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에 흐르는 독도의 정기(精氣)
바위 군락이 예사롭지 않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산맥 따라 동쪽으로 내달리면 끝자락에 우람한 바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뚝우뚝 치솟아 벼랑을 만든 바위, 슬쩍 기댄 듯 비스듬하게 서 있는 바위, 납작 엎드린 듯 계단을 만든 바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깜냥대로 생긴 바위들 중 너럭바위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너그러운 품성을 지닌 우리 민족의 얼처럼 무던한 모습이다. 어느 세월 계곡이었던 곳이 위로 솟아올라 산이 되었는가, 바위들은 계곡에서 숱한 세월 제 몸을 씻은 듯 정갈하다.
각이 부드러운 바위들을 보니 동해에서 거친 파도와 북풍한설에 절차탁마하고 있는 독도가 다가온다. 그 옛날 한반도의 동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검푸른 바다였다.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오기도 전에 넓은 바다 한가운데 용암의 장엄한 분출이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를 지키려는 수호신의 발현이었으며 우리 조상을 맞기 위한 전주곡이었다.
바닷속에서 솟아올라 굳어버린 용암 덩어리는 거칠었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 외로운 바위섬엔 오로지 비바람과 파도만이 거칠게 몰아쳤다. 북풍한설에 바위는 얼어 깨졌고, 뜨거운 햇볕이 작열할 때는 그늘 한 점 없는 바위섬은 열기에 몸을 비틀어야 했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위는 세상 어떤 것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흙 한 점 없는 곳에는 풀씨조차 날아들지 않았다. 의지할 곳 없어 홀로 풍찬노숙하는 섬은 외로웠다.
하지만 독도는 의연했다. 산더미보다 높은 파도에 얼굴을 씻고, 하얗게 이글거리는 파도에 모진 부분을 갈아내고,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에 제 몸을 깎아가며 자연에 순응했다. 뭉쳐있던 바윗덩어리가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 바닷물에 몸 갈아 몽돌이 되었다. 거친 용암 덩어리는 몸 부수어 식물이 자랄 흙을 만들었고 또한 모래가 되었다. 어떤 생명도 깃들지 못할 것 같던 바위섬이 자연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바위 틈바구니에서는 풀꽃들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본토의 풀꽃들이 날아드는 법, 봄에는 땅채송화, 괭이밥, 민들레가 피고, 여름에는 갯메꽃, 참나리, 중나리가 꽃을 피우고, 가을 바닷가에는 해국, 왕해국, 구절초가 피어 독도의 풀꽃들이 대한민국의 꽃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섬은 넓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새들에게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생명의 징검다리이다. 여행하던 새들이 날아들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동, 서도의 새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기며 노래하였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본능이 아니랴.
눈에 보이는 독도는 작은 바위섬이지만 실은 울릉도보다 먼저 태어난 형님 같은 섬이다. 물속에 잠겨있어 그렇지, 마당의 넓이는 여의도의 열 배가 넘는다. 섬은 넓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있어 외로워 보이지만 동도와 서도의 큰 섬과 수많은 작은 섬으로 군락을 이루어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어 결코 외롭지 않다.
근래에 와서 독도 해저에 청정에너지가 존재하고, 또 미지의 생물자원이 가득하여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틈만 나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바꾸려 잔꾀를 부리고 있다. 기어이 시마네현을 앞세워 다케시마(죽도)의 날을 정해놓고 행사까지 벌이며 마치 독도가 자기네 땅인 것처럼 위장하며 침략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바다에 오염수를 쏟아붓는다고 한다. ‘안 된다, 괜찮다’ 하며 세계가 들끓고 있다. 일본의 동쪽이라지만 태평양을 돌고 돌아 머지않아 우리나라 해안에도 도달한다고 하니, 정화수 같은 독도의 바다를 어찌 보존할까. 이웃을 배려하는 일본의 양심 있는 행동을 촉구한다.
나는 어찌하여 팔공산 자락에서 독도를 마음에 담는가. 그것은 조탁한 듯 반들반들한 바위가 주는 따뜻한 감성 때문일 것이오, 또한 우리의 반만년 역사가 이어진 맥락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조상은 한반도에 조선을 세웠다. 그 후 북쪽으로는 고구려가 서쪽으로는 백제가 그리고 동쪽엔 팔공산을 주산으로 신라가 나라를 세웠다. 고구려와 백제가 패망하고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어쩌면 신라의 통일은 바위를 갈아 몽돌을 만들 듯, 절차탁마하여 얻은 융성한 기운 때문은 아니었을까.
숱한 세월 조탁한 너럭바위가 피운 꽃인가, 아니면 선인(仙人)의 화신인가. 홀로 선 소나무 한 그루의 자태가 장엄하다. 만년송(萬年松)이란 표지판이 택호(宅號)인 듯 또렷하다. 이슬 한 방울 아까운 바위틈에서 생을 이어가는 만년송의 각고가 만만찮아 보인다.
만년송을 바라보며 긴 호흡으로 옛 신라의 얼을 들숨 한다. 삼국통일 전에 우산국을 신라에 복속시킨 이사부 장군의 화신일까, 이곳에서 심신을 연마하여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 장군의 화신일까, 죽어서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노라고 바다 한가운데 대왕암에 안치된 문무대왕의 화신일까, 아니면 어부의 신분으로 일본에 잡혀가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쳤던 안용복 님의 화신일까.
동해의 아름다운 섬 독도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독도를 감싸고 있는 물결이 고요하다. 하얀 포말이 춤추듯 찰싹거리는 바닷가에는 몽돌이 서로 몸 부대끼며 자글거린다. 바위섬을 감싸 안은 티 없이 맑은 물은 동해의 수호신을 경배하는 정화수다. 뒤뜰 마당에 정화수 받아놓고 새벽기도 올리는 모정이다.
독도는 늘품 있는 한민족의 성품을 빼닮았다. 동도의 이사부 길과 서도의 안용복 길은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그날을 기다리는 꿈의 길이요, 희망의 길이다. 오늘도 거칠게 몰아치는 하얀 파도에 얼굴 씻고 나온 동해의 보석, 독도의 정경을 그려보는 마음이 평화롭다.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섬 독도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마음 다하여 조탁한 독도의 정기가 팔공산으로 흘러 한반도에 넘실거리지 않는가. 머지않아 한반도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떨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다.
첫댓글 감사님
역시 섬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찌 그리 발상을 하셨으리
깜짝 놀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표현에 감탄합니다
역시 사유 사색이 깊고,
표현의 발상이 멋지십니다.
축하드립니다.^^
깊고 웅장한 사유의 바다를 봅니다.
그야말로 조탁하듯 글을 다듬은 노고가 역력하십니다.
독도문예대전의 목적에 부합한 글임으로, 수필적 재미가 미흡한 부문을 상쇄하리라 믿습니다.
이선생님, 느낌 있는 글, 기분좋게 한 편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착상을 많이 배웁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