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0]생활글은 무엇이고, 잘 쓰려면 어떻게?
엊그제 『기자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고 저자의 ‘좋은 글의 일곱 가지 특징’을 정리하는 글을 쓰자, 한 친구가 “맞아. 글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써야지. 요즘처럼 읽고 볼거리가 많은 시대에 어렵게 쓰면 조금 읽다가 내팽개친다. 어쩌다 참고 어렵게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유난히 어려운 단어와 문장으로 필요없이 장황하게 쓴 걸 알면 다음부터는 그 사람 글을 읽지 않게 된다. 우리 친구 중에도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런 면에서 우천(필자)의 글은 읽기가 편하다”는 댓글을 보내와 기뻤다. 맞다. 글은 무조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87]잘 쓰는 글은 어떤 것인가? - Daum 카페
하여, 이를 계기로 ‘나의 생활글쓰기’원칙이나 요령을 처음으로 정리해봐도 좋겠다 싶었다. 한 여자친구는 “너는야, 니 글은야, 바로 내 옆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듯 읽혀서 좋아. 그 비결이 뭐야?”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언문일치言文一致. 말하는 것과 글쓰는 것이 하나같으면(일치하면) 가장 좋은 일. 허나, 말하는 것과 달리, 글은 기록에 남는 것(물론 말도 녹취를 하면 남지만)이기에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훗날 문제가 되어 그 글을 (증거로) 들이대면 난감하지 않겠는가. 그보다, 옛날에는 말 잘 하는 사람은 글을 못쓰고, 글 잘 쓰는 사람은 말을 못한다고 했으나. 지금은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 하는 세상이 된 듯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렇다.
아무튼, 나의 글쓰기 원칙은 그렇다. ‘붓가는 대로’ 쓰는 수필隨筆(에세이와 미셀러니)도 아니고 일기日記도 아닌, 묘하게 그 중간이랄 수 있는 글을 스스로 이름지어 ‘생활글’이라 한 지 20년이다. 생활글 작가, 생활칼럼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어쩌다 이런저런 지면紙面에 실리기도 했지만, 솔직히 늘 쪽팔린다.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든 나름의 원칙은 있다. 문어체文語體는 좀 점잖게 쓴 글을, 구어체口語體는 대화 중에 하는 입말을 그대로 쓰는 글을 이를 것이다. 구어체(입말)은 문어체보다 읽기에 훨씬 편하다. 물 흐르듯 줄줄줄 읽혀야 맛(묘미)가 있다. 짧은 글(1500-1800자)이라도 글 속에 컨텐츠information가 있어야 하고, 글 읽는 재미interest가 있어야 한다. 흥미를 느끼게 하려면 신박한 유머나 위트, 반전反轉 등과 적당한 샘플이나 실례가 있어야 한다. 읽은 후 느낌(크게는 감동)을 줘야 하니,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나의 글에 한자漢字를 굳이 병기하는 까닭은 ‘망할 놈의 한글전용’시대가 되면서 기초한자조차 잊어먹거나 모르기 쉽기 때문에 상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인정보 노출을 이유로 몇몇 글은 지적질을 당하기도 해, 실례를 들 때 대부분 익명으로 한다. 예전엔 썼다하면 4000자(200자 원고지 20장)이 보통이었는데, 이런 경우 중언부언, 단어들이 중복되기 쉽다(같은 문장에 같은 단어가 두세 개 있으면 빵점이다). 보통 원고지 8-9장 신문칼럼이 연상되도록, 길어야 10장 미만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친구의 지적처럼 지금은 초스피드시대여서 긴 글을 읽지도 않고 본인이 쓴다해도 카톡 등에 아주 짧게(주로 안부나 묻는) 손가락장난을 하지 않던가. 얼마 전 소개한 조선시대 선비들이 애용했다는 엽서 크기의 ‘척독尺牘’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84]마음을 담은 한 장, 척독尺牘 - Daum 카페
구수한 사투리나 방언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도 동향 출신 지인들이 글을 읽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다. 생활글은 우선 ‘좋은 글감’이 있어야 하고, 그 글감을 중심으로 글의 전개방향(굳이 기승전결 형식이 아니어도 괜찮다)을 머리 속에서 계속 굴려야 한다. 어떻게 시작해 얼마만한 분량으로 어떻게 끝을 낼 것인가? 예를 든다면 어떤 걸 들까? 주변의 사적인 예를 들면 공감이 훨씬 더하게 된다. 독자들도 그 비슷한 예를 겪었거나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별곡 Ⅱ-87>에서도 썼지만, <기자의 글쓰기> 저자의 ‘좋은 글 특징’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보도문장에 익숙한 때문인지, 글을 시작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게 ‘5W1H’이다. 5W1H(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6개 요소 중 하나만 빠져도 앙꼬없는 찐빵이다. 대화를 할 때에도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5W1H는 필수이다. 습관을 들여야 한다. 6학년 2학기쯤 되면 자식이나 손자를 생각해서라도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하는데, 자신이 없다고 한숨 쉬는 친구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무 생각말고 컴퓨터책상에 먼저 앉으라. 앉아놓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두서頭序가 없어(앞뒤 맥락이 맞지 않음)’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쓰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독자를 가족일원이나 친구들로 한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함’이다.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기록하는데 솔직率直만큼 좋은 덕목은 없다고 생각한다. 연식年式(나이테, 연륜)이 있는 만큼, 웬만하면 자기의 생각이나 논리를 글로 정리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책상에 앉아 ‘글감’을 머리 속에서 굴려보기 바란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글 잘쓰는 재주를 갖고 태어났을까? 노력 앞에 장사壯士는 없다. 글쓰기도 결국은 노력이고 자기 의지의 소산所産이다.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을 쓰는데, 뭐가 무서워 겁을 내는가? 잡아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년 동안 생활글을 쓰면서 ‘글감’이 어찌 100개, 1000개만 됐으랴. 무릇 기하였을 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 생활글이라고 생각한다(꼬꼬생).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할 일이었지만, 취미로 시작해 특기가 됐고, 그 결과 약간의 보람도 있었다. 백수시절 쓴 일기 108편은 <백수의 월요병> <어느 백수의 노래>라는 2권의 책이 됐고, 친구들에게 쓴 은행잎편지 108통도 펴내 화제가 되었다. 대학 입학 아들과 주고받은 이메일편지는 TV 방영이 됐으며, 공기업 사보에 5년간 연재한 칼럼은 대학출판사 공모전에도 뽑혔다(<나는 휴머니스트다>). 또한 생활칼럼 4편은 중앙일간지를 크게 장식했다. 부모결혼 72년과 아버지 구순을 축하하는 비매품 문집이 어느 프로덕션 PD의 눈에 띄어 “총생들아, 잘 살거라”라는 제목으로 <인간극장> 5부작이 방영돼 ‘가문의 영광’도 거머쥐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이번 겨울을 통과하면서 귀향한 지 5년만에 보고서 형식의 에세이를 모은 『어머니』라는 책 출판기념회를 경향京鄕(서울과 고향 전주)에서 두 차례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참석해 자리를 빛내 준 많은 선후배지인들과 친구, 동료들이 고마웠다.
생활글은 누구나 쓸 수 있음을 알자. 글감이야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쉽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담담하고 담백하게(수식어가 많으면 산만하고 주제가 헷갈린다) 쓰는 습관들을 들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