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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 맑음 일요일
시목으네 집에 들려서 고추온상을 다녀왔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 36년을 벗서난지 69년째 대는 기미독립만세 기념일이다. 33인 독립투사들에 의거를 영원히 추모하는 기념일이기도하다.
저녁 소죽을 끓여놓고 저녁 때 최현숙씨한태 편지를 썼다.
밤에는 티브이 시청하고 놀다 기도하고 한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2일 월요일
오전 종형 나오셔서 인감도장을 빌려 달라하여 빌려드리고 이런 저런 예기하고 나가시고 동생한태서 전화 왔다.
쌀값 입금한다고 했다. 면에서 휠췌 신청한 것 도장가지고 오라 하여다 한다.
과수원에 묘목을 더 심어야하는데 유목을 심느냐 3사년 생을 심느냐 106 준외생을 심을까 일반대목 두가지 중에 어느 것을 심어야한다고 했다.
오후 시목으네 집에서 점심을 먹고 고추 온상에 갔다가 집에 와서 소죽 끓여다.
저녁때 시목이 시켜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저녁 먹고 티브이시청하다 10시부터 12시반 까지 기도하고 취침했다.
3일 맑음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니까 상쾌하다.
아침을 먹고 누어다니까 박지만 어른께서 무엇을 들고 오셔다.
어제저녁 기제사를 올려다며 떡 과일 술과 고기 묵까지 각각 담아서 가지고 오셔다.
이웃 정으로 특히 가깝게 지내무로 무엇을 하면 꼭 갖다 주신다. 고맙게 잘 받아 먹었다.
하양에 전화로 대추나무 10주 준 외성 유목20주 자두 출이 살구 등 잡과 목10여주를 부탁했다.
벼짚 절단기 판매사원이 두 명 찾아왔다.
절단기를 권하는 바람에 삼촌과 우리 두 대를 신청 해쓰나 어른들이 안한다 하면 돌려주기로 하고 했다.
저녁 티브이시청하다 기도하고 잤다. 상의한즉 취소해야 한다.
3월4알 수요일 맑음 휠췌 신청한날
장날이다 면에서 부친 도장 나 도장을 보내주면 휠췌를 신청해 준다고 하셨다.
앞집 할매 장 가시는데 도장을 보내다 동생이 면에 가서 신청 하도록 했다.
대구 진성기계 회사 전화해서 준문 한 기계 취소하도록 해달라고 전화했다.
돈이 문제여쓰며 계속 농사를 지을지 안 지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가 없을 것 갔다.
티브이 시청하다가 기도 한 시간 하고잤다.
3월5일목요일 맑음
아부지 마을 안길 보수작업 나가시고 정산 동생이 왔다.
휠체 신청도하고 쌀값도 입금했다 했으며 농협 돈 쓴 것 십만원 가지고 왔다.
도목 할배네돈 2십만원 빚네준 것 제수씨 친정동생 사고 저지른데 쓴다고 좀 내달라 해서 내주었다가 3년 만에 겨우 동생이 모아서 원금 갚는 것으로 했다.
나는 이 돈을 내 가지고 대강 어떻게 쓰여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수원에 묘목을 자꾸 더 늘리기도 그렇고 빈곳에 사다 머들군다면 그리 많이 필요치 않을 것 갔다.
산에는 대추나무를 심을까 생각 했으나 돈이 없으무로 동생이 20주 사와서 시범으로 심어 본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안동 미제아빠 종형께서 간장이 나빠졌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형수가 와서 예기했다.
업는 살림에 걱정이다. 형수가 다니면서 벌어서 생활하는데 형님 몸이 좋지 안으면 어찌 걱정스런 일이 아닐까?
자비하신 부처님 관세음 보살님 하루빨리 완쾌되도록 가피력을 내려주소서 티브이 시청하고 기도 한 시간하고 잤다.
3월 6일 맑음 금요일
영농자금 나눠쓰자는 안동 종형수 부탁을 받았다.
오늘도 전날과 다름없이 보내고 오후 미제엄마 형수 한태서 농협 영농자금을 논아 쓰면 어떨까 전화가 왔다.
우리혼자 쓰는게 아니고 시목으네 하고 논아 써야하고 농비를 해야 하니 나눠 줄게 없다하니 어렵게 부탁하는데 논아쓰지 못하여 안됐다. 놀다 기도하고 잤다.
7일 토요일 맑음
편지를 외삼촌께 안혜자씨께 써놓고 한자 연습도 좀 하고 티브이 시청하고 놀다 기도하고 잤다.
