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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우리를 파견하시지만, 절대로 홀로 보내지 않으시는 주님!
저는 한때 정말이지 세상 소심하고 근심 걱정이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쫄보였습니다. 대범한 사람 보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삶에 여유가 없고 팍팍했습니다. 인생이 늘 우울하고 울적했고,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습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리다고 걱정,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걱정, 시험 잘 못 볼까봐, 걱정, 만남의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 혹시라도 내 꿈이 좌절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그리고 어떤 날은 걱정이 없어서 걱정, 특히 남 앞에 설 때, 뭔가를 발표해야 할 때, 근심 걱정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목숨이 아홉 있다는 고양이조차도 근심 때문에 죽는다.’는 속담이 남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근심 걱정의 연속이었던 어느 잔뜩 흐리고 우울한 날,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다가,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봤는데, 정말이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나이보다 열살은 더 들어 보이는 아주 낯선 제 얼굴이 거기 들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많이 변했습니다.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큰일이 생겨도 ‘하늘 아래 별의 별 일이 다 생기는 거 당연하지.’ 하며 흘려버립니다. 수백 명 청중 앞에서도 그럭저럭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성령이심을 굳게 믿고 그분께 맡기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직무상 갖게 되는 작은 근심 걱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오시는 분들 식사 메뉴는 어떤 걸로 해야 하나 하는 걱정 정도, 어떤 때는 식사며 침실이며,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는데, 이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버스 다섯 대로 밀고 올라오는 꿈도 꾸다가 깨어나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한 보따리 걱정을 이고 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겠는가?’ ‘혹시라도 사람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말주변이 없는데’ ‘나는 체력이 약한데’ ‘나는 남들 앞에 서면 완전히 쫄아 드는데’
이런 우리를 향해 세상 자상하신 예수님께서는 달래듯이 타이르듯이 말씀을 건네십니다.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루카 12,11~12)
우리를 파견하시지만, 절대로 홀로 보내시는 주님이 아닙니다. 든든한 동반자, 강력한 협조자,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의식, 내 뒤에 그분께서 받쳐주고 계신다는 생각, 그분께서 지속적으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야말로 복음 선포자가 지녀야 할 최우선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우리가 비록 나약하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강건합니다. 우리가 비록 무지하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지혜롭습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성스럽습니다. 우리가 비록 죽음을 향해 걸어가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영원히 살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루카 12,8-12
영적 광견병에 성령까지 모독하는 죄를 짓게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성령을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려는 선물입니다.
성령을 모독한다는 말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을 악하게 여긴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악령을 쫓아내실 때
그들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선물을 줄 때 선물 안에 담긴 사랑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악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혹은 이런 것도 예가 될 것입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 부제가 하늘이 열려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신 것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총으로 보는 환시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귀를 막고 스테파노를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런 두 예를 볼 때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은 정말 용서받지 못할 것 같기는 합니다.
인간이 걸릴 수 있는 병 중에도 치사율이 100%인 유일한 병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공수병’입니다.
개에게 물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물을 두려워하게 되어 결국 탈수로 죽게 된다고 합니다.
물이 무슨 죄가 있을까요? 그러나 자기에게 피해를 준다고 여깁니다.
이것을 ‘피해의식’이라 합니다.
물론 물 안에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꿀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 자체를 두려워하여 마시지 않으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이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이 유다인들에게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피해를 보는 것처럼 예수님을 증오합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피해의식’입니다.
또는 스테파노 성인이 하늘에서 하느님의 옥좌를 본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죽는 것처럼
귀를 막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벼랑 끝, 상담』이란 책에 나온 피해의식 환자의 한 사례를 간단히 소개해 드립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은 지독히 미워하고 딸만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는 폭행을 당하고 그런 딸을 어머니가 과잉보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남성에 대한 불신과 그와 반대로 여성에 대한 극도의 믿음이 커집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여깁니다.
문제는 이 피해의식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대상이 모든 남성에게 확대되고 심지어는 아들에게까지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학대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는데, 결국 찾아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외도를?’ 그러나 아내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자신이 학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DNA 검사를 받고 나서야 아들임을 인정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아들도 내가 가진 피해의식이 사랑의 선물로 보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 물건을 살 때도 식은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사촌 동생과 고모로부터 반지를 훔쳐 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제 돈 주고 사도 나올 때 혹시 훔친 것 아니냐는 모함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피해의식은 누가 무엇을 주어도 좋은 의도로 줄 수 없다고 믿게 만듭니다.
돈 주고 사도 불안한데 거저 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엔 이렇게 ‘사랑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랑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데 결국 그렇게 성령까지도 무시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고 여기는 ‘피해의식’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님은 인정하지 않아도 부모가 주는 음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은 욕해도 성령은 모독하면 안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에서 옵니다.
어렸을 때 당연히 받아야 하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것이 피해의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의 ‘격리 원숭이’ 실험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격리하여 키운 원숭이는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무서운 존재로 여기며
무리에 섞이지 못하게 됩니다.
혼자 자해하고 자위합니다.
