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故 송영수 교수 50週忌 회고전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송영수 조각가 50주기 회고전을 관람했다.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상념의 공간: 조각가의 스케치북’展은 올해로 작고 50주기를 맞이한 송영수 조각가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는다. 그가 생의 마지막 시절을 보낸 성북동에서의 회고전을 개최하는 것이다. 송 작가는 1965년 성북동에 직접 집과 아뜰리에를 지었으며 1970년 타계하기까지 거주했다.
송영수(1930~1970) 조각가는 서울 출생으로. 소년 시절을 충청남도 천안에서 보내면서 천안중학교와 천안농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질을 보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진학, 김종영(金鍾瑛) 교수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한국 현대 조각 미술의 토양이 되었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통하여 1950년대의 그의 초기 작품은 그 당시 다른 조각가들과 마찬가지로 석고나 대리석, 나무를 소재로 하여 인체를 다룬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1950년 서울대 조각과에 입학한 송영수 역시 출발은 인체 상이었다. 그는 1953년 여인 입상 ‘희망’으로 제2회 국전에서 특선한 이후 4년 연속 특선을 하며 27세 때인 1956년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가 됐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그는 방향을 틀었다. 당시 해외 조각계로부터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한 철과 용접이 작품에 사용되었다.
1957년 작 ‘부재의 나무’와 ‘효’는 새로운 조형세계에 대한 그의 실험과 탐구를 보여주는 첫 작품들이다. 철판 드럼통을 잘라 펴놓고 그 위에 드로잉을 한 뒤 잘라내 종이를 말듯 이어붙여 완성한 작품으로, 인체의 수직적 이미지를 기본 형태로 하되 나무, 새 등의 형상과 결합시켰다. 이후 그는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용접 조각을 제작하며 국내 조각계의 흐름을 이끌었다.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1963년 작품 ‘십자고상’에서는 굵은 철사를 이어붙이는 방식을 통해 예수의 고통을 형상화했으며, 1965년 동판이 수입된 이후에는 철 대신 동판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내놓았다.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출품작인 ‘순교자’는 ‘십자고상’과 마찬가지로 T자 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동판을 두들겨서 우글우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등 한층 추상성을 강조했다. 한 몸통에서 갈라져 나온 부리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표현한 ‘대립’(1967)이나, 가시처럼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빛을 형상화한 ‘생의 형태’(1967), 앙상한 뼈대를 가진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새’(1969) 등은 그의 용접 조각 기법과 표현의 완성도가 절정에 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표작들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만들었던 송영수에게 새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였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만든 ‘새’에서 부러진 듯 아래로 꺾여있는 새의 머리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그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을 제작하던 도중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기념탑의 설계안은 후배들에 의해 완성돼 추풍령에 세워졌다.
‘거친 쇠붙이에 아름다운 영혼을 깃들이게 한 사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쓴 조각가 송영수(1930~1970)의 비문이다.
40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한국 조각사에 이름을 뚜렷이 새긴 송영수 교수의 50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이번 50주기 회고전에서는 1950년대 말 이후 제작된 송 작가의 대표 작품과 관련 드로잉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1957년 국전의 추천작가 자격으로 출품했던 ‘효’(1957)를 비롯하여 ‘대립’(1967), ‘새’(1969), ‘순교자’(1969) 등은 송영수 용접조각의 독창적인 조형성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故 송영수 교수의 따님은 극단 물결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송현옥 세종대 교수다. 연극인 동지들에게 ‘조각가 송영수 교수의 50주기 회고전’의 많은 관람을 바라는 마음이다.
5월 26일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