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의 일심삼지(一心三止) 리더십 >
박종평(이순신 연구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같은 시대의 인물에게 영향을 받고, 또 앞 세대의 공과(功過)를 배우며 영향 받기 마련이다. 필자는 그런 관점에서 이순신의 스승이 궁금했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지난 봄 필자가 세상에 선보인 이순신 탐구서,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란 책이다.
작은 의문에서 시작했던 공부였지만 처음부터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이순신에 대한 많은 논문과 저술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이상하게도 그 부분이 공백상태였다. 자세히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이순신이 스스로 스승이라고 이야기한 사례가 없었고, 결정적으로 스승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이순신의 일상을 알려주는 기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하다 생각해낸 아이디어는《난중일기》와 전쟁관련 보고서 모음집인《임진장초》속에 언급된 주요 인물을 찾는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쉬워보였다. 명시적으로 언급된 중국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郭子儀), 송나라의 명장 악비(岳飛), 후원자였던 류성룡이 있었다. 또 이순신이 독후감을 남길 정도로 인상적인 인물이었던 송나라의 이강(李綱)도 있다.
이순신에게 책은 훌륭한 스승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진실이 감춰지는 것이 아니듯,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 이순신의 스승은 많았다. 예를 들면 이순신은 손자와 오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직간접으로 메모해 놓았다. 그들은 책으로 만난 스승이다.
ㆍ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고(知己知彼, 百戰百勝. 지기지피, 백전백승),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질 것이다(知己不知彼, 一勝一負. 지기부지피, 일승일부).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不知己不知彼, 每戰必敗.부지기부지피, 매전필패). 이는 만고의 변함없는 이론이다. (《난중일기》, 1594년 11월 28일 일기 뒤의 메모)
ㆍ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 일부당경, 족구천부)’고 했다. (《난중일기》, 1597년 9월 15일)
필자는 그런 문장들을 보면서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속의 문장과 단어들의 연원을 추적했다. 이순신을 비롯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글쓰기 방식이 고전을 인용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는 점에 착안한 무식하고 지난한 방법이었다.
순자를 만난 이순신
그 과정에서 필자에게 가장 의아하게 등장한 인물은 순자(荀子, 기원전 313?~283))였다. 이순신이 남긴 기록에 언급된 순자의 표현은 “끝과 처음을 한결같이 하라(終始如一 종시여일)”, “한마음(一心)” 등이 있다.
ㆍ여러 장수들에게는 “한번 승첩했다 하여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군사를 위무하고 전선을 다시 정비해 두었다가 급보를 듣는 즉시로 출전하되 끝과 처음을 한결같이 하라(終始如一, 종시여일)”고 엄하게 신칙하고 진을 파했습니다.
<제2차 당포ㆍ당항포 등 네 곳의 승첩을 아뢰는 계본 唐浦破倭兵狀(당포파왜병상)>
ㆍ나는 한마음(一心)으로 충효만 생각했다. 《이충무공전서》
서양 학문만 주로 배웠던 필자에게 순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인물 정도에 불과한 낯선 인물이었다. 그런 순자의 말이 이순신의 글에서 나타났을 때의 당혹감은 마치 대낮에 나타난 혜성을 본 듯했다. 헛다리를 짚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가 출간된 6개월이 지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을 제외한 이순신관련 그 어떤 전문가에게도 필자가 제기한 이순신의 스승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들어보지 못했다. 때문에 필자는 필자가 제기한 이순신 스승 화두가‘어느 한 이순신에 미친 사람의 미친 짓이 아니었나?’혹은‘정신이 나가 고의로 짜 맞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최근 얼마 전 두어 분의 전문가께서 연락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순신의 다른 스승들을 다 떠나 ‘순자’에게서 이순신의 스승을 발견한 것에 놀랐다.” 그 분들은 순자를 주목한 필자의 주장에 동감했다. 이순신이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병법의 원칙, 리더십의 핵심이 바로 《순자》의 <의병(議兵)>에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병(議兵)>은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운용하는 원칙, 현명한 리더의 자세가 그 어떤 고전이나 병법서보다 탁월하다. 순자는 용병(用兵), 즉 조직을 이끄는 핵심을 이순신이 인용했고 활용했던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무릇 어진 사람의 군대는 장수와 군사들이 한마음이 되고 전군이 함께 힘을 합친다(上下一心(상하일심), 三軍同力(삼군동력)),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아우가 형을 공경하듯 하고, 손과 팔이 머리와 눈을 보호하고 가슴과 배를 덮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용병의 핵심은 장수와 군사들이 한마음으로 단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이순신이 자주 강조했던 것처럼 순자는 “끝맺음을 신중하게 하기를 처음처럼 하고, 끝과 처음을 한결같이 하는 것(?終如始 終始如一신종여시 종시여일)을 일러 크게 길(吉)한 것이라고 한다.”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한마음(一心)’, 그런 자세가 언제나 변함없이 같아야 한다는 ‘종시여일(終始如一)’의 자세를 이순신이 철저하게 지켰기에 그의 군대는 자식이 부모를 진심으로 섬기는 것과 같은 한마음의 군대가 된 것이다.
리더가 앞장서서 삼지(三止)하면 모두의 마음을 얻는다
순자는 장수의 도리에 대해서 여섯 가지 행동방침(六術), 다섯 가지 권도(五權), 세 가지 지극한 것(三止)을 주장했다. 그 중‘세 가지 지극한 것’이라는 뜻의 삼지(三止)는 이순신이 1597년 초 부산포 진격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던 근거라고 볼 수 있다.
삼지(三止)는 임금이 장수에게 그 소속 군사들을 모두 죽게 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할지라도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는 명령을 거부해 차라리 장수 자신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첫째, 장졸들을 위태로운 곳에 몰아넣어서는 안된다(不可使處不完, 불가사처불완). 둘째, 이길 수 없는 적을 공격해서는 안된다(不可使擊不勝, 불가사격불승). 셋째, 백성을 속여서는 안된다(不可使欺百姓, 불가사기백성).
이순신은 순자가 말한 삼지(三止)를 철저히 지켰다. 그는 장졸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전투를 하지 않았다. 늘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전투를 했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군사와 백성을 사지로 보내지 않았다. 이순신이 부산포 진격 명령을 거부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군사와 백성을 죽음의 땅에 내몰지 않으려는 삼지(三止)의 결단이었다. 이순신의 정확한 판단은 얼마 후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던 원균이 선조와 조정의 무리한 명령으로 칠천량에서 대패한 것에서도 증명된다.
순자는 육술(六術), 오권(五權), 삼지(三至)를 신중하고 겸손하게 실천하고, 태만하지 않는 장수를 “천하의 장수(天下之將)”라고 불렀고, 그런 장수는“신명(神明)과도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순신이 순자가 말한 천하의 장수, 천지신명과도 통하는 장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군사와 백성, 나라를 위한 한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녔고,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 그것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을 만든 근원적 지혜의 원천은 순자의 <의병(議兵)>에 있다. 어떤 분야의 리더라도 리더라면 <의병(議兵)>을 읽고 사색해 보시라. 그런 뒤 이순신처럼 과감히 결단하고 행동한다면 모두의 마음을 얻어 불패의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이순신은 위인이죠..따라하기 넘 어렵슴다. 저의 운면이 미천한 개미라서..
좋은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