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우리가...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 마노아는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 하나님의 사자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아기의 양육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아마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했던 말이 너무도 심각하고 중요한 말이었기에
태어나게 될 아들을 어떻게 양육시킬 것인지 더욱 자세하게 그리고 자신이 직접 알아보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는 마노아의 돈독한 신앙을 잘 드러내 준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마노아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이처럼 우연이 아니다. 과거 모세도 신앙이 돈독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신실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었다...
[삿 13: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노아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의미이다.. 한편 본장에서는 신명칭이 '여호와와 '하나님' 두 가지가 상호 교환되어 사용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 본장의 내용이 마노아의 가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 블레셋과도 관련되어 있으므로 협의의 의미인 '여호와'와 넓은 의미인 '하나님'이 교호적으로 사용된 것 갈다.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두번씩이나 먼저 나타난 사실에 대해 혹자는 마노아보다 그의 아내가 진리를 께닫는 지혜가 많은 것으로 추정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마노아가 그의 아내가 전해준 하나님의 사자의 메시지의 내용을 인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추정은 사실과 다름을 알수 있다.
아마도 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난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녀의 지혜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삿 13:10]"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내게 나타났나이다..."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 마노아의 아내는 다시금 여호와의 사자를 뵙게 되자 이처럼 급히 남편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순간적으로 남편이 간절히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으며 그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태어날 아이의 양육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남편에게로 달려가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것을 알려준 것이다.
[삿 13: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그로라..."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한 사람입니까 - 카알은 이 말을 '3-5절에서 언급한 내용이 무엇입니까?'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의 해석과 같은 내용이 다음절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므로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마노아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기 아내에게 나타났었던 바로 그 사람인지 아닌지를 한번 확인해 본 것이다.
한편 이로 보아 마노아도 그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자를 선지자와 같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삿 13:12]"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마노아와 여호와의 사자간의 대화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이 말은 단순한 소망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마노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듣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마노아는 하나님의 부자의 소식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 '기르다'에 해당하는 '미쉬파트'는 '재판', '관습'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절은 문자적으로 '그 아이의 관습은 무엇이 된 것입니까?' 란 의미이다.
즉 마노아는 태어날 아이에게 독특하게 적용될 생활방식을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 민 6:2-20에 언급된 나실인의 규례 외에 그 아이에게 적용될 자세한 내용을 더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까 - 본절은 문자적으로 '그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란 의미이다. 개역성경은 영역 성경 중 KJV의 번역에 따랐으나 원문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번역되었다.
공동번역 및 70인 역 등은 원문에 충실하게 '그의 일들이 무엇입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 중 후자의 번역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의 의미는 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에 대하여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한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노아 부부가 행할 일에 관해서는 이미 방금 앞에서 질문되었다. 마노아와 여호와의 사자간의 대화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이 말은 단순한 소망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마노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듣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마노아는 하나님의 부자의 소식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 '기르다'에 해당하는 '미쉬파트'는 '재판', '관습'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절은 문자적으로 '그 아이의 관습은 무엇이 된 것입니까?' 란 의미이다.
즉 마노아는 태어날 아이에게 독특하게 적용될 생활방식을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 민 6:2-20에 언급된 나실인의 규례 외에 그 아이에게 적용될 자세한 내용을 더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까 - 본절은 문자적으로 '그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란 의미이다.
개역성경은 영역 성경 중 KJV의 번역에 따랐으나 원문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번역되었다. 그리고 공동번역 및 70인 역 등은 원문에 충실하게 '그의 일들이 무엇입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 중 후자의 번역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의 의미는 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에 대하여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한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노아 부부가 행할 일에 관해서는 이미 방금 앞에서 질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