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3 연중 제1주간 토요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히브 4,15-16)
우리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하시고 우리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하시는 예수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참회예절로 미사를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께 자비를 청하면서 미사를 준비합니다. 사실 1999년 두 차례의 대수술을 하면서 죽었다 살아난 치유기적 사건 이전에 미사를 이 참회예절로 시작하는 것이 못마땅하였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매 미사 때마다 반복하는 것이 위선으로 느껴졌었습니다. 멀쩡하고 능력있는 나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을 때였습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같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하며 살았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늘 화와 불평 불만으로 차 있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 같았습니다. 쉽게 좌절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이런 교만한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서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죄인들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죄인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똑똑하고 지혜롭다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돈과 권력을 가진 부자들은 결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
병들고 늙으면 쉽게 알게 될 것을, 어리석은 똑똑한 사람들, 부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나도 죄인입니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베드로 광장에 모여있던 신도들에게 한 부탁이었습니다.
나이 사십 중반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나면서, 나도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를, 하챦은 존재인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죄인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의 기도로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면서, 오늘도 성모님과 친구들에게 기도를 청합니다.
죄인인 세리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기뻐하며 잔치 식탁에 예수님과 많은 세리와 죄인 친구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나누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하루도 그런 날이 되도록 함께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