8일 일요일 맑음
정철영씨께 편지 한통 쓰고 후원금 5천원을 동봉하였다.
제주도 류춘자씨 결혼축하 편지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잘 대는 게 없다.
부처님께서 모든 일 이미 다 정해 두었으리라 생각하면 더 욕심 낼 것도 더 바랄 것도 없이 만족하고 다행하게 생각해야 할 처지가 분명하다.
오늘은 계수씨 생일날이다.
무엇을 해 먹엇는지 어머니가 계시면 무엇을 해 주엇을까? 나도 선물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돈이 없다.
나는 오직 마음뿐이다.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밖에 옆에 도목 할배 생신도 오늘이다.
4홉 들이 소주 두병을 사가지고 아부지 가시더니 점심 잡수시고 오셨다.
티브이 시청하다 한자 글씨 연습하다 새벽 기도하고 잤다.
9일 월요일 맑음 장날
금화 장에 가서 여러 가지 볼일 봐가지고 왔다.
석유1두 유황 생강 소금 여러 가지 사가지고 삼촌 소달구지에 싣고 왔다.
편지 5통 쓴 것을 부치고 금화가 최현숙씨한태 쓴 것도 함께 부쳤다.
전기료 전화료금 까지 4만원 입금하고 나는 쓸쓸이 보냈다.
오늘 영봉 집 앞까지 나갔다. 구인사 놀러 가시고 분자 결혼식에 가고 동리가 텅 빈 것 갔다.
티브이 시청하고 9시부터 한시까지 기도하고 잤다.
3월10일 화요일 맑다 흐림 벼짚 절단기 구입한날
오늘은 몇 일전에 소물 써는 기계를 시목으네 하고 신청해 두어떠니 싣고 왔다.
본사로 보내지 말라고 연락해 떠니 그래도 가지고 와서 둘 집 다 하게 데었다.
장차 농사 짖고 십년 이상 살면 괸찬치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까지 농사 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갓 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금화한태 모든 것이 달린 것 갔다. 부친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 기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까 어떻게 할까 아직도 늦지 안타 경제적 모든 것을 따지고 계산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 갔지만 살림도구로서 가치 있으며 이 기계가 있으무로 농사를 몇년 더 지을 수도 있다.
과수원에 퇴비도 좀 만들어 넣을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 된다 내 뜻은 이런데 앞으로 돈해줄 걱정이 좀되긴 하나 해놓고 나니 하지 말 것을 후회가 된다. 다시 돌려줄까 망설인다 만약 하지 안는다고 하면 판매 부장이 안된다고 할 것은 뻔하다.
돈이라도 좀 덜 주고 서류 천천히 하여 돈 이자라도 덕을 봐야지 하고 어떠게 하면 될까 생각한 끝에 나와 부친관계와 장차 영농이 불가하다는 핑계로 한 번 더 예기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기도하고 잤다.
3월11일 맑음 고추온상 보고 사과나무 캐오고 묘목사온 날
오늘은 점심 때가 대어 시목이 생강 따리는데 가보았다.
점심 얻어먹고 고추 온상에 가서 돌아보고 아직은 올라오지 않았으나 2.3.일내로 땅위로 올라 올 것 같았다.
내려오다 미나무할매네 집에 들려떠니 할매 감기로 누워있다.
그냥 오다 배나들할배께서 구경 잘하고 왔다고 하신다. 구인사에 가보고 오셔다 하신다.
12일 목요일 맑음
하양에서 박무인씨 오늘 사과 대추 추리 등등 유목 부탁 한 것 싣고 대밭골까지 오신다고 연락 왔다.
그래서 삼촌과 아버지 신승록씨 106호 5년생 너무 달아서 속아내는 것 주당 3300원씩 하고 우리6주 삼촌 10주 샀다.
밭에 캐다두고 오후 동생 웅이와 금화 대추 묘목 25주 다 심고 넘어갔다.
나는 집에 있다니까 시목엄마 기계 판사람 오늘 온다더라 하여 길수네 집인데 나갔다니 마침 큰집에 반민이 모여 있는데 가서 예기하는 것보다 판매부장을 집에 오시라하여 자새히 말하여보리라 하고 전화해서 보내달라 했다. 마침 왔다.
즉시 사정예기를 하니 예측한대로 안된다며 새 모다 그냥 쓰고 그대로하고 서류는 천천히 해주어도 된다 해서 1차는 성공인데 아버지 오시면 다음 판매 부장과 함께 설득 하면 된다 하며 그러지 말고 그냥 쓰도록 해달라며 일어나서 가버린다.
