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그때는 좀 흔했던 입주 과외를 했었다. 그러니까 학생 집에서 먹고 자며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꽤 오래전 일이었음에도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그 집 부모님들이 상호존중하던 모습이었다. 부부끼리 서로 경어를 쓰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뒤로 부부끼리 경어를 쓰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동문들 중 처음으로 결혼을 하는 친구가 있어 집들이를 갔었다. 부부사이에 경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곳이 두 번째였다. 내 나이 친구가 부부사이에 경어를? 정말 놀랐었다. 물론 부인이 두 살 연상이기는 했었다. 하기는 그 시절에는 연상의 부인과 결혼하는 것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인가 그 친구 부부에게 우스운 질문을 했다. 부부싸움을 할 때에도 경어를 쓰는가 하고 말이다. 대답은 정말 싱겁게 돌아왔다. 당연히 존댓말로 부부싸움을 한다고 말이다. 내친김에 또 질문을 했다. 존댓말로 싸움이 되느냐고. 그랬더니 뒤통수를 긁으며 하는 대답이 좀 걸작이었다. 그래서 사실 아직 남들처럼 부부싸움을 못해보았다는 대답이었다. 감정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받쳐 있는데 그 상태에서 존댓말을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제를 하게 되더라는 설명이었다. 싸움을 존댓말로? 하기는 경어를 사용하는 싸움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기에 그 집 아이들처럼 반듯하게 큰 아이들을 보기 어려웠다.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날 일이 없는데 아이들이 비뚜로 클 리가 없다. 텔레비전 사극을 보면 부부 사이에 경어를 사용한다. 오늘날처럼 부부 사이의 위상이 바뀐 것도 현대화의 산물인지 몰라도 어쨌든 이것도 부부 사이의 경어 사용도 전통이라면 전통일 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중장년층이면 다 알겠지만 그 시절 대중문화에서도 부부 사이는 서로 존중의 대상이었다. 노래 가사에도 ‘당신’은 있었어도 ‘너’는 듣기 어려웠다. 그러나 요즘 노래에는 반대로 ‘너’는 있어도 ‘당신’은 없다. 성장의 그늘이라고 한마디로 치부하기에는 좀 어딘가 안타까운 대목들이 있다. OECE 국가 중 안 좋은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들이 그것들이다. 자살률, 교통사고 사망률 등. 그것들 중 최근에 눈에 띄는 것이 이혼율이다. 신문을 펼치니 사회면에 젊은이들의 이혼율이 매우 심각하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애정표현은 정말 대담하기 짝이 없다. 과거에는 남자가 적극적이고 여자는 다소 수동적이었는데 비해 지금은 여자도 애정표현이 대담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는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당혹스러운 때가 간혹 있다.
물샐틈 없는(?) 그들 사이가 결혼 후에도 그대로 지속되었으면 정말 좋겠지만 젊은 사람들의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건의하고 싶은 것이 부부 사이에 경어 사용하기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자주 쓰다보면 자연스러워진다. 흔히 친한 사이에 말을 튼다고 하는데 친구 사이라면 모르겠지만 연인 사이를 염두에 둔다면 말을 트지 말고 계속 경어를 사용하기를 권한다. 결혼 후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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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말씀입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
너무 공감하는 말씀이네요.
저도 늘 생각은 하면서도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다시 노력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