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서 4편
- 세 친구와 2차 논쟁에서 욥의 변증 (욥기15장~21장)
욥기서 4편
- 세 친구와 2차 논쟁에서 욥의 변증 (욥기15장~21장)
욥기서16:1~2
부 르 심:야고보서5:11 교 독 문: 12번, 시편 19편
찬 송:31(46),266(200), 597(378), 384(434)
기 도: 1)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2)오직 주의 말씀에 의지
3)정직으로 거짓을 이기게 하옵소서
4)예수한국 복음통일, 성령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능력, 주사파 척결
1.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욥기서는 성경 66권 중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아브라함의
동시대에 살았던 욥의 이야기입니다.
욥은 실제적인 인물로 욥이 혹독한 시련을 당하여도 욥의 정당한 말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욥의 시련은 하늘의 총회에서 열린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에서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욥을 1차 하늘 총회에서 칭찬하셨습니다.
2차 하늘 총회에서도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욥을 “순전하며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욥을 참소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틀렸음을 보이기 위하여
1차 시험으로 욥의 모든 소유를 쳤습니다.
2차 시험에도 욥의 몸을 쳤으나 욥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소유에 있지 않고 모든 병에 있지 않음”을
욥을 통하여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욥의 세 친구를 보내어 논쟁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범죄하여 재앙을 받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일방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세 친구의 말들이 틀렸음을 정당한 말로 변증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굳세게 지켰습니다.
2.세 친구와 1차부터 3차 논쟁까지 가지만 욥의 변증이 승리
(욥기서3장~31장)
욥의 세 친구인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대 욥의 3차 논쟁
1차 논쟁: 3장~14장(엘리바스대 욥, 빌닷대 욥, 소발대 욥)
2차 논쟁: 15장~21장(엘리바스대 욥, 빌닷대 욥, 소발대 욥)
3차 논쟁: 22장~31장(엘리바스대 욥, 빌닷대 욥)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 세 사람은 한 통속으로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않은
생각으로 마귀로 틈타게 하는 주장들입니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차례대로
욥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맞는 것처럼 주장하였습니다.
엘리스바스가 최고 연장자로 첫 번째 자신의 주장을 하였고
다음은 빌닷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발이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친구의 주장은 동일하게 “욥이 범죄하여 재앙을 받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범죄로 인하여 재앙을 받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의 1차 시험에도 침묵하시고 2차 시험에도 침묵하고 계시지만
욥은 여호와의 깊은 뜻을 알고 싶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욥은 사단의 1차 시험과 2차 시험에서 자신 어떤 사람인지
여호와의 말씀대로 증거하였습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세 친구간의 2차 논쟁에서
욥의 정당한 말의 변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욥기서 3장부터 31장까지 읽어 세 친구의 위장된 말들이 욥의 정당한 말을
이기지 못함을 시간이 지날 수록 욥의 정당한 말에 힘이 실림을 알 수있습니다.
결국 3차 논쟁까지 갔을 때 세 친구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3차 논쟁에는 엘리바스와 빌닷이 논쟁을 폈으나 우물쭈물 되고 말았고
소발은 아예 할 말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수의 위장된 말을 공격한다 하여도 정직한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 이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내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범죄하지 않은
입술의 변증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2차 논쟁의 엘리바스의 정죄와 욥의 변증
1>자신을 돌아볼줄 모르는 엘리바스의 정죄
엘리바스는 자신이 마귀로 틈타 율법의 정죄만 있고
은혜가 없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엘리바스는 1차 논쟁에서 7일 동안 욥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아무말 못할 때
욥이 먼저 자신의 말을 경솔하게 말할 때 엘리바스에게 마귀로 틈탐으로
“욥이 죄를 지어 재앙을 받는 인과응보”라고 욥에게 말하였습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끓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욥기4:7~8)“
엘리바스가 욥에게 “범죄하여 죄를 지어 받는 재앙의
인과응보이니 회개하라”는
정죄에 욥은 반박하여 자신의 말이 경솔하였음을 즉시 돌이키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음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욥기6:10)”
이러한 욥의 1차 논쟁의 자기 주장에 반박하는 욥을 2차 논쟁에서
엘리바스는 바뀐 것 없이 더욱 세게 욥을 정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로 틈타 자리 잡을려고 더욱 밀어 붙이는 것은
무조건 우기고 보는 것입니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너를 정죄하는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욥기15:5~6)“
예수께서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남의 허물만 볼려고
하는 자에게 따끔하게 말씀하십니다.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리라(마태복음7:3,5)”
엘리바스는 왜 욥에게서 이런 끔찍한 재앙이 일어났는지 영적으로
전혀 모르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질에서 벗어난 비판으로 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체 욥을 더욱더 정죄하기에
급급하여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을 모르고 비판하는 자는 자신은 안보이고
남의 잘못만 보이는 자에게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야고보서4:12)”
엘리바스의 가장 큰 실수는 욥을 공격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욥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굽니까?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입니다. 그런데 친북 종북이 되어 친미, 한미일 공조한다고
하여 “미군 물러가라”,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주사파들이 가장 큰 주범이 아닙니까?