낮에 웅동생이 와도 샀다 말도 아무 말도 기계 대하여 말 안했다.
어떻게 샀다고 말하지 안는데 예기 할 것도 없다. 속으로 기계 샀다고 마땅찬캐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했다 못 했다 말할 수 없으리라 내 뜻대로 한 일인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저녁 기도하고 잤다.
87년3월13일금요일 맑음
미나무할배 생신날 과수묘목 못 심을까 애가 타다
아부지 생신 술한잔 드시고 오실 줄 알아는데 윷놀이가 시작되어 오시지 안앗다.
햇볕은 쨍쨍 나고 묘목은 어제 캐 다 놔는데 정산 동생 묘목 심으로 밭에 와서 기다리다 점심 먹으로 집에 왔다.
나무 마른다고 투덜된다 금화도 투덜된다.
사람 속을 상하게 하내 빈곳에 심기위해 사온 것을 심는다 해도 살리기 어렵다하니 잔소리가 나온다.
대밭골서는 나무 2주 잘못 캐갔다고 갔다 달라고 하제 오후 4시가 되도 아부지는 오시지안아 정산에서는 도장색이로 오라하고 하루 종일 있다. 그냥 넘어 가야한다.
금화혼자 오후 일찍 가서 나무 심을 자리 구덩이 팠다. 영구 사람 하려고 했다. 아버지 마침 오셨다.
영구 취소하고 물을 싣고 가려고 동생먼저 밭에 갔다. 다행히 큰 것 캐다 놔는 것은 다 심고 2주는 대밭골 다시 갔다 주고 왔다.
낮에는 스스로 하지는 못하고 어른은 오시지 않고 속이 끓어오르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
어쩔줄 몰라 하다 헌 물통을 두들겼다. 요강도 두들겼다. 나의성질이 아직 살아있어 참을 수가 없었다.
공연히 술 잡수로 보냈다. 이럴 줄 알아스면 오전에 심어놓고 오후에 가셨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터인대 때늦은 후회를 해본들 무슨 소용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 캐고 돈 주고사서 이렇게 말라서 심은들 살릴 수 가있을까 싶어서 더욱 애가 타던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아스면 애당초에 시작을 하지 안았을 걸 머 때문에 시작하여 내속 간장을 이렇게 태우나 싶은 마음에 하지 못하는 나에 심정이 집안에서 생각만하니 견딜 수가 없이 분노가 내 자신에게 치솟아 미칠 지경이 였다.
나의심정 부처님이나 알아주실까 그 누가 알까 저녁엔 다행히 마음이 깔아 앉았다.
편히 쉴 수가 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잤다.
3월 14일 토요일 맑음
종숙모 분자 결혼식에 준비 해던 해물과 고기국을 가저 왔다.
나는 어제 오후부터 전에 다 외워던 불설삼세인과경을 다 잊어버려 새로 외울 것을 마음먹고 이틀내로 다 외워야지 못 왜 우면 안 된다는 각오를 해다. 그래서 다행히 오늘오전까지 다 외울 수가 있어다.
안보고 다 외울수 있을 때 한시가 거의 되었다.
종숙모는 종숙께서 다니도 못하는데 가만히 들안자 잇으니 얼마나 불쌍한가 오윤이 좀 갔다 주라고 하셔서 마음먹고 가지고 오셔다. 큰 사라에 고기한사라 수북히 담고 소고기 국을 깊은 그릇에 모두고기만 넣어서 끓여다.
미질떡 기계에 만든 것 가지고 오셔다. 맛이 아주 좋하다. 특히 종숙어른께서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시니 눈물나게 고맙다.
이 공양 받아먹고 나는 무엇으로 보답할까 부처님전에 기도밖에 할 수 없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자비하신 마음으로 가피력을 내리시와 이와 같은 모든 사람들께 뜻하고 원하는 일 이뤄지게 하시고 무병하고 수명 장수하게 복록진진 행복하게 하여 주세요.
큰집 형수씨 신도회 모이는지 알아 보로 나왔다. 상명이내 엄마도 놀러왔다.
상명이모는 시아버지와 마음 갈등이 심하여 괴로워하며 눈물 흘린다.
그 모습을 볼 때 나도 제수씨하고 비슷한 입장이였던 지난 몇 년을 회상할 때 인간에 탐진치 욕망으로 가까워야 할 사람끼리 서로 원망하며 갈등하니 어찌 편히 잠을 자며 마음 편히 살아 갈수 있을까?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하고 참회하자 참고 살다보면 좋은날이 있게지요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길수모 떡 들고 오셨다. 논아먹고 뒤집 할매 노루 한 마리 잡아왔다며 좋하했다.