억지로 새끼를 낳게 하여 새끼가 자신에게 오더라도 그는 새끼까지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고 여겨 새끼를 밀쳐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랑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까지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이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그 꼴로 자라고 내버려 둔 하느님을 거부하며 그분이 주시는 모든 사랑까지도,
심지어 성령까지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사랑으로 입은 상처는 사랑으로밖에 치유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불신은 사랑을 다시 받음으로써 믿음으로 바뀝니다.
주위에서 부모보다 큰 사랑을 보여주는 이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먼저 자신이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부족한 사랑을 채우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무엇보다 『하느님이시오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으며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에 가끔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남이 안 해 주면 나라도 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이 은총으로 보입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을 믿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 심어지고 자라나는 피해의식을 없애고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증가시키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2,8-12: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말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순수한 신앙의 힘에 대해 말씀하신다. 자신의 믿음과 희망과 덕과 영광을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둔 사람은 누구도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8절)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을 증언하면 받는 보상이 바로 이 말씀이다.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고, 입술로만이 아니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함으로써 아는 것이며, 그것이 증언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죄라고 가르치셨다. 당신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겠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신다. 성령을 거스르는, 그래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무엇인가?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말한다. 이 사랑은 인간의 모든 것을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이며, 그래서 항상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시는 사랑인데, 그것을 믿지 않아 하느님 앞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모독죄이다.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 알려주실 것이다.”(12절) 성령께서는 순교자들에게 그 위험한 순간에도 당신을 증언할 힘을 주신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자로서 그분을 증언할 수 없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이끌어주실 것을 믿고, 신앙을 전파하고 생활로써 증거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한국인에게 지금 삶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까요? 아니면 “불행하다”라고 답할까요? 행복하다고 답변할 것 같지만, 불행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행하다는 사람에게 왜 불행한지를 물어보면 다양한 이유로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지 못해서, 타인과의 비교 등의 자기 불행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먼저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품 설문 조사를 보면, “이 제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십니까?”라는 질문이 꼭 나옵니다. 이 질문을 받고서 어떻게 대답할까요? 대부분 좋은 점과 칭찬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나서는 자기가 구매한 제품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네요. 단순히 제품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것보다, 그 제품을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행복을 떠올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행복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불행을 떠올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불행만 생각날 것입니다. 즉, 무엇을 먼저 생각하려고 하느냐가 자기 생각을 채우게 됩니다.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은 행복을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불행을 생각하면 그 순간 행복은 전혀 떠올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잃으면 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 공감 가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억지로라도 자기 생각을 자기가 원하는 상태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하길 원한다면 자주 행복의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이 당신 증인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증인이 되는 것이 마냥 편하고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박해와 모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사람은 성령께서 함께하시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면 본인의 불행만이 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보호에 있다는 굳은 믿음과 함께한다면 부정적인 생각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걱정 대신 기쁨을 갖게 될 것이며, 불행보다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보호 아래 굳은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아주 작은 것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자신의 삶을 매 순간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때 찾아온다(에피쿠로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3)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 안에서
누군가는
그리스도의 손이 되고
누군가는
그리스도의 발이 되고
또 누군가는
그리스도의 심장이 되어
모든 이들은 하나가 된다네.
각각의 지체들을 통하여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 된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지식은 책이나 유투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주님에 대한 체험과 믿음에서 나옵니다.
지식은 말이 길어지고
지혜는 말이 짧아집니다.
지식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지혜는 타인에게 도움이 됩니다.
지식은 잘난 척 교만하지만
지혜는 알아도 모른 척 겸손합니다.
지식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지만
지혜는 오히려 타인을 존중하고 섬길 줄 압니다.
지식은 하느님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지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식은 욕심에서 비롯되지만
지혜는 하느님의 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증언할 수 있는 건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으로 밝혀진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 12)
성령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우리 삶을 성령께
맡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성령의 섭리입니다.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약한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이십니다.
모든 순간에
우리를
맡기게하는
성령께 두려움과
걱정까지 봉헌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감사로이
받아들입시다.
맡기지 못하며
살았던 지난 시간을
뉘우칩니다.
모든 걸
맡기길 바라시는
성령께 우리의
아픔또한 맡겨드립니다.
서로 다른 우리를
소통으로 만나게
하시는 성령의
하느님께 화합을
간절히 청합니다.
가장 알맞은
때를 주시고
가장 알맞은 때에
화해와 용서의
열매를 맺게하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카12,8)
'증언의 삶!'
오늘 복음(루카12,8-12)은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루카12,8-9)
그리고 이어서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하고, 박해의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증언의 삶!'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증언의 삶입니다.
이는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서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나는 증언의 삶을 잘 살고 있는가?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성당에 다닌다고 사람들에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인가?
나는 언제 어디서나 십자성호를 잘 긋고 있는가?
특히 밖에서 종교가 다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 십자 성호를 잘 긋고 기도하고 식사하는가?
성당 밖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종종 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신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증언의 삶은 나의 작은 행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작은 생각과 말과 행위들이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는 멋진 증언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1역대 25,31)
복음말씀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그분의 몸인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1,15-23
형제 여러분,
15 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