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상주에 귀농한 지인이 있어 몇몇 사람이 찾아가 하루는 논에서 피와 잡초를 뽑고, 하루는 비 내리는 밭에서 콩을 옮겨 심었습니다. 평소 허리 숙여 잡초와 피 뽑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관계로 등과 다리의 평소 사용해본 적 없는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했고, 일주일 동안 제대로 걷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그 친구는 남들이 다 쉬러 나간 후에도 논에서 나오는 길에 눈에 띄는 잡초와 피를 뽑느라 제일 늦게 나오고 일하러 들어갈 때는 제일 먼저 논으로 들어갔고, 콩을 한줄기라도 더 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쉴 때 남은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농부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야근에 힘이 부쳤는지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로와 면역력 약화가 원인이라고는 하는데 아무튼 시쳇말로 나이롱환자 노릇하느라 일주일을 허비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 중 아침에 한차례 회진을 도는 교수와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오면, 그들의 말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혈압·체온 체크를 하러 오면 그 결과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이 환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게차에 다리를 깔려 뼈가 부러진 분, 자동차 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치신 분, 공익요원으로 근무를 하다 발목 관절을 다친 분 등등 많은 환자들이 의사들의 말 한마디를 신주단지 모시듯 따르고 조심조심하는 모습을 보며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느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기간이 끝나고 또 다시 일상의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반이 무너져 버린 몸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평화를 위해 남은 생의 불꽃을 태우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서거에 임해서이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을 보면서 완벽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내 생에 이런 정치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으로서 욕심이 없었을 리 없겠지만 그 깊은 곳에 항상 자신의 주인으로 국민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원조 촛불' 정치인 김대중 76년 3월 1일 암울했던 유신시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일형 박사 (앞줄 오른쪽) 등과 함께 서울 명동에서 유신철폐를 위한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이 김옥두 전 의원이고 김대중 뒤로 부인 이희호씨와 권노갑 전 의원이 보인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땅을 일구는 농부의 손길에서 먹거리 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진정한 농심을 찾게 되고,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를 어루만져주는 의사의 손길에서 진정한 의술을 찾게 되며, 가난과 고통으로 시름하는 국민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정치인의 품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게 됩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업무 분야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계가 대신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세분화될 일자리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업무수행 능력을 요구받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업무처리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객관적이고 고도화된 업무능력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누구 하나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들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단 하루도 지탱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전문가는 제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의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부 전문가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그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대상을 잘못 찾은 것 같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그동안 쌓아 온 모든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경찰 전문가들은 시민을 상대로 폭압적인 살인 진압을 자행하고,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들여 양성한 법률 전문가인 검사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말살하는데 그들이 가진 온갖 지적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 매일 매일 TV 속에 그려지는 정치 전문가들의 행태를 통해 그들의 가슴 속에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을 찾기는 어려운 반면 자본가들과 기득권자들만이 보이는 것은 저만의 편견은 아닐 것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신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오로지 신뢰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 그 자리를 채울 신뢰를 어떻게 다시 쌓아갈 것인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그리하여 전문가로서 맡은 소임이 일반 대중, 시민,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로서 쌓아온 실력을 왜곡된 방향으로 사용할 때,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사회를 지탱해나갈 신뢰, 훼손되고 실추된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모습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아닐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