길수모 상명모 산돼지 고기라하니 약을 하게 조금씩 사고 싶어 한다.
절에서는 노루고기 금한다니까 노루면 안한다하고 그냥 놀다 가셨다.
저녁 11시부터 새벽 한시까지 기도하고 잤다. 2시간 기도했다.
3월15일 일요일 맑음 법화경 약찬계를 외울 여고 시도한날
불타께서 영산회상에서 최후에 설법하신 법화경과 십대제자 상수제자들과 또한 모든 대중 에게 46년간 설법하신 모든 이치와 진리를 묘법연화경에 다 실록해쓰며 묘법연화경을 요약한 경문이 법화경 약찬계 서문이다.
이 약찬계를 25세 때부터 30세 때 까지 외울 수 있어는대 그동안 불심이 해태하여서인지 가끔 외우지 안아더니 다 잊어 버려서 지금에야 비로소 다시 외울 여고 시도해봐다. 그리 어렵지는 안을 것 갔다.
벼짚 절단기를 사가지고 처음으로 작동 금화가 아부지하고 한 짐 써는 시간이 십분 잠깐 해치운다.
돈이 좋타. 기계가 아무리 좋은들 돈 안주면 누가 그냥 준단 말인가? 지금 이 세상은 황금 만능주의 사회야 돈 이 많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다. 달에도 갔다 오고 별에도 갔다 올 수 있는 우주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륜도덕 삼강오륜 인의예지 신이 조금은 남아있으나 퇴폐한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오욕락을 탐착하여 만가지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 사람들이 후 세상에 태어나서 받을 과보를 보면 환하기 때문에 그 아무것도 부럽지안타 어떠게 하면 한 가지 죄라도 덜 지으며 살아갈까 이 세상을 진실하게 살다가나 하는 마음 뿐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탐욕과 원망과 미움 분노에 진심과 치심으로 살아와다.
이제는 단 하루를 살아도 바르게 사는 것을 인생목표로 하여 이웃과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3월 16일 맑음 월요일
웅동생이 왔다갔다.
오늘은 영세농가 취로사업 하는데 나오라하여 부친과 금화 함께 점심 가지고 일하로 갔다.
정산 동생이 와서 소 내매고 대추나무 심는데 비니루 덮고 늦게 와서 점심도 안 먹고 3시 넘어서 갓다.
나는 시목으네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술약 가지고 왔다.
저녁 소죽 끓이고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가 기도하고 잤다.
17일
오늘도 금화 혼자 일하로 갔다.
父親은 과수원에 나무실어 오시고 고추온상 물도 주고 나는 집안을 쓸고 청소하고 저녁소죽 끓이고 낮에는 한자 연습하고 외가에서 저근 외삼촌께서 답장이 왔다.
모두가 안타까운 내용뿐이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부처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외가에 어찌하여 이런 괴로움이 떠나지 안는지요? 부처님 위신력으로 어서모두 괴로움을 이길수 있는 믿음이 생기게 하소서.
16일 17일 18일 19일 날은 내가 18세 때 음 2월 열일에날 구인사를 최초로 찾아간 날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며칠간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상월대조사님 진영 전에 불을 밝히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18일 맑음
금화 대청소 김치단지도 씻은 후 메주도 씻고 하였다.
나는 땅콩도 까고 보리쌀에 쥐똥도 골리고 앞집 상명이모가 놀러 와서 상명이 아빠한태 시집온 것을 후회 한다.
사귀던 애인이 있어는데 너무 잘살아서 자기와 대조적이어서 상명이 아빠를 선택 핸는대 이와 같은 집은 처음 봐다며 일을 해도 힘이 나지 않는다고 토로 했다. 듣고 나니 안됐다.
돈 있으면 무엇하노 마음이 편치 않아 모두가 괴로워하니 관세음보살님 보살펴주소서
3월19일 비가내림 장날인대 장을 못 갔다.
나는 글씨 연습도 하고 약찬계 경을 외우기도 하며 하루해를 보내고 최현숙씨 박광배씨 편지를 내어 읽으면서 기도하고 나에 일과는 맨날 그렇다.
금화동생을 자랑을 할까 kbs방송국에 미담사례 제보에 보내볼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집을 세상에 알려서 괴롭고 어려운 가운데서 절망하고 있는 분들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한번 소개 하는 것도 괸찬을 것 갔다.
