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나그네"중 제 5곡 보리수 (Der Lindenbaum )
성문 앞 우물가에서 (Am Brunnen vor dem Tore)" 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가곡은 1822년에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가 쓴 시에 슈베르트(Franz Schubert)가 1827년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보리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Winterreise) 중에서 가장 널리 애창되는 가곡이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일생을 통해서 작곡한 가곡의 수는 모두 600여곡에 이르고 있다. 과연 "독일 가곡의 왕"이라 불리어지기에 어울리는 노래수인데 만년에 작곡되었던"아름다운 물방아간의 아가씨" (Die Schone Mullerin)와 "겨울나그네" 그리고 "백조의 노래"(Schwanengesang), 이 3개의 가곡집은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으로 유명하다.
연가곡(連歌曲)이라고 하는 음악 용어는 연작 가곡(連作 歌曲)의 줄임말로 내용적으로나 성격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는 일련의 가곡을 말하는데, 전체가 하나의 음악적 체계로 엮어져 있다 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와 동시대의 詩人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전부 24곡의 가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편에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Der Lindenbaum(보리수) / Schubert(슈베르트)
1. Am Brunnen vor dem Tore, 성문 앞 우물가에 da steht ein Lindenbaum; 서 있는 보리수 ich traumt' in seinem Schatten 나는 그 그늘아래 so manchen suumi:ben Traum. 단꿈을 꾸었지 Ich schnitt in seine Rinde 가지에는 사랑의 말 so manches liebe Wort; 새기어 놓고 es zog in Freud' und Leide 기쁠 때나 슬플 때나 zu ihm mich immer fort, 찾아온 나무밑
2. ich mubt'auch heute wandern 나는 오늘도 깊은 밤을 지나 vorbei in tiefer Nacht, 떠돌아 다녔네 da hab' ich noch im Dunkel 그때 그 어두움 속에서도 die Augen zugemacht. 나는 눈을 감았네 Und seine Zweige rauschten, 보리수 가지들은 쏴쏴 소리를 내며, als riefen sie mir zu: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Komm her zu mir, Geselle, 친구여 이리로 와서 hier findst du deine Ruh, 안식을 찾아라.
3. Die kalten Winde bliesen 차가운 바람이 mir grad' ins Angesicht; 내 얼굴로 바로 불어 닥쳤네; der Hut flog mir vom Kopfe,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 버렸지만, ich wendete mich nicht. 나는 몸을 돌리지 않았네. Nun bin ich manche Stunde 지금 나는 그곳으로부터 entfernt von jenem Ort, 여러 시간이 걸리는 곳에 떨어져 있지만, und immer houml;r' ich rauschen: 그래도 여전히 나는 보리수의 소리를 듣고 있네 du fndest Ruhe dort, 너는 그곳에서 안식을 찾아라 du fndest Ruhe dort! 너는 그곳에서 안식을 찾아라!
Franz Peter Schubert (슈베르트. 1797 - 1828) Winterreise, D. 911, no.5. Der Lindenbaum (보리수)
퇼처 소년합창단(Toelzer Knabenchor)
♧ Nana Mouskouri(나나 무스꾸리) Der Lindenbaum(보리수)
슈베르트의 일생은 예술가의 슬픈 운명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입니다. 그 아름다운 선율로 만인의 가슴에 위안을 안겨 준 사람입니다.
31년밖에 안되는 짧은 생애에 가곡만 해도 6백 곡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가 일생을 통해서 얻은 보수는 57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고하니 참으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 사람입니다. 그 재능에 어울리는 무대에 오른 일조차도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미완성 교향곡 >은 그의 생전에는 한 번도 연주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한 남성의 영혼에 대하여 참으로 헌신적인 사모를 바친 여성은 여러 가지 전설에도 불구하고 아마 하나도 없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세상에 태어나서 아름다움을 주기만 하고 간 사람인가 봅니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에서, 소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14남매의 13번째였다. 그 중의 아홉은 요절을 했지만, 어린 시절의 슈베르트가 얼마나 궁색한 살림 속에서 자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음악이 있었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여 슈베르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저녁에는 식구들이 모여서 합주를 했다. 이따금 소리가 섞이면 그 것을 맨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슈베르트였다. 슈베르트는 누가 어떻게 틀렸다는 걸 지적하지는 않고, 다만 "아버지 어디가 좀 이상해요"
슈베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얘깃거리가 되는 것은 얼마 동안 가정교사로 가서 피아노를 가르친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딸 카로리이네와의 연애 사건이다. 그 얘기는 영 화 <미완성 교향악>에서도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지만, 전기 작가들의 연구에서는 사실 무근으로 밝혀지고 있다. 로맨스는 없었다. 슈베르트는 그 귀족의 집에서 하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을 뿐이며, 비인에 돌아오자 불쾌한 경험을 잊어버리기 위해 친구들과 더불어 축배를 들었다.
또 한 가지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직접 만난 일이 있다는 얘기에 관해서도 전기 작자에 따라 해석이 구구하다. 1827년 베토벤이 병석에 누웠을 때 문병을 갔다는 얘기인데, 베토벤이 슈베르트가 작곡한 악보를 보고서 칭찬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만난 일이 있는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베토벤이 작고하자 그 장례식의 횃불 행렬에 슈베르트가 참가한 것은 확실한 사실로 되어 있다. 그날 밤 선술집에 돌아온 슈베르트는 땅속에 잠든 거장의 명복을 빌어 건배를 하고, 다음에는 그 뒤를 따르는 자를 위해 건배를 했는데, 제일 먼저 베토벤의 뒤를 따를 사람은 다름 아닌 슈베르트 자신이었다.
바로 그 이듬해 가을, 하늘이 이승에 내린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그 불멸의 가곡 집 <겨울 나그네>를 남기고, 보리수에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죽거든 베토벤 옆에 묻어 달라" 그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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