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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白手)’로 ‘거듭나기’
익숙지 않은 일은 몸에 설은 법인가.
3일째 맞이하는 병원 생활에 며칠째 잠을 설친다.
어제 밤엔
오르는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아직
7명이나 입원해 있는 병실(208호실)인데도, 어떻게 세상 모르게 모두다 단잠들을 그렇게 곤히 잘 수 있는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한 침상,
환경의 변화도 다른 이들에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가 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영양가 없이 내가 너무 작은 것에 민감하고 까탈스러운 탓인가?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심조심 문을 열고 해우소(解憂所)에 들러서 소피를 보고,
간호사들마저도 잠들어 버린 아무도 없는 어스름한 2층 복도를 운동 겸, 시간도 때울 겸해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서성거린다.
1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도 밤새 정지되어 나의 활동공간은 2층 복도로 제한되어 있다.
비상계단이 굳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병동의 잘 정리된 규정이나 질서를 감히 어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秋毫)도 없다.
어제 밤늦도록 병동 앞 대로에는 차량 질주의 소음이 시끄럽고,
잠도 쉬이 오지 않아 늦은 시간에 지기(知己)에게 메시지를 날리며 시름을 달랬었는데......
“야심한 시각, 도로를 달리는 차량 소음에 한잠 수시로 때린 병동 생활로
오늘도 한여름 짧은 밤을 보낼 걱정이 아득하구나~
금식 풀려 저녁에는 3일 만에 흰죽을 맛보니 환장하겠네.
고사리 볶음, 골뱅이 무침, 물김치, 싱거운 된장국 싸그리 비웠네.
이제 겨우 허기를 면하니 그런대로 견딜만하네.
이제 이틀 지났는데, 백수(白手)의 행복을 제어 당한 마지막 밤을 새울 일이 아득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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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오늘 새벽은 그런대로 조금은 한산한 것도 같다.
어제 뉴스에선 모처럼 휴가철 성수기 첫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주차장이라고 아우성이더니만,
난 뜻하지 않게도 번잡한 더위를 피해서 온도 조절 잘 되는 피서지(?)에서
호사(豪奢)를 누리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구나...
새벽 어스름 창 밖으로 내다 뵈는 횡단보도엔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길을 건너는
바지런한 개미들의 일상이 하루의 시작에 분주한 종종걸음들이다.
15년도 전에 을지로 저동 ‘백병원’에 입원하여 전신을 마취하는 대수술을 받았었는데,
오랜만에 또 이렇게 병원신세를 지고 있으니 모든 게 그저 낯설기만 하다.
수술한 첫날은 통증과 부자유스런 행동으로 한없이 버겁기만 하더니,
어제는 제법 활동도 자유롭고 3일째 처음 맛보는 저녁식사로 나온 흰죽이 얼마나 구미가 땡기던지
고사리 볶음이랑 골뱅이 무침이랑 물김치랑 싱겁기만한 된장국이랑 깡그리 비웠었다.
입원하기 전날, 홀로 삼각산을 오르고 느즈막히 하산하는 길에 방앗간마다 유혹하는
잔치국수랑 부침개랑 막걸리랑, 그날따라 유달리 더 그립고 땡기더니만,
그러나 점심부터 금식(禁食)인지라 침만 ‘꼴깍~’ 삼키고 말았는데,
그날 이후 처음 맛보는 그립고 그리운 저녁 밥상이 아니던가!
‘밥맛이 꿀맛’이고, ‘시장이 반찬’이라더니만 모든 것은 궁해야만 그 간절함이 더욱 진한 법인가보다.
비록 식물원 탐방일망정, 소채(蔬菜) 하나가 그리운 시자(侍者)에게는 진수성찬(珍羞盛饌)에 다름 아니다.
문병 온 집사람이랑 맏이와 막내도 한결 밝은 내 표정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겠지만,
서둘러 저녁을 먹여 보내 놓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세상살이거니,
이것도 어쩌면 새롭게 출발한 백수생활의 또 다른 일면인 셈인데,
출발하자 마자 덜컥, 병원신세부터 지고 말았으니,
이것 또한 ‘백수(白手)’로 ‘거듭나기’ 위한 힘겨운 운명이란 말인가?
백수생활 한 달째, 천방지축 앞만 보고 달리며 일상에서 처음 맛보는 자유를 탐닉했더니만,
끝내는 이런 작은 경고가 나의 무지(無知)를 일깨우는가 보다.