어떻게 소개할까 이렇게 생각하며 글을 써봤다.
저녁에는 티브이시청하고 기도 한 시간하고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20일 맑음 금요일 금화하고 다투었다.
오늘은 가친께서 영농자금 타가지고 일년 농사지을 비료도 구입하고 여러 가지 사가지고 오후 일찍 오셔서 보리에 비료도 주고 마늘에도 비료를 주고 하셔다.
나는 별것 아닌 것으로 금화와 다투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을 생각 할 떼 그렇게 하지 않고도 방법을 연구해서 깨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에 참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대로 터트렸다. 왜냐 나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잘못된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찌하랴 부모를 원망할 수도 나 자신을 탓 할 수도 없다.
내가 불편한 몸으로 이 가정을 지금까지 이정도로 이끌어 온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부처님 가피력이 돌보아 주심이라 생각 한다.
동생들에게 따뜻이 못해주는 나에 비굴함은 내 자신도 모르겠다.
주야로 경문을 읽고 염불을 하면서 안 그러게다고 마음을 먹는데, 그대로 안 되니 어찌하면 될까?
나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처럼 하고 살면 될터인데 그래도 오라비라고 자존심은 있어서 해달라는 대로 안해 주던지 하면 화를 내고 야단이니 나와 아버지를 위해 지가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살아주는 것도 고맙고 감사한데 조금만 내 뜻을 거역 했다고 함부로 대하니까 버릇이 없어 아무렇게나 지껄이며 덤벼드니 이일을 어찌할까?
내가 저야지 저조야지 집안팍 일을 할 때는 훤히 치우고 잘하는데 맨날 화투나 치고 밥상과 커피 상을 방안에 그냥 두고 저녁마다 12시가 넘도록 놀다 아침상은 대는 데로 차려줘도 누가 뭐라 하나 제 뭐대로 놀아나니 지가 먹고 싶은 것은 지손으로 해먹으니 지마음대로다.
이렇게 해서는 나중에 계속 이대로 배워서 누굴 욕 먹이나 아버지 오빠들이 남들 같지 못해서 바로 가르치지 못함이라 욕먹을까 두렵다.
아버지와 나를 위해 객지로 나가지 않고 살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이제 나이 23세 결혼해야 할 나이가 되쓰니 지가 알아서 해줄 줄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니던가?
해숙이 보는 앞에서 오빠한태 욕을 함부로 하는 것이 참을수 업는 분노를 끓게 한다.
동생이 그러니 해숙이가 함께 천방지축 날뛰고 함부로 말하고 이러는 꼴이 속상하게 한다.
해숙이 보는 앞에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나를 더더욱 괴롭게 속상하게 만든다.
내가 먹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무엇인들 아까우랴 내 한태 그렇게 대하지만 안는다면 관세음보살님 더욱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진실하게 살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나와 동생들 모두에게...
3월21맑음 토요일 과수원에 비료를 주었다.
자고 일어나니 목이 꽉 잠긴 느낌이 였다.
반장 아제 식전에 자는데 정부에서 농어민 사채를 정부 돈으로 싼 이자로 갚아 준다고 확인조사를 했다.
용계 아제 과수원에 비료한번 집에 한번 싣고 오셔다.
가친 웅 동생 금화 비료 다치고 거름 흩은 후에 왔다.
나는 오늘 기분이 울적하다. 어제 금화와 다투고 서로 말이 없다.
낮에 반장 아제네 송아지 도살 한단다. 고기 신청 받으로 다녀서 내장을 모두 맡아두었다.
낮에 아부지 한태 물으니까 많타고 모두는 하지 안는다 하무로 반장 영봉네 하고 나눠다.
3400원 전육2근 5800원이여다. 정산 동생 조금 놔눠주고 잘 먹었다.
오늘도 진성기계 판매 부장이 찾아 왔다. 축협에 서류 정리 할 인감 때문이였다.
칼날 한쌍 주기로 하고 24일날 까지 인감 띄 넣기로 하고 언약했다.
오후 반장 아제네 송아지를 했다. 간은 내가 요리해서 먹엇다. 삼촌께서 내장을 나눠온 것을 씻고 고기 나눠오셨다.
숙모와 함께 기도를 했다. 목이 잠겨 기도가 시원하게 되지 안는다.
어제 저녁자고 일어나서부터 기분이 울적하다. 감기 걸려는지 코도 미고 이상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
또 무슨 큰 병이 생기는 느낌이다.
어찌 한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와 같은 큰 병마와 싸워야 하니 누구를 탓할까? 모두 나에 업보인걸 기도하고 잤다.
