿈의 게릴라들을 이끌고 이 地上의 언덕을 넘어가서는

은밀히 쉬어가던 내 영혼의 비트 우추안 

 

몽골 초원에 밤이 찾아와 내 걸어가는 길들이란 길들 모두 몽골리안 루트가 되는 시간

꿈은 바람에 젖어 펄럭이고 펄럭이는 꿈의 갈피마다에 지상의 음유 시인들은

그들의 고독한 노래를 악보로 적어 놓는다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밤은 깊을 대로 깊어, 몸골의 밤하늘엔 별이 한없이 빛나는데

그리운 것들은 모두 어둠에 묻혀버렸는데

모닥불 너머 음악소리가 가져다주던 그 아득한 옛날 

아, 그 아득한 옛날에도 난 누군가를 사랑했던 걸까

그 어떤 음악을 연주했던 걸까 

 

그러나 지금은 두꺼운 밤의 가죽 부대에 흠집 같은 별들이 돋는 시간

地上의 서러운 풀밭 위를 오래도록 헤매던 상처들도 이제는 돌아와 눕는 밤 

 

파오의 천장 너머론 맑고 푸른 밤이 시냇물처럼 흘러와 걸리는데

이 갈증처럼 멀리서 빛나는 사랑이여,

이곳에 와서도 너를 향해 목마른 내 숨결은 밤새 고요히 마두금을 켠다

  

몇 개의 전구 같은 추억을 별빛으로 밝혀놓고 홀로 마두금 켜는 밤

밤새 내 마음의 말발굽처럼 달려가 아침이면 연애처럼 사라질

아득한 몽골리안 루트

 

 

 

 

 

 

* 마두금

  악기의 끝을 말 머리 모양으로 만든, 두 개의 현을 가진 몽골의 전통 현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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