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징(韓 澄, 1886 ~ 1944)】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 순국한 한징 선생」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 순국한 한징 선생
한 징(韓 澄, 1886. 2. 20 ~ 1944. 2. 22)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한징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한학과 국학을 전공하고 『시대일보』 ‧ 『중외일보』 ‧ 『조선중앙일보』등에서 신문편집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이윤재(李允宰) 등과 조선어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후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의 사정위원과 수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표준어 사정 독회에 모두 참여하였고, 제1독회와 제2독회에서는 수정위원에 선정되어 활약하였다.
1936년 4월부터 1942년 9월까지 『조선어대사전』 편찬 전임위원으로 활동한 선생은 조선어사전의 편찬이 독립운동이라 생각하고, 조선말 큰 사전을 빨리 세상에 내놓아 우리말이 보존되어 우리 민족이 영구히 유지되기를 바랐다.
이에 일제는 조선어말살정책의 일환으로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하고 조선어학회 회원 30여 명을 체포하였다. 당시 선생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함께 체포되었고, 일제의 갖은 고문으로 1944년 함흥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뜻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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