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비유로 말씀하시되 - 누가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기록을 일상 생활에서 비롯된 네가지 짧은 비유로 끝맺는다. 주께서 이러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들을 무리들에게 효과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함일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든지,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군중들에게 설교하든지, 서기관및 바리새파 사람들과 논쟁하든지 간에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 그런데 예수의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비유가 사태의 본질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모호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내용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정직하고 착한 심령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수수께끼조차 환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이 A.D. 20-30년대 팔레스틴 변방의 생활 환경을 잘 밝혀준다는 사실이다. 비유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 중 일부는 청중이 그 비유 속에 묘사되어 있는 상황에 이미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본장에 나타난 비유들에서 청중들은 모두 동전 하나를 잃는 일이어떻게 집을 발칵 뒤집어 놓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먼 나라로 자기의 행운을 찾아 떠난 방탕한 아들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여리고 도로의 위험은그 소문이 자자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 이 구절은 팔레스틴의 지형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곳의 땅들은 바위들이 많고, 많이 패여서 소경이 안전하게 보행을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길을 소경이 또다른 소경을 인도한다면 어찌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 소경이 영적 소경을 인도하고 지도한다면 인도한 자는 물론 인도함을 받은 자까지 영혼의 멸망을 당하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소경은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빛되신 예수를 반대하였고, 빛보다 어두움을 택하였으며, 보지 못하면서도 교만하게 본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제자를 얻기 위해 사방 팔방으로 뛰어다니지만 결국에는 그 제자를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