스피드광(speed 狂)인 매니아들이,
시속 무제한인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마음껏 질주할 수 있는 것은,
그 가공할 속도를 부드러운 탄력으로 흡수하여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브레이크(break)가
있기 때문이라지.
그렇다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리는 경고도 딱히 나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무한질주(無限疾走)하는 ‘아우토반’의 강력한 브레이크처럼......
'76년 1월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왔던 35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6월 말일을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출근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변화가 아직도 나에게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아마도 나는 ‘압제(壓制)’보다는 ‘자유(自由)’를 더 그리워하는 족속(族屬)인가보다.
이리저리 불러주는 모임에 쫓아다니고 신나는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정년을 기념하는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의욕으로 ‘정년기념문고(停年記念文藁)’ 편집을 시도하였다.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썼던 글들이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여 있으니,
10년 안짝의 잡동사니 사연들일망정 정리하여 기념문고로 출판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듯도 싶었다.
그래서 저장한 파일들을 정리하고 편집과 교정을 보면서 혼자 고군분투(孤軍奮鬪) 했는데,
바쁜 중에도 틈틈이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나는 일이었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어떤 전화는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끝내는 순조롭게 전화가 연결되지 못한 탓에 지인(知人)들로부터,
‘대체 왜 백수가 더 바쁜 거냐?’고 타박까지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야말로 철모르는 망아지 날뛰는듯한 시간은 아니었을까?
양친 성묘를 위해 들른 고향 강릉에서 학교 동기 친구들과의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부터
부산까지 원정간 고교 동기들 전국 모임과 옛 직장동료들과의 홍천강 천렵에 이르기까지~
음주가무로 점철된 첫 2주일 동안 난 주님의 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푸욱~ 절은 채,
백수의 계절에 탐닉했었다.
그런데 기어코 나타난 갑작스런 이상증상(異常症狀).
7월 13일 아침에 화장실에서 끝내 ‘피(血)’를 보고야 말았다.
작년 9월초에 종합검진을 받았고,
백수로 편입되기 전 지난 6월 말에 받은 마지막 종합검진에서도 초기 위염 증세 등
몇 가지 가벼운 증상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판정까지 받았었는데,
이렇게 생각만해도 끔찍한 ‘피’를 보다니?
다방면에 두루 해박하신 산행동지 정사장님과 방배동 대항병원 윤부장님에게 자문을 구하여
비뇨기과
수면내시경으로 대장내시경을 다시 찍고 조직검사를 받는 등 분주한 절차를 다시 거친 결과,
‘대장 용종(大腸 茸腫)과 내치질(內痔疾)’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수술하지 않고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가능하면 칼을 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렇게 읍소해보는데...
나의 무지(無知)가 어이없었던지 한심한 표정으로 내지르는
“용종이 4개나 있는데, 수술 안 하면 큰일나요!”
꽥~~
전국에서도 첫손에 꼽힌다는 박사님의 고견(高見)에 감히 태클을 걸다니?
이렇게 신나던 백수의 천방지축(天方地軸) 날뛰기는 금새 제동이 걸리고,
끝내, ‘강동서울외과’ 병동에 수감(?)되는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동안 동기와 학교 후배 등으로부터 용종(茸腫)이니 선종(腺腫)이니 하며
수술 받은 경험담(經驗談)을 귓등으로 흘려 들으며 남의 얘기로만 여겼더니,
끝내는 내게도 현실로 닥치고 말았구나..
허기사 그 동안 수십 년간을 억수로 퍼부어(?) 댔으니 지금껏 용케도 버텨준 건강이 가상할 따름이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끔찍할 뿐...)
잃어보아야 비로소 소중함을 아는 것이 우리 인간의 무지(無知)이고 때늦은 후회이려니
지금이라도 내린 경고를 나는 감지덕지(感之德之) 여겨야 하리라!
입원하기 전날,
한 달간 정리한 『정년기념문고(‘길 없는 길’을 찾아서)』의 최종 마지막 원고를 제본사에 넘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원고 정리 및 편집과 교정까지 마쳤으니,
한 달간의 노역(勞役)이 주는 첫 기념작인 셈이다.
(‘표지’와 ‘목차’ 디자인을 도와준 ‘OTC’의
퇴원을 하는 대로 ‘완성본’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정사’ 김실장님의 약속을 들으며,
7월 30일 아침 수술대에 올랐다.
생각보다 수술은 간단하여 3일만에 퇴원을 한다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 날 아침이다.
그 동안 정년을 두어달 앞두고 구입하였던
마지막 4권을 병상에서 마저 읽었다.
