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지요.
그저 별 뜻 없이 던진 상대의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이 와락 좋아지기도 하고, 갑자기 싫어지기도 할 때.
얼마전, 30년 가까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호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유아원에 다니던 아이들을 삼십대 성인으로 키워놓는 사이에도
같은 취미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의 친교는 꿋꿋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열 명의 회원들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이라도 세워놓은 것처럼
그 길고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저 만나면 반갑고 안 만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날따라 모임이 끝난 후 또 다른 약속 시간까지 빈 시간이 많이 남아
한 회원과 단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찻집에서 가진 그 두 시간은 삼십년 세월 동안 알았던 사실보다도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모임 구성원들 대부분이 삶이 평안한 복 받은 사람들로
가슴 한복판에 밤낮으로 찬바람 맞으며 홀로 위태롭게 서있는
자식이란 이름의 겨울나무를 안고 사는 나로서는
그 모임의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대로 이어지는 부와 명예의 계보를 확인하며 외딴 섬처럼 앉아있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듣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논의거리가 생길 때는
분명한 자기 의사를 밝히며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뜬금없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순간 ‘찰칵!’ 스위치가 켜지며 가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그녀를 많이 좋아할 것 같은 예감과 함께 단숨에 친밀함을 느꼈습니다.
이 가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알고, 아픔을 알고, 바라만 보아도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조용필의 개성있는 음색과 창법도 좋지만,
그의 노래 가사들이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참 좋아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입니다.
왜 이 가사를 읊조릴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걸까요....
아마도 거기에 투영된 내 모습... 그리고 내 아픈 자식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 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 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 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 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 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걸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 조용필 노래
길고 긴 글에 함께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소피아님, 고맙습니다~ ^&^*
커피한잔 마시며 플라위스톤님 글을 읽고
너무나 공감이되어 댓글 남깁니다.
가히 명곡이라 불릴만한 '킬로만자로의 표범 ' 가사와 곡 가수 삼박자가 이루어낸 걸작이지요.
그리고 멋진 친구의 재발견을 축하드려요.
저는 항상 그런 친구를 그리워한답니다~
공감해 주신다니 동지를 만난 듯 반갑고 기쁘네요~ ,
그쵸~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지요.
태양님께도 그런 친구가 꼭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아...글이 너무나 좋아요..
사실 저는 아직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의 의미를 잘은 모르겠어요..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가고, 또 어떤 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고
그런데 플라워스톤님 덕분에 한동안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 같아요.
무언가....그런 힘이 있는 노래 같아요.
정말요....?
아마도 필리아님이 따스한 마음으로 읽으셔서 그런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
아마 제가 더 오래 살고, 또 겪어서 노랫말 하나하나가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많더라구요~ ㅎ
그녀는 모임속의 또다른 플라워스톤님 이었던걸까요?
아무런 말도 없이 수많은 대화를 지켜보던 그녀의 마음을 30년만에 들여다보았군요~
나이 들어가면서 많은 모임속에서 아름다운 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세상 것을 즐기며 은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쩔수없이 말을 아낄수 밖에 없고요~
침묵도 때론 아름다운 것 같아요~
반가우셨겠어요~메마른 사막에서 작은 샘을 만난듯~
역시 큰 기쁨과 행복은 사람으로부터,
소통을 통해서 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화님, 반갑습니다~ ^&^*
마음이 아프네요. 이 노래는 피해야겠어요
에고.... 재기님, 죄송요~
다음엔 즐겁고, 유쾌한 글을 올릴께요. ^^
@플라워스톤 ..저도 죄송요..플라워스톤님 좋아하시는 노래..피한다고 해서요...
@재기 아니예요~ 그럴 수 있죠~ 저마다 취향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니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반갑네요~ 배일제님도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신다니~^^
게다가 노래를 잘 부르시는가보네요.
언제 기회가 되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
플라워님처럼 나도 남이 보면 안울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아마 울고 있을 겁니다. 공감합니다.
그마음이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그 마음.... 부모 마음이 다 같겠죠....
댓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보니 좋네요
그쵸~?
붐님이 공감해주시니 기쁘네요~~ ^&^*
음~~~간만에 가사만으로도 넘 좋아요^^
제비꽃님,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사를 되새길 때마다 제 마음을 어찌 이리 잘 표현해냈을까... 싶어요.
^--------^*
음~~간만에 가사만으로도 넘 좋아요
^--^
우와~ 제비꽃님, 고맙습니다~
요건 1+1 싸비쓰? ㅎㅎ
ㅋㅋㅋㅋ..이게 왜 이렇게 됬을까용~~ >_<
고맙쮸~
제비꽃님 복 받으실꺼여유~~ ㅋㅋ
플라워스톤님도요~~~~\^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