22일 맑음 일요일 저녁에 비가내림
우병일 돌날 과수원을 갈았다.
반장 아제 고기 값을 드리고 돈 5십만원 장기 대출 부탁하고 가친은 병일이 돌을 잡수고 오셔서 과수원을 갈로 가셔다.
금화는 빨래하고 집안청소하고 나는 그냥 누워 자고 낮에 정산 동생이 와서 실을 사둔 것 가지고 돌 먹으로 가서 놀다 와서 저녁때 비가 와서 그냥 갔다.
인감 세통 띄 보내라고 도장 주어서 보내다.
왼 종일 말도하지 않고 금화와 심리전을 벌린다.
내가 왜 이럴까? 저 가엾은 동생들을 그런대로 모두 잘해 주는 대도 나는 왜 불만이 많을까? 내가 어려운 이 가정을 위해 무엇 하나 떳떳이 가르치고 해준 것은 업지만 나에 무지와 어리석음 속에서도 우리형편에 맞도록은 동리에서 남들이 하는 것은 다하고 다가고 생활 하는데 무슨 불만들이 그렇게 많은지 내가 할 때보다 못하고 씩히기만 하니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한일 없이 그냥 놀고 먹는 것 밖에 업스니 가정에 안녕과 건강과 화목을 위하여 기도하건만 전처럼 모든 것이 잘 안 이뤄진다.
그리고 나는 병마와 싸우면서 투병하고 있다. 결핵이 재발한 것이 틀림없다. 수족이 번동한지 3년째가된다.
가슴이 결리고 미열 한기 약간씩 있었는데 급기야 감기 기운이 있더니 담과 혈담이 나온다.
작년 5월달 대학병원에서 결핵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갔다고 해쓰무로 내과 과장 구본환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앞으로 치료할 결심을 또 해야만 한다. 참말로 내신세가 어쩌다 이 모양인지 불쌍하기 그지없다.
3월23일 월요일 흐림 저녁 비가 옴.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겨다
나는 왜 근육디스트로피란 불치병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원통한데 만가지 병은 자꾸만 나를 괴롭힐까?
바늘 같은 이 몸에 태산 같은 병마를 무엇으로 이겨야 할까? 나의 마음 나의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나는 살고 싶어 몸부림 친다. 아직은 죽기가 싫타.
솔직히 죽어버리고 싶다는 결심이 선다면 언제 어느 때나 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이세상이 그립고 인생에 집착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욕망과 탐심진심 치심을 버리지 못하고 무엇에 연연함인지 살고 싶어 한다.
차라리 죽을 수만 있다면 깨끗이 한 많은 인생살이 정리해도 될텐데 아직 집착심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금화는 정산 선예와 기성이 보로 갔다. 제수씨가 병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가친께서는 과수원 밭을 갈고 나는 집에서 귤피와 감초를 함께 따려놓고 먹었다.
기침이 좀 덜 나는 것 같은데 감기약을 먹었더니 담이 누렇게 나온다.
밤에는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하고 취침 한다. 꿈이 이상하게 맞아 드는 기분이다.
87년3월24일 비가내림
소여물 절단기 축협 대출 31만원 서류해 준 날이다.
오늘은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큰집 형수 장담을라 해더니 비가 와서 어쩌노하며 오셔다.
27일 28일 양일간에 담으라하고 기계 두부콩을 갈아 보자하고 한 되 골라 담그고 큰집 옥수수 싹 낸 것 건조 씩혀 갈라고 두었다. 금화는 먼저가고 나는 삼촌 오라하여 축협 대출용 인감 세통 띠 오시라고 적어서 보냈다. 낮에 띄다주고 가셨다.
금화 반찬을 사가지고 아이들 봐주고 일찍 와서 소죽 끓여쓰며 오늘부터 말을 한다.
제수씨 큰 병은 아닌가 하고 병원가서 사진 찍고 검사한 결과 대장염증이니 음식 가려먹고 약 복용하라고 했단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라니 온 가족 모두 안심이다.
오늘 절단기 판매부장께서 서류를 가춰 넣어야하니 해 두면오기로 약속한 날이다. 비가 오는데 저녁 먹고 있다니 왔다.
칼날 한 쌍 주기로 한 것 공장도가격 2만원 나오는 것이라 했다. 삼촌과 두 대 함께 구입했다고 써비스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차 기계가 필요치 않을 것 같아서 안 할 여고 핸는데 모다 4만원짜리 줄태니 하라 자부담은 6만 오천원인데 25000원만 내고 하라고 하도 권해서 했던 것이다.
