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동 '깡통'시장
가장 부산다운 시장

깡통시장? 시장 이름 한번 요상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 '깡통시장'인가 싶다.
"와 깡통시장이냐꼬? 깡통을 팔았으이 깡통시장이제."
40여 년간 이 곳에 터를 잡은 어느 할머니의 명쾌한(?) 대답이다.
이거야 원,선문답도 아니고… 하긴,깡통을 팔았으니 깡통시장이긴 하겠다.
깡통시장.
부산 중구 부평동 부평시장 수입제품 골목을 이르는 말이다.
'외제골목'이라 하기도 하고 '도깨비 시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국제시장과 통칭해 '도떼기 시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깡통시장의 어원은 한국동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으로 부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이들이 먹던 통조림 등 깡통음식들이 미군부대에서 대거 반출된다.
이 깡통 물건들을 난전에서 사고팔았던 것이 바로 깡통시장의 시작인 것이다.
때문에 깡통시장은 국제시장과 더불어 '해방공간과 한국동란'이라는 고난과 격동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시장이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더욱 애틋이 사랑받는 시장이다.
현재 3개 블록 400여개의 점포가 각종 수입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는데,외국 상품에 관한한 무엇이든지
주문만 하면 이 곳에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
슬슬 시장 구경을 한다.
줄을 이은 한 평 공간에 수입상품들이 저마다 빼곡하게 들어찼다.
어떻게 저렇게 탑을 쌓듯 촘촘하게 진열할 수가 있을까?
깡통제품은 '레고'를 쌓듯 키 높이까지 쌓았고,양주는 양주대로 '맛있게' 진열해 술꾼들을 유혹한다.
주로 '일제,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깡통시장 명성에 걸맞게
인도,중국,태국,심지어 남미 인디오들의 수공예품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특히 일본 제품은 가전 및 전자제품을 비롯하여 주류,식료품,식기,의류,화장품,생활잡화 등등
아예 일본을 가져다 놓은 듯 하다. 일본인조차도 이용에 불편이 없을 것 같다.
중국의 유명차를 파는 곳도 있고,인도 및 태국의 화려한 전통의상과 장신구를 파는 곳도 있다.
낯 익은 일본의 유명 캐릭터가 그려진 과자도 가득 가득이다.
하도 예쁘고 신기한 물건이 많아 사진을 찍으려 들면 "와 찍는교?" 여지없이 상인들에게 제지를 당한다.
지금은 거의 정식통관을 거친 상품들이지만,예전에는 주로 '보따리 장사'들이 이 곳에 물건을 공급했다.
정식 통관물이 아닌 상품을 음성적으로 팔았던 시절이 있었기에,아직까지도 폐쇄적인 곳이 '깡통시장'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들의 '아픈 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해 안타까운 곳이기도 하다.
깡통시장은 수입상품으로도 유명하지만 다양한 주전부리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유부 속에 당면을 넣고 탕을 낸 '유부주머니 전골'과 달콤한 맛이 기분까지 좋게 하는 '단팥죽',
부산어묵을 잔뜩 넣고 볶아낸 '어묵잡채', 구수하고 매콤한 맛에 씹는 맛까지 일품인 '비빔당면'.
그 외 다양한 맛과 종류의 '죽거리'들…. 이 모든 것이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들이다.
특히 '유부주머니 전골'은 부산어묵과 함께 넣어 탕을 내기 때문에,들큰하면서도 생선육수 특유의 깊고 진한 맛이 가히 부산의 맛이라 할 수 있겠다.
두루두루 돌며 눈요기에,다양한 주전부리를 하다보면 '눈도 부르고 배도 부르다.'
부산을 다 맛본 것 같다.
깡통시장.
공부(公簿)상으로는 '호적'이 없는 시장이다.
부산시민들이 붙여주고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살아있는 시장.
그야말로 '시민의 입'으로만 존재하는 시장.
그래서 '가장 부산다운 시장'이 바로 부평동 깡통시장이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이 그리울 때,바람 쐬듯 가볍게 깡통시장으로 가 보자.
부산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