6.25 북한의 남침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 된 밥에 재뿌린 놈이 바로 중공 오늘날의 중국입니다.
그러므로 친중, 친북하여 사사건건 시체팔이하는 주사파 척결을 할 줄 아는
애국 그리스챤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2차 논쟁에서 엘리바스의 정죄에 변증하는 욥의 정당한 말
욥은 세 친구 중 최고 연장자 엘리바스가 욥을 정죄하고
다른 친구들 빌닷과 소발의 정죄하는 모든 것이 알고보면
다 번뇌하는 안위자였던 것을 판단하였습니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하는 안위자로구나(욥기16:1~2)”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한답시고 좋은 말은 다 하여도
오히려 하나같이 욥을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정상적인 교회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이단교회들은 정죄하여 죄의 부담감만 가지게합니다.
이단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피폐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정상적인 경건의 생활은 여호와 샬롬으로 평안과 위로받는 치료가 되는 줄 믿습니다.
평강이 있게 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 정죄가 아닌
은혜로운 자유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후1:3,5~6)”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것은 감당할만한
시험으로 결국은 위로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정죄하여 번뇌케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오직 여호와 샬롬의 이름을 부름으로
위로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 친구들은 악인의 손에 넘기짐이었습니다. 욥은 세 친구의 조롱에도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애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변백하시기를 원하노니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욥기16:20~22)”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직 중보자가 누구입니까?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 긍휼함을 받는 영원한 생명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4. 2차 논쟁의 빌닷의 정죄와 변증하는 욥의 정당한 말
1> 1차 논쟁에서 빌닷의 비웃음에 대한 욥의 변증
1차 논쟁에서 엘리바스 다음 연장자 빌닷은 옛선조의 지혜와 전통을
내세우면서 “겨우 짧은 인생을 가진 욥”이라고을 정죄하였습니다.
“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욥기8:8)“
세 친구 중 두 번째 연장자 빌닷은 아무것도 아닌 욥이 자신의 무죄를 말하니까
오히려 옛 선조들에게 배우라고 하며 욥의 범죄의 타당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년수가 길고 경험이 많고 업적이 많다고 잘 판단하고
잘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은 성경을 가지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4~15)“
1차 논쟁에서 빌닷이 욥에게 선조의 지혜와 전통을 말하면서 욥을 비웃자
욥이 변증하는 것은 “이런 재앙의 일이 왜 일어나는가”는 본질을 알고 싶어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기10:1~2)”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남의 탓인가, 아니면 부모님 탓인가가
아닌 하나님께 구하면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답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예)) 나면서 소경으로 된 자는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한복음9:1~41)
제자들이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고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요한복음9:1~2)”
제자들의 질문은 “나면서 소경된 자의 죄가 부모인가 자기인가” 둘 중
하나의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질문에 바라는 답이 아닌
전혀 다른 영적인 정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한복음9:3)”
사랑하는 여러분, 욥의 불행을 그저 죄의 대가로 받는
재앙의 정죄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 나타내시는 갑절의 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차 논쟁에서 빌닷의 견고한 비웃음에 대한 욥의 변증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욥기18:1~3)”
2차 논쟁에서 두 번째 발언을 하는 빌닷은 욥이 범죄함으로 재앙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욥이 죄로 인하여 온 것이 아님을 부정하는 것은
자연법칙까지 바꾸려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위가 그 자리에 있는데 욥이 범죄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바위를 옮기려는 억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빌닷은 욥이 범죄하여 당연히 재앙을 받는 것이라 보고
거듭 욥을 죄인 취급으로 맹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빌닷의 억지 주장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었습니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꺽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구나(욥기19:3)”
욥은 친구들이 거짓선동하는데 양심에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은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일어난 2번의 총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면서 자기들끼리