100여 년 전의 선승(禪僧) ‘경허대선사(鏡虛大禪師)’의 일대기(一代記)를 그린 작품이다.
‘길 없는 길’을 걸었던 영원한 자유인 ‘경허대선사’와 주옥(珠玉) 같은 그의 제자들,
‘수월’ ‘혜월’ ‘만공’ ‘한암’ 대선사(大禪師)님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가진 백팔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나’와 나를 이루는 생각들을 버리고
무념처(無念處)를 찾아 ‘길 없는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나’를 버려야만 비로소 참 마음인 ‘자기’가 드러난다.
많이 버리면 버릴수록 많이 얻는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릴 때 비로소 소중한 것을 얻는다.
완전히 나를 포기하면 완전한 자성(自性)이 드러난다.”
-‘길 없는 길’ 권4. 본문 160 쪽, 여백미디어 刊-
또 이러한 구절이 나의 마음에 둔탁한 쇠 방망이를 내려친다.
“경허의 이러한 일생은 선가(禪家)에서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금언을 떠올리게 한다.”
‘살 때는 온 몸으로 살고 죽을 때는 온 몸으로 죽어라 (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
‘높이 서려면 산꼭대기에 서고 깊이 가려면 바다 밑으로 가라 (高高頂上立 深深海底行)’
-‘길 없는 길’ 권4. 본문 254 쪽. 여백미디어 刊-
작가
희귀한 질병인 ‘침샘암’으로 4년째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출가(出家)를 소원(素願)하실 만큼 불심(佛心)에 심취한 적이 있으셨던 그 분은,
당신이 집필하신 수 백 권의 책 중에서도 이 ‘길 없는 길’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직접 손꼽으셨을 만큼, 천금(千金)에 버금갈 대단한 책이다.
정년(停年) 전에 읽겠다고 작심하고서도 매일매일 되풀이 되는 행사에 탐닉(?)하다가
마지막 4권은 끝내 입원 병동에서 마저 읽게 되었으니 이것도 시절의 인연이란 말인가!
아마,
작심한 것에도 부실한 나의 철없는 방종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릇 모든 일에는 순서(順序)가 있고 결말(結末)이 있으니,
뜻하지 않은 일의 연속도 나에게 한번쯤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여유를 주고 있는 셈인데,
이것도 분명 ‘백수(白手)’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通過儀禮)’가 아닐까?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면 어찌 그 길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지혜를 얻을 수 있으랴!
이제는 천천히 가자.
느리게 느리게 더딘 걸음을 옮기자.
‘길 없는 길’을 찾아서...
‘강동서울외과’ 병동에서 읽는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구절구절(句節句節)이
한없이 편안하고, 정겹고, 여유로우면서도 또 평화롭구나!
1.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으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誓願)이 굳게 되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마군(魔軍)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으로
삼으라’ 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 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원림(園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果報)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본분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에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께서는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菩提道)’를 얻으셨느니라.
-‘길 없는 길’ 권4. 본문 318~319 쪽. 여백미디어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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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머그랬었꾸나.술 안마시겠꾸만
고생했쑤야.
오늘 워킹하는날이라 잘놀았는줄 알았는데
병원신세를 졌꾸만
그래두 수술이잘되었쓰니 참으로 다행이구만
이젠 승영친구 술
방이동 덩넝이언니가
원래 술 많이먹는사람은 대장,위,간을 늘 조심 해야지. 나도 일년에 한번씩 대장 내시경 하면 용정이 2개, 만성 위염으로 위장약을, 술때문?에 간이 안 좋아서 피부병에다~~ 요즘 세월이 아니면 벌써 저세상으로 갔지. 우리 자연산 쾌유를 빌겠네. 그리고 "길없는 길"이 출간되면 ~~~~ 나도 좀 보세.
날더운데 흔적도 없는 수술회복하느라 고생 많습니다. 용종? 그거 잠깐 자고나면 수술 끝낫고 하나도 아프지도 않지요! 며칠 심심한 음식만 먹으면 될거래요~! 조속 회복하시고 또 "익스트림" 준비하셔야죠! '길없는 길"을 찾아서.. 기대됩니다... 잘읽고 갑니다.
전철 타보면 나도 많이먹은 나이는 아닌데~,자연산~!이제는 내몸도 돌보며 살 나이가되질 않았나? 정년후에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겠지만 그럴수록 내몸 생각을 많이하시게나~1993.4.13일에 崔仁浩 작가의""길 없는길" 보느라 늦은밤많이보냈는데, 그것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올것같은 예감이 드는구먼~ 정년후 좋은활동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