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절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목적은 멸절이 아닙니다. 회개의 가능성마저 상실해가는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려는 것이고, 매를 들어서라도 기어이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기필코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짓밟히고 포로로 끌려간 후에야 유다 백성은 비로소 우상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그날이 이르면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출하여 예루살렘 땅으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출바벨론’은 ‘출애굽’보다 더 위대한 구원 사건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지만, 이후로는 ‘북방 땅(바벨론)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주시는 시험과 징계도 우리가 속해 있는 새출애굽(십자가와 부활) 사건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건이 나의 삶을 형성해가도록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16-18절 하나님의 뜻이 심판을 통한 연단과 정화라면, 그 심판을 수용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부가 두루 퍼져 있는 물고기를 남김없이 포획하듯, 포수가 산과 바위와 동굴에 숨은 사냥감을 낱낱이 사냥하듯,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아무리 숨어도 찾아내어 심판하실 것입니다. 경건한 척하며 죄를 숨겨도 ‘미운 물건의 시체’(‘시체 같은 우상’, 새번역)로 하나님의 거룩한 땅을 더럽힌 일들을 폭로하시고 그 악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구원은 죄에 대한 묵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화끈하게 죄짓고 뜨겁게 회개하면 심판을 면제해주는 제도일 수 없습니다.
19-21절 유일한 힘이고 요새이며 피난처이십니다. 온 열방이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참 능력의 하나님에 대해 배우기 위해 유다로 모여들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강대국의 우상을 섬겨야 그들처럼 부유해지고 강성해질 거라 믿으며, 하나님을 열등한 신으로 전락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릴 자부심마저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내 삶은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명예와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첫댓글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이스라엘 백성은 말로는 입으로는 회개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숨길수가 없고 결국엔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임을 알게 하시리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내가 무릅꿇게 하시고 통곡으로 참회하는 눈물을 쏟아 아버지 앞에 올리게 하옵소서 속시원한 회개를 하게 해주셔서 아버지와 더욱 친밀하게 해주옵소서 아버지께 감사로 살게 하시고 오늘도 또 감사하게 하소서 나에게 매일 감사할 것을 무한으로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