마녀사냥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거짓으로 자기에게 맹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세 친구들에게 질려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들이 죄에 대하여 심판하실 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욥이 무죄함을 판결할 자는 구속자 예수님 밖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기19:25)”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욥의 심정을 모르고 욥에게 등을 돌리었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은 “욥이 범죄하여 재앙으로 벌을 받고 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대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욥기19:19)”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도무지 낙이 없을 때 바라는 것은
육체 밖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절대희망을 가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욥기19:26~27)”
아무리 거짓으로 선동하여 정직한 자를 죄인 취급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거짓말하는 자는 그 심판을 받게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욥기19:29)”
사랑하는 여러분, 내세 신앙을 가짐으로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저 세상은 영원한 것임을 믿어 천국에 영원히 거하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2차 논쟁에서 소발은 욥을 악인으로 취급하는 것과 욥의 변증
1> 소발의 두 번째 욥을 정죄
소발은 일차 논쟁에서 욥을 말이 많고 입이 부푼 사람으로
욥을 가벼운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욥기11:1~2)”
소발이 욥을 말이 많고 입이 가벼운 사람으로 여기자 이에 욥이 변증하여
“다들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니 잠잠하라”고 일침을 하였습니다.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 내는 자요 다 쓸데 없는 의원이니라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 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
(욥기13:4,13)“
소발은 두 번째 논쟁에서는 욥을 악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상황에 따라 좋은 것을 보지 않고 거짓으로
참소하는 눈치를 잘보는 소발이었습니다.
“(욥기20:5~7)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높기가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있느냐 하리라”
소발은 욥을 악인으로 취급하여 마침내 똥처럼 사라지고 말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욥을 두 번이나 “악에서 떠난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을 칭찬하는 것 중 하나는 “욥은 악에서 떠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소발이 악에서 떠난 의인 욥을 악인 취급한다고
욥은 악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의인을 악인 취급하는
소발이 악인 취급받아 마땅하다 볼 수 있습니다.
소발은 거침없이 욥을 악인으로 낙인 찍어 몰아갔습니다.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에 물고 있을지라도 그 식물이 창자 속에서 변하며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욥기20:14)”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께서 욥을 두 번이나 “악에서 떠난 자”라 칭찬하셨는데도
욥을 악인으로 몰아가는 소발이 얼마나 어리석은 정죄를 하고 있는지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지어내어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말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보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 2차 소발의 정죄에 대한 욥의 변증
2차 논쟁에서 소발의 정죄에 대하여 욥이 변증하였습니다.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 말한 후에 또 조롱할지니라(욥기21:3)”
욥의 세 친구들이 진지하게 욥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세 친구들은 욥을 조롱하고 있음을 욥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 친구들이 욥에게 말하는 모든 논리가 욥을 치료하고 위로하고
유익한 것이 아니고 욥을 해아려는 궤휼임을 욥이 지적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아려는 궤휼도 아노라(욥기21:27)”
욥은 세 친구들과 논쟁 중에 변증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몸이 심하게 아프니까 말하기도 싫고 다 포기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순전하여 말씀을 지키고 정직하여 거짓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경외하여 여호와의 답변을 기다리고 악에서 떠난 자라
악한 자의 궤휼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한 자의 인내는 거짓과 끝까지 싸우는 변증함에 있습니다.
“이러한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
(욥기21:34)“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로 틈타 말하는 것은 거짓에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치는 것은 상대의 영적 상태를 파고들어
거짓말하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의와 진리로 거룩함을 입는 새사람이 되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에베소서4:25)”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