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연변 사과배 재배기술 일인자 최대천씨의 삶
대만의 인기 탤런트 임청하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배다.아세아에서 제일 큰 용정사과배만무과원은 현재 34만그루의 사과배나무가 자라고 있다. 과농 대부분이 중국동포들이고 사과배재배기술도 다른 과일나무에 비해 복잡하고 과학적이다. 겨울철 지나 전지하고 화분하고 휴과하고 비료 주고 농약 치고 물도 줘야 한다. 이 모든 재배기술을 규범화한 사람이 바로 <<사과배재배기술 규범>>(1989년판)의 저자이자 당대조선족인명사전에 올랐던 최대천(81세)씨다.
▷어린시절
1934년 7월 28일 화룡현 숭선향 원봉촌 늦둥이로 태여난 최씨는 3살적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세 형님과 함께 북한 회령으로 갔다. 최씨가 4살 되던 해 20살 된 큰 형님이 그냥 넷째라고 불리던 최씨에게 대천(大天)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큰 형님이 지어준 이름을 지금도 쓰고 있다고 했다. 1943년 최씨가 9살 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자 4형제는 중국 화룡에 살고 있는 삼촌을 찾아 다시 중국으로 왔다.
집이 너무 가난해 학교도 다니지 못하던 최씨는 1947년 14세때에야 겨우 화룡소학교에 입학했다.그것도 나이가 있어 바로 4학년부터 다녔다.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던 최씨는 밤 새워 공부했다.그러나 결국 4학년에서 다시 재학했지만 나이가 있고 고생도 했고 자각적으로 공부해 소선대 대대장으로 되였고 1951년3월 화룡중학교에 입학했다. 800명중 시험쳐서 합격된 마지막 한명이 최씨였다.그해 4월 바로 입탄했고 1953년 졸업시 학생회 비서장까지 했다.
또 <동북조선일보(지금의 연변일보 전신)>에 "조국의 앞날은 나의 전도다"라는 글도 발표했다. 최씨는 소학교에는 늦둥이학생이였지만 연변제2고중(지금의 연변1중)에 입학해 3년 내내 반장으로 되였고 1956년 연변대학 농업전과(전 연변농학원)에 입학해서는 학생회 비서장,반장,탄서기까지 했다.
▷과수농 전문인의 길을 가다
1959년 대학 졸업후 최씨는 연변과학연구소(1958년 건립) 과수연구실에 취직했다. 그후 김시룡새벽농대 선생님, 탄서기로 2년 있었다.
1963년~75년까지 농업기술추관잠에 출근하면서 개산툰, 동성 2곳에 있었다.
1964년에 연변자치주 제1임 서기 주덕해가 동성대대에 연변황소기지를 세우고 과수원 130쌍에 당지 기술일군을 써야 한다고 해서 최씨가 가게 되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나 1969년 공사 각 기관에서 모두 농촌으로 내려 가고 최씨 혼자만 남아 30여명이 하던 파출소,민정,사법,부녀주임 등 일을 혼자 했다. 3분에 한번씩 전화가 왔고 밭기슴 얼마 매고 밭을 얼마 번지고 등 농정회보를 매일 했고 외조 하루 100장 내지 150장을 떼였다.
1971년 최씨는 끝내 당에 가입했다. 1975년 용정과일공사에 직장을 옮겨 생산조 조장,생산고 고장,당총선전위원,부경리로 있었다. 52세때 용정현으로 또 옮겨 현대화기지판공실,농업국,특산국에 있다가 1994년에 퇴직했다.당시 최씨는 중국농학회 회원,길림성특산학회 회원,주특산학회 회원,시 과수학회 비서장 등으로 있었다.
▷1995년 중국당대조선족인명사전에 올라
최씨가 대학 졸업후 취직하면서 퇴직하기까지 35년 동안 무수히 많은 영예도 안았다.
1981년 현에서 딱 2명 뿐인 농예사 칭호를 받았고 1988년12월 고급농예사 칭호를 받았다. 사과배우질풍산기술, 산나물기지건설, 우질과일종합기술개방 등 과학연구항목이 각기 길림성2등상 수상,국가민족사무위원회,노동인사부,중국과학기술협회의 영예증서, 길림성인민정부,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선진공작자 영예증서 10여차례 수여 받았다.
1995년 《중국당대조선족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건국후부터 당시까지 정계, 사회 등 2,468명의 중국동포인사들이 이름을 올린 책이다. 또《용정현지(县志)》과수부분을 직접 집필했고 1989년《사과배재배기술 규범》,《복숭아식심충예방과 퇴치》등 저서도 집필했다.
▷ 한국에서 노무생활도 겪어
중국동포명인도 코리안드림으로 한국에 갔지만 노가다판에 전전해야 했다. 1996년 11월,친척초청으로 한국에 간 최씨는 건설회사에서 한달 100만원씩 받으면서 4개월 일하다가 일당도 뛰였고 98년 IMF가 터져 일거리가 없어서 김해,부산,울산 등지로 돌아다니다가 1998년7월 자진신고 기간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부인 임금순(79세)씨는 1997년1월 한국에 가 가정부로 있다가 2006년8월 중국으로 왔다.
이젠 80대가 된 최씨 부부는 미나리가 당뇨에 좋다는 말에 거의 매일 육도하,지신,용신 등지로 다니며 미나리도 캐며 산책도 하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
연변=정해운 기자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19호 2014년 7월 2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19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