오늘 서류해주면 2년 거처 3년 동안 균등 상환 이자11.5% 축협에 넣어야 한다 해쓰며 그렇게 서류해 넣어다.
뒤우로 다끈어 줄때까지 이상 없어야 할탠데 9시 다 되서 갔다.
내가 병원한번 갈 때 나가는 길이 있으면 적선 한 번 하게다고 약속 했다. 오늘도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하고 잤다.
3월25일 바람
영하5도까지 수온주가 떨어저다 온상고추 묘종 반은 얼어 죽엇단다.
어제 밤부터 강한 바람이 불며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기상예보가 나왔다.
고추묘종이 얼어 죽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다 그냥 잤다.
아침 먹고 온상에 가봐다며 금화 와서 다 죽어 버려 드라고 했다.
이걸 어쩌면 될까 지금 새로 씨를 사와뿌릴까 그냥 둘까 꾀 걱정이 된다.
다행히 낮에 형수씨하고 해숙이 가보니 반은 살아다는 이야기다. 집터와 고란에나 심고 품무골은 땅콩이나 심자고 해다. 그렇게 할까 생각 중이다. 머 되는 데로 해보자 어떻게 데게지..
저녁때 두데기와 거적과 갑바 등을 가지고 가서 덮었다. 살아남은 것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다.
한마끼 정도 심을까 고추가 값이 싸니까 이잰 많이 하기 실어진다.
오후 늦게 군 복지계 휠췌 신청 문의 해떠니 6월경에 도에서 날짜 내려오는 데로 연락 준다하여 진단서 문의 해떠니 그때 가서 서로 편리한데로 하도록 하자고 했다.
대구 총무 박광배씨 한태 전화했다. 지부장님 이하 간부 회의가 있다고 했다.
진단서와 휠췌어에 대해 상의 해떠니 마침 잘 해따고 했다.
그리고 귀비탕과 온담탕 합방 예기와 결핵 영남병원에서 전배 3기까지 간는 것 6개월 치료했다가 완치 데다 해스며 한약으로 치료 간장 부담가지 않게 하라고 했다.
이길자 안부와 우동이 주소 알았으며 최현숙씨 나에 기도를 한다고 했다.
기도 많이 해 달라 해쓰며 저녁 기도하고 잤다. 관세음보살
3월 26일 맑음
금화가 아줌마들과 사방 부역을 갔다.
아부지는 과원에 거름 흩으로 가시고 나는 아랫목에 엎드려 일기 쓰고 한자 연습을 하였다.
금화는 점심 싸가지고 아줌마들과 부역 나무 심으로 오른데 갔다.
아부지 오셔서 점심 국을 데우는데 금화는 마치고 와서 점심을 차려주었다.
기도하며 독경을 하며 외우기도 하며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27일
대구 광배씨한태서 전화가 왔다.
휠췌 때문에 지부장님께 알아본즉 내가 생각 한 것 가치 안 되니 힘들더라도 지정병원 의사 진단서 첨부 하도록 하라고 전화가 왔다. 잘 알았다 하고 저녁에는 영국 아제 한태서 전화가 왔다. 소석회 30포 과수원에 갔다 노앗다는 전화 였다.
안 올 줄 알아더니 와서 내일치기로 하고 고마웠다.
28일
오전 아부지 가서 소석회 여기저기 지게로 저넣어 놓고 오셔다.
오후 금화와 함께 30포를 다 고루 뿌리고 왔다.
나는 날마다 방안에 있다. 겨우 방이나 쓸고 마당이나 쓸고 저녁소죽이나 안쳐주면 불이나 넣고 티브이나 시청하고 기도 하고 염불 정진 하며 이렇게 날을 보낸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집에서는 아무 필요 업는 존재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위하여 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 하자 기도하자 나와 같은 병으로 고생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자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내 몸에 모든 병을 낳게 하시고 나와 같은 병으로 괴롬 속에 있는 환우를 제도하게 하소서 하루 빨리 좋은 약이 개발 연구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3월29일 일요일 맑음 된장 고추장을 담았다.
오늘이 3월 초하루 정월달에 마처보니 3월 3진날보다 초하루 날이 날이 더 좋아서 날을 정해두었다가 며칠 전에 우물을 치고 15일전에 메주를 씻어두었다.
어제는 장단지를 그을러서 씻어두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일년 동안 먹을 된장을 담았다.
