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9편 서론>
다윗의 시.
시 29편은 뇌우(雷雨)의 노래, 곧 일곱 우레의 노래로 불려 오고 있다. 이 시는 히브리의 모든 천연계 시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이 히브리 시인은 단순히 천연계의 모습을 단순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천연계에서 창조주의 능력과 영광을 본다(하나님의 이름인 야훼[Yahweh]가 이 시에 18회 등장한다). 이 시는 폭풍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절정을 이루고 마침내 사그러질 때까지의 광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이 시는 구조적으로 정교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 같은 균형이 그 서론(1, 2절)과, “여호와의 소리”라는 구절을 7번 반복하면서 기술한 폭풍에 대한 묘사(3~9절)와, 그 결론(10, 11절)에 나타난다. 이 시는 언어를 통한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 묘사이다.
이 시는 강풍과 우레와 번개를 동반한 바다 건너편에서 시작된 성난 폭풍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폭풍은 지중해에서 들어와서 동쪽 사막에 이르러 그 세력이 소멸될 때까지 레바논 산지와 동레바논(Anti-Lebanon) 산지를 휩쓸고 지나간다. 우리는 우가릿 문헌(참조 68, 69쪽)에서 이 시와 상세한 부분까지 흡사한 수많은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1절과 2절의 “돌리다”, 4절과 5절의 “소리”, 그리고 7~9절의 “소리”로 연결된 삼중콜론(tricolon, 동일한 단어가 3번 반복해서 사용되어 한 단위를 이루는 형식-역자 주)이 그 실례들이다. 우가릿 문헌은 또한 여러 가지 불명료한 점들까지도 해결해 주었다(참조 6, 8절 주석). 전승에 따르면 이 시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제2성전에서 불렸다. 오늘날에는 이 시가 오순절 첫날에 드려지는 회당 예배의 한 부분이 되어 있으며 또한 안식일 예전(禮典)에도 포함되어 있다.
<시편 29편 개역한글>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
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
<시편 29편 성경주석>
29:1 권능 있는 자들.
히브리어 브네 엘림(bene ’elim). 이 단어는 그 해석이 명확치 않다. 「70인역」에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천사들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참조 욥 1:6 주석). 시 86:6의 유사 구절(시편에서 유일하게 이 구절이 쓰인 경우)이 이 사상을 지지하는 듯이 보인다.
29:1 영광.
시인은 하나님이 영광과 능력의 하나님임을 인정한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9절에서 이 시의 정점(頂點)으로 쓰였다(참조 시 68:34).
29:2 거룩한 옷.
(「제임스왕역」에는 “the beauty of holiness”[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거룩하게 꾸밈.” 이 구절은 시 96:9에 다시 나온다. 영혼을 단장하는 것은 몸에 의복을 차려 입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거룩한 품성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외적 아름다움과도 비교될 수 없다(참조 벧전 3:3, 4). 만일 “권능 있는 자들”이 천사들을 의미한다면(참조 시 29:1 주석) 시인은 서론에서 천사들에게 이제 막 묘사하고자 하는 뇌우(雷雨) 중에 그 권능을 나타내는 그를 찬양하도록 요구함으로 우리를 땅에서부터 하늘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다.
29:3 여호와의 소리.
언어로 표현된 3~9절의 교향곡에서 시인은 지중해로부터 몰려와서 돌연히 레바논에 휘몰아치다가 마침내는 사막을 따뜻하고 평온하게 만들면서 동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뇌우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에게 우레는 “여호와의 소리”이다(참조 18:13). 이 구절은 3~9절에 일곱 번 등장한다.
29:3 영광의 하나님.
“영광의 왕”(시 24:7~10)이라는 표현과 비교하라. “영광”이라는 단어가 시 29:1~3에서 세 번 반복된다.
29:3 많은 물.
즉 “큰 물.”
29:4 힘 있음이여.
문자적으로 “힘을 가지고.” 시인은 폭풍 중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몇 가지 속성을 알아차린다.
29:4 위엄차도다.
문자적으로 “위엄 중에.” 우레가 땅을 살펴보는 일을 시작하고 있다.
29:5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그 폭풍은 백향목으로 유명한 레바논의 산지를 급습하여 강풍으로 그 튼튼한 나무들을 꺾어 버린다. 또한 번개도 상당수의 위엄 있는 백향목들을 산산이 부숨으로 파괴의 대열에 동참한다.
29:6 그 나무.
