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죽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십자고상 (十字苦像)
나는 십자고상을 좋아한다, 사는 일이 어렵고 힘들 때 묵묵히 십자고상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신앙을 지녀서가 아니라 십자고상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큰 위안을 받게 되고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 안방이나 거실뿐만 아니라 책상 위에도 십자고상은 항상 놓여있다.
"호승 군, 자네 고통이 아무리 견디기 어렵다 한들 어디 나만큼이나 하겠는가?" 십자고상을 바라보면 예수는 늘 내게 그렇게 말한다, 어떤 때는 슬며시 십자가에서 내려와 내 어깨를 몇번 툭툭 치거나,아버지처럼 나를 안아주고는 다시 십자가에 매달려 고개를 떨군다.
나는 한때 그를 미워한 적이 있다. 언제나 완전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너도 나와 같이 하라고 억압하는 것 같아 싫었다. 사랑과 용서의 구체적 표상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아 그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힘껏 도망쳐 봐야 돌아보면 그는 늘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내 가장 가까운 이웃만이라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 또한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용서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없는 한심한 존재였다. 예수가 내게 보여준 사랑의 가르침을 당의정 처럼 포장만 하고 있었을 뿐 진정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없었다. 가슴속에 타오르는 미움과 증오의 불길을 꺼버릴 수 없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게 바라는 것을 내어주지 못했다.
화해의 삶보다 갈등의 삶을 주고, 그 갈등을 통해 내가 지닌 사랑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 같아 예수에 대한 미움은 배가 되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착하고 선한 사람을 만나면 '아,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게 하셨구나' 하고 감사하게 되지만,
남을 무시하고 짓밟고 절망과 고통 가운데로 집어던지는 악한 사람들을 보면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기도를 거둬들이고 의심하였다. 하느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사랑의 절대적 모습을 보여줬지만,그의 아들을 내 삶의 표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1984년 겨울 성탄 전야에 영세를 받으면서 나는 울었다, "어머니! 하느님이 원망스럽습니다!" 하고 어머니의 마음마저 아프게 했던 내가 영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 때문이었다.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나를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마음을 나는 그때 깨달았으며, 십자고상의 예수가 내게 하는 침묵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가 특별히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 기쁘다, 비록 그가 내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늘 나와 함께 있어주어서 외롭지 않다.
만일 내 곁에 십자고상이 없다면 나는 늘 허전하고 외로울 것이다, 밥을 먹었는데도 늘 배고파할 것이다 물을 먹었는데도 늘 목말라할 것이다,이는 마치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가족 없는 집에 혼자 사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 십자고상은 늘 내 책상 위에, 내 방 벽에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일상 속에서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을 느낀다. 그의 눈길은 늘 아버지처럼 따스하고 온화하다. 고개를 푹 숙이 있다가도 가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빙긋이 미소 짓는 것 같아 행복하다.
사실 십자고상은 여러 성당, 여러 장소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돼 있다. 막연히 십작 고상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앙상한 가슴만 하더라도 강하게 툭 불거져 나온 게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것도 있고 예수의 하체를 감싼 옷만 하더라도 왼쪽 부분에 매듭진 게 있는가 하면 오른 쪽 부분이 매듭진 것도 있으며 아예 매듭 부분이 없는 것도 있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고통스럽게 떨군 예수의 고개도 있고, 곧바로 가슴 밑으로 떨군 것도 있다 물론 이는 모두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완전한 사랑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 이런 여러 십자고상 중에서도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성공회 성당의 십자고상을 가장 좋아한다. 성공회 성당은 내가 일하던 조선일보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어서 따사로운 날이면 점심을 먹고 늘 찾아가곤 했다.
성공회 성당 뜰 나무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면 성당 출입구 붉은 바깥벽에 아주 안간적인 몸매를 한, 마치 로댕의 조각처럼 남성 근육미를 잘 드러낸 청동빛 예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십자고상은 예수를 바깥 바람 벽에 모신 탓으로 새집 지붕처럼 생긴 비막이 지붕을 고상 위로 지어놓았는데, 고상을 눈 여겨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수는 비둘기똥을 뒤집어쓰고 있다.
눈도 코도 입도 심지어 헝겁으로 살짝 가린 남근까지도 온통 비둘기 똥으로 얼룩져 있다. 서울시청 옥상에 사는 비둘기들이 심심하면 날아와 그의 몸에다 마구잡이로 똥을 내갈긴 탓이다.(1988년 올림픽 전후로 서울시청에서는 청사 옥상에 비둘기를 길렀다) 비둘기들이 팔이나 머리 위로 올라가 똥을 싸도 예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다.
아마 성공회 성당 뜰 안에 황국[黃菊]이 만발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성당 마당에는 비둘기들이 극성을 떨었다. 누가 과자 부스러기라도 던져주면 휙휙 바람을 일으 키며 힘차게 날아가 서로 과자를 쪼아 먹으려고 경쟁이 치열했다, 그날 나는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들고 그런 비둘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 한쪽 발목이 다른 쪽 발목보다 짧고 발가락 마저 이지러진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다. 그는 짙은 회색 빛 날개를 지니고 있었는데, 다른 비둘기에 비해 무척 병약해 보였다 다른 비둘기들은 과자 부스러기를 향해 푸드덕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는데,그는 뒤뚱거리며 동료들의 뒤를 쫓아갈 뿐이었다. 어쩌다가 과자 부스러기라도 쪼아 먹으려고 하면 어느새 건강한 놈이 와서 그를 힘껏 밀쳐 버렸다.
나는 그 비둘기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는 동료들 틈에 끼여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기만 할 뿐 제대로 먹이를 쪼지 못했다. 동료들이 다른 모이를 먹으려고 자리를 이동하면 그제야 남은 모이를 찾아 쪼아 먹었다. 도무지 동료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저 이리저리 쫓기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먹이를 쪼아 먹던 그 비둘기가 포르를 날개를 펼치고 십자고상, 예수의 머리 위로 날아가 당당하게 앉는 게 아닌가. 저 건방진 비둘기 좀 봐,감히 예수님 머리 위에 올라가다니! 이놈아, 네가 자꾸 예수님 머리를 밟으면 가시관 때문에 네 발도 아프고, 예수님 머리도 아프잖아!'
나는 마음속으로 비둘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비둘기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똑바로 뜬 채 두 발로 예수의 머리를 꽉 밟고 푸른 가을 하늘만 묵묵히 바라보았다. 예수도 뭐 아무렇도 않다는 듯 예의 고개를 떨군 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아, 그때 그 비둘기의 평화로움이란 아, 그 때 그 예수님의 따스하고 한없는 사랑이란!
그날 그 모습을 보고 나도 그만 마음속의 상처를 모두 예수에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예수를 미워한다느니 어쩌니 한 내가 예수는 얼마나 우스웠을까. 나는 그동안 한 마리 비둘기보다 더 거짓되고 오만했던 것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