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인간들
노병철
새해가 밝아오면 늘 하는 소리가 있었다. ‘금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우습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띈다. 정부는 더 강력한 경고문을 담뱃갑에 박아 넣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로 담배를 끊게 만들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이지만, 정부에서는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담배 판매금지를 못 하게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담배 껍데기에 ‘피우면 뒤진다’라는 ‘해롭다’는 문구만 남발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담배회사와 담배 농가의 붕괴를 포함한 담배 산업의 소멸,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세입 감소와 사회적 비용을 아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국민건강을 담보로 세수를 챙길 것인가.
그래도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한 건 사실이다. 담배를 시내버스에서도 피웠고 고속버스 안에서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의자 뒤에 재떨이가 있었다. 특히 영화 보면서도 담배를 피웠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간에 필름을 한번 갈아 끼울 때는 너도나도 피워대는 통에 극장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온갖 발암성 물질이 있다고 해도 담배는 숙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남성’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깐. 아무리 대가리가 나빠진다고 해도 토큰 파는 곳엔 ‘가치담배’를 팔았고 돈 없는 중. 고등학교 때는 그걸 사서 돌아가며 피웠다. 챨스 브른슨이 담배를 피우면서 악당을 죽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 입에 물고 포커 돌릴 때 우린 화장실 뒤에서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가며 폼을 잡곤 했었다. 응응응...하고 난 뒤에 벗은 몸으로 담배 한 대 빠는 신성일 폼이 멋있었다. 그래서 결혼한 뒤 침대 위에서 멋지게 한 대 피웠고 마누라는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남자들은 거시기하고 난 뒤 피는 줄 알았던지 콧구멍만 벌렁거리고 있지 않았는가. 심지어 콧구멍에서 연기 나오는 게 신기하다며 부추기기까지 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담배를 끊은 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쉽지는 않았다. ‘금연 주식회사’라는 책을 읽어보면 금연을 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벌칙을 주는데 집사람을 잡아다가 전기고문하고 그래도 피우면 마침내 죽여 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자의 고통은 지옥의 고통으로 묘사되고 사실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난 20년이 지난 지금도 매 순간 담배의 유혹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혹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힘든 일을 마친 후에 피우는 담배 한 모금. 군대 고참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터진 입술에 동기가 꼽아주는 담배 한 개피. 허둥지둥 일어나 화장실에서 오늘 할 일을 더듬으며 한 대 피워 무는 담배 맛. 집사람과 잠자리 운동을 하고 난 뒤에 큰일 한 것처럼 빼어 무는 담배 한 개피. 이 모든 걸 포기하기엔 정말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감하게 결딴내야 한다.
사실 난 보건복지부 공무원도 아니고 금연 프로그램 종사자도 아니다. 금연을 홍보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그렇게 착한 인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술 마시고 마늘로 싼 돼지고기 쌈을 안주로 씹어먹고 담배까지 한 대 빤 인간이 친하다고 내 귀에 대고 속삭일 땐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다. 솔직히 흡연으로 인한 네 건강은 내 알 바 아니고, 단지 그 역겨운 냄새에서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이젠 진짜 담배를 끊어야 할 때이다. 옛날엔 담배 끊은 사람보고 ‘독한 인간’이란 말을 했다. 그만큼 담배 끊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 어려운 금연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찬사와 시기가 함축된 말이 ‘독한’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독한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언제까지 역한 냄새 풍기는 독한 인간으로 살 것인가.
첫댓글 ㅎㅎㅎ 맞아요.
아직도 담배를 못 끊는 것이 아니라 안 끊는 독~한 인간들이 많아요.
게다가 요즘은 젊은 아가씨들이 길에서 당당하게 두까치 씩이나 피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