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는 우리에게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돌봐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 5:7).
그런데 이 종은 믿음이 부족하여 세상 염려와 근심을 한 아름씩 짊어지고 사는 자입니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 없음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대적 마귀를 온전히 대적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는 물러갈지어다.’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무시하고 우리 주님께 더 가까이 친밀하게 연합하는 것이 진짜 대적하는 것임을 아오니 어떤 관습이나 시스템으로 대적하려 하지 않고 그 보다 더 강한 우리 주님 품에 안겨 말씀으로 교제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어느새 한 주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나는 여전히 연약한 자이오니 약할 때 강함 되신 주님만 의지하여 살게 하시고 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불구자로 살되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18:16-29
제목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들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 나의 묵상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아합을 반드시 만나겠노라고 확약한다.
그러자 오바댜는 아합에게로 가서 엘리야의 말을 전한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마자 말로 그를 공격한다.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냐?”
엘리야 왈,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안 때문이오.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바알을 따랐소.
이제 엘리야는 아합이 믿고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을 불러서 자기와 함께 참 신을 가리는 시합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아합은 사람들을 보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갈멜 산에 모은다.
이들이 올 때 멋진 장면을 놓칠 수 없었던 일반 백성들도 구름 떼처럼 그 산에 모여들었다.
엘리야는 거기에 모인 백성들을 향하여 일갈한다.
“너희들이 도대체 어느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겠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참 하나님이면 바알을 따르라.”
그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유구무언이었다.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자기 한 사람만 남았을 뿐이나 거기에 있는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이나 되었다.
그 시합 방법은 둘 다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 것이다.
이제 시합을 하는데 너희들의 숫자가 많으니 너희가 먼저 너희 신의 이름을 불러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태우도록 하라고 한다.
이에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일전에 돌입하였다.
정오가 되기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인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해 달라면서 제단 주변을 날뛰었다.
정오가 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기 시작하였다.
너희의 신이 혹여 묵상하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닌지 모르니까 좀 큰 소리로 부르라고 한다.
아니면 그 신이 잠깐 외출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잠이 들었는지 모르니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잠을 깨우라고 하였다.
엘리야의 조롱을 들은 그들은 더욱 조바심이 나서 목이 터지도록 큰 소리로 불렀다.
그뿐 아니라 자기들의 제사 관습에 따라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자해 하면서 피가 나게까지 하였다.
이렇게 낮 시간이 지나서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다 되도록 바알의 선지자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소식이나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8:2)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은 다른 게 아니라 아합에게 가서 곧 비가 내릴 것임을 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엘리야는 아합 왕을 만나서 네가 믿는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아니면 내가 믿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에 대한 대결을 하자고 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일까?
그야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니겠나?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지도 않은 참 신에 대한 대결을 펼친 이유는 곧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통탄해 하며 그들로 하여금 참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바알 신은 우상이요 나아가 마귀의 졸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역시 마귀의 사주를 받아 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알 신이 아무리 거짓 신이라 할지라도 마귀의 힘을 빌리면 얼마든지 그 제단에 불을 내릴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바알도 참 신이 되는 것이고 또한 여호와도 참 신이 되는 것이기에 결판이 날 수가 없다.
하여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당신의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르시는 마귀를 꼼짝 못하게 막으셨음이 틀림없다.
마귀가 아무리 능력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욥 2:6-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구약 시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도 그들은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다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들만 아직 오시지 않은 아들을 오신 것처럼 믿고 구원을 받았다.
그리하여 유대인을 대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역시 예수님만 보면 끊임없이 요구한 것이 바로 표적이었다.
(마 12:38-39)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치병이나 오병이어 표적과 같은 것들을 보면서 자기들의 호기심만 만족시킬 뿐 그것이 가져다주는 진짜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시면서 주님이 진짜 보여주기 원하시는 표적은 요나의 표적 곧 무덤의 표적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 무덤의 표적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표적 중의 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엘리야 역시 그들의 믿음 없음을 보고 통탄해마지 않았다.
그들에게 참 신을 구별하는 일전을 벌이는 갈멜 산 대결이 그들의 일평생에 한 번 볼 수 있을까말까 한 대결 중의 대결이 아니었겠는가?
그렇게 모여든 백성들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겠느냐고 일갈한 엘리야는 거짓 신인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먼저 공을 던진다.
물론 마귀의 능력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전을 감행한 것이다.
악한 영의 역사는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횡행한다.
예수를 모르는 이들은 이사하는 날조차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손 없는 날을 받아서 이사해야 하고, 벽에 못 하나 박는 것 역시 함부로 하지 못한다.
못을 박는 방향을 무당에게 받아서 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우환이 생기거나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사 날짜를 잡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다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일에는 예배가 우선이기 때문에 그 날을 피해서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삿짐센터를 이용해서 이사할 경우, 주일이 손 없는 날일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불신자들의 경우 대부분 일요일에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구애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손 있는 날을 잡아서 이사를 하면 이사 비용도 저렴하고 손쉽게 이사를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가리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나 역시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믿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을 선호했고 그런 믿음에 대하여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아픈 이들을 기도로 고쳐주고, 예언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복음을 알고 난 이후에는 그런 것을 전혀 부러워하거나 사모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만물 안 곧 이 땅에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지라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영생을 누리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이요 소망이다.
내 안에 감추인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오늘도 넉넉히 드러나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길 바랄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벗하여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머뭇거리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바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입니다.
무엇이 진짜 신앙인지 알지 못한 채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취하여 그것이 진짜인 줄 착각하며 살아온 내가 너무 밉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난이라는 무덤의 표적을 통하여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온전히 알게 하여 주심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목사가 된 후로도 둘 사이에서의 그 머뭇거림이 나를 휘두르며 이끌어갔었음을 고백합니다.
목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참 생명을 알고 영생을 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하여 오늘도 그 영생을 누리는 것 곧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가지오니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의 표징이 날마다 더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