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를 향해 같은 마음 갖는 것을 허락 하사(롬 15:5)"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키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충분히 보살피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놀라운 인내에 관해 언제 마지막으로 묵상했는가요? 기꺼이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가요?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아는가요? 하나님의 은혜가 일을 다 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성경을 통독하다 보면, 하나님의 인내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아담과 이브는 아침에 타락하고, 예수님은 오후쯤 오셨다가 그날 저녁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내 방식과 다릅니다. 한 해에 또 한 해가 겹치고, 십 년에 또 십 년이 지나고, 백 년에 또 백 년이 지나, 말 그대로 수천 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예수님이 타락의 참사를 처리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시에 오셨다고 말합니다(롬 5:6). 이는 그 모든 세월 동안 하나님이 세상으로 하여금 구주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시는 모습입니다. 대언서를 쭉 읽어 보면 하나님은 대언자를 한 명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한 대언자에 이어 또 한 대언자를 계속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의 긍휼에 화답할 기회를 주고 또 주심으로써 거룩한 인내를 놀랍게 펼쳐 보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이시는 인내를 보면서도 우리는 가책을 느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인내하고 계심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도 제자들은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다른 제자들을 찾아보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은혜가 이 혼란스러워 하는 오만한 자들을 변화시킬 시간을 주십니다.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인내에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성숙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왜 빨리 알아듣지 못하냐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딱 한 번만 가르침을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찾아오셔서 주권적인 은혜로 다스리시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내일, 또 내일 같은 일을 반복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돌보심은 하나님의 인내와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효력 있는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역을 다 마칠 수 있는 것은 자상하신 하나님이 기꺼이 기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인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내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그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시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이 일을 다 마칠 때까지 기쁘게 기다릴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폴 트립의 소망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