(「제임스왕역」에는 “them”[그것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에서는 이 대명사가 엠(-em)이라는 형태의 동사어미로 되어 있다. 이 어형은 실제로는 고대 문법 형태(전접어[前接語, enclitic, 강세가 없어서 앞에 있는 단어와 한 단어처럼 읽히는 단어 또는 요소-역자 주]) 중 하나로 AD 7세기부터 모음 없는 본문에 발음을 첨가하기 시작한 유대 학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우가릿어(참조 68, 69쪽)는 엠이라는 어미(語尾)가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구절은 “그가 레바논을 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며 시룐을 들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개정표준역」)라고 번역되어야만 한다. 이는 폭풍의 영향으로 마치 뛰는 것처럼 보이는 레바논 산지와 시룐 산지 자체를 의미한다.
29:6 송아지같이 뛰게 하심이여.
참조 시 68:16; 114:4.
29:6 시룐.
헤로몬산에 대한 시돈식 이름. 이 산은 그 정상이 해발 약 2,813.9미터인 동레바논(Anti-Lebanon)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29:6 들송아지.
(「제임스왕역」에는 “young unicorn”[어린 일각수]로 되어 있음-역자 주). “들송아지”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참조 시 22:21 주석).
29:7 가르시도다.
문자적으로 “자르다”, “잘라 내다.” 이 절은 뱀의 모양 같은 지그재그형의 강렬한 번개 섬광들을 묘사한다.
29:8 가데스 광야.
우가릿어 본문들이 발견되기 전에는 이 구절이 폭풍이 북쪽의 레바논으로부터 브엘세바에서 서남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참조 민 20:16) 남쪽 변경의 가데스까지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지나가는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여겼다. 가데스는 히브리인들이 정탐꾼들을 가나안으로 들여보낸 곳(민 13:17~20)인 가데스바네아와 동일한 곳으로 확인되었다. 그들은 불평의 말들을 한 것으로 인해 그곳에서 광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민 14). 하지만 우가릿어 분문들(참조 68, 69쪽)에 대한 연구 결과로 “가데스 광야”라는 용어가 시리아 사막에 대한 명칭임을 알게 되었다(참조 3절 주석).
29:9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뇌우(雷雨)가 야기한 공포 때문임이 분명하다. 몇몇의 아라비아 시인들과 더불어서 플루타르크(Plu-tarch)와 플리니우스(Pliny)도 이 같은 현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암사슴” 대신에 “상수리나무”를 쓴 「개정표준역」의 번역은 대구법상 더 잘 어울리는 번역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아이얄로트(’ayyalot, 「제임스왕역」의 “암사슴”)를 “상수리나무”를 의미하는 아일(’ayil)의 복수형으로 간주하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통상적으로는 엘림(’elim)이 아일(’ayil)의 복수형으로 쓰인다(참조 사 1:29).
29:9 말갛게 벗기시니.
(「제임스왕역」에는 “dis-cover”[밝히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하사프(h.asap), “벗기다”, “벌거벗게 하다.”
29:9 그 전.
아마도 여기서는 성막이 아닌 천연계를 일컫는 듯하다.
29:9 모든 것.
(「제임스왕역」에는 “every one”[모든 사람]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곧 “모든 것.” 우레, 번개, 나무들이 부딪치는 소리, 광야의 흔들림, 나무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잎들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선포한다. “땅은 수천 가지의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한다”(Coleridge). 참조 시 19:2. 경외하는 마음으로 강력한 자연 현상들을 바라본 후 위엄과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향상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유용한 일이다. 전 우주적인 찬양의 합창은 우리에게 이사야의 이상 속에 나타나 있는 스랍 천사들의 끊임없는 경배를 생각나게 한다(참조 사 6:2, 3). 이 절에서의 절정적 묘사와 더불어 폭풍은 가라앉고, 이제 시인은 조용한 명상으로 또한 하나님의 통치권과 그분의 놀라운 평화의 선물에 대한 선포로 방향을 전환한다.
29:10 홍수.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노아 홍수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폭풍우에 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이 홍수를 폭풍에 동반된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난 큰 비로 여기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듯이 보인다.
29:10 영영토록 왕으로.
하나님은 폭풍 속에 계셨던 것처럼 지금 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절대 주권자로서 영원히 통치할 것이다. 폭풍으로 인한 동요와 놀람 후에는 영혼에 평온함과 확신을 가져다주는 최종적 선언이 발해진다.
29:11 힘.
폭풍 가운데 그처럼 두드러진 능력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풍성하게 후원할 수 있다(참조 사 40:29~31).
29:11 평강.
하늘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선물(참조 시 85:8, 10; 요 14:27; 빌 4:7; 살전 5:23). 그 어떤 언어에서도 이보다 더 감미로운 말을 찾아볼 수 없다. 처칠(Churchill)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밖에서는 전쟁의 폭풍이 불어대고 땅들이 그 질풍의 분노로 몰아침을 당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평화가 있다.” 이렇게 해서 귀가 찢어질 정도까지 크레셴도되었던 시 29편의 교향곡은 가장 부드러운 피아니시모로 그 끝을 맺는다(Soncino, 시편 주석). 평강의 왕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26)라고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