고추장도 혼합 하려고 밀가루 삭혀 둔 것이 끓이니까 너무 적어서 반도 혼합 하지 못했다.
한 솥 더 삭혀서 끓여 가지고 마저 해스며 강낭콩 일 두와 보리 한말 봐꾸기로 하고 뒤집 아지매와 얘기 해다.
가지고 온 것 소를 먹이려고 분쇄기에 엿기름과 금화 갈았다. 참 잘 갈렸다.
나는 오늘도 별로 하는 일은 업지만 장 담는데 소금을 물 한 바게쓰에 소금 한 되 넣으라하고 땅콩 까던 것 어제 오늘 마저 까다 제수씨 선예 기성이 대리고 넘어왔다.
뒤뜰아제 둘째딸 결혼식을 영월에서 식을 올린다고 청첩이 와서 갔다 오시라 해떠니 아이들 대리고 너무 멀어 안 갔다 하신다. 부조금 5천원 용계 아지매 한태 보내다.
30일 날 맑음 월요일
금화 아부지하고 과수원에 덜 갈린데 괭이로 쫘서 짚을 피고 하루했다.
고추장을 제수씨 알아서 해 넣어다. 간이 싱거우면 여름에 맛이 간다 짭짤하게 썩어라 하고 고추장 한말 량에 소금 2되 정도 넣어야한다는 소리 금화 보고 해다.
저녁소죽 끌이고 티브이 시청하고 어제 오늘은 아이들과 분주하게 보내다.
기성이 선예가 이제 많이 큰 것 갔다
귀여운 것들 우리집에 보배들이 아닌가 부처님 그저 건강하게 무럭무럭 크게 하소서 관세음보살
3월 31일 화요일 흐림
쓸쓸히 보내고 잇는데 오후 반가운 소식이 왔다.
금화는 군 지도소에서 신부수업 강의 할여고 해숙이와 가고 제수씨는 아이들 데리고 함께 넘어갔다.
시끌 시끌 하다가 모두 훌쩍 가버리니 쓸쓸이 나만 혼자 남아있다.
명심보감을 읽어보고 쓰고 하다가 오전에는 집 안밖을 모두 쓸고 청소를 하고 나니 내가 이럭게나마 움직이며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아침에는 눈발이 날려서 아랫목에 누어다니 상철이 모가 오셔다.
진영 앞에 인사드리고 대밭 골 저근집에 진영을 그대로 모시자고 예기하고 갔다.
하계 아지매 오셔다. 며늘이 한테서 온 편지를 좀 읽어달란다. 읽어주고 길수어른 흉 좀 보고 법회 갈 예기 하시다 가고 오후 염불 듣고 명심보감 쓰다니까 대구 광배 한테서 전화가 왔다.
대구근처 홀아비 장애인 살고 잇는데 방 월세 한달에 3만원 정도만 내고 부식비 용돈 조금 준비하여 와있으면 도청에 근무하는 분이 장애자들을 도와 준다고 했다고 전화가 왔다.
네 깊이 생각해보게다 너무 고맙다. 전화세 올라갈까봐 다른 이야기 더는 업지요 하고 끈었다.
내가 실례다 감사하다 수고하라 하고 끈어야 하는대 광배씨 이해하리라 믿으며 어떻게 할까?
저녁소죽 끓이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디론가 훨훨 가보고 싶다. 결핵이 문제다. 일단은 결핵이 활동하는지 안하는지 건강을 체크해 보고 결정해야 된다고 답하고 가정문제로 급히 훌쩍 떠날 수 없으니 깊이 생각 해보고 연락주기로 했다.
저녁 금화한태 임동 문옥화 신승민등 전화가 왔다.
영봉 왔다 가고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 하고잤다. 부처님 감사 합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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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간이 없어 명심보감님의 일기를 읽지 못하고 댓글만 남깁니다.
지난 설에는 차례상를 차리시던 제주(祭主)가 이번 설에는 지방(紙榜)의 신주(神主)로 설을 맞으시는
안타까움앞에서 잠시 명심보감님을 그려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한치앞도 분간할 수 없다는 인생사를 실감합니다.
지난 설날만 해도 형님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살자고 설 차례를 올렸건만,
그 맹세 어디로 사라지고 이번 설날엔 아버지와 나란히 지방의 신주로 모셔야 하다니요.
형님께서 살아생전 그토록 써놓은 일기를 컴 파일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한 정성을 원이라도 들어줄 양으로
그 지난 일기를 올리고는 있습니다만... 이게 잘 하는건지 어떤건지도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시점에서 형님을 그려보는 호돌이님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