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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주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벧후 1:4-7)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 말씀은 마치 주님이 하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얻어 신성한 성품 곧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하여 믿음과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그리고 사랑을 쌓아야 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연약한 인간은 이런 덕목을 온전히 행하여 보배로운 큰 약속을 받거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여 내가 구할 것은 무엇을 행해서 그 약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한 창세전 언약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나는 오늘도 아버지 품에서 그 영생을 누리며 즐깁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은 공동체로 함께 예배하는 주님의 날입니다.
주의 자녀로써 이 날이 복 된 날임을 알아 성령 안에서 주를 기쁨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주일 새벽 비가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립니다.
성령의 빗줄기도 우리의 심령에 쏟아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18:30-46
제목 :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림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 나의 묵상
아합 시대에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에게 이르기 까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따르고 섬기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던 제단이 허물어졌다.
이처럼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진 것은 비단 엘리야가 영적 결투를 벌이는 갈멜산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다.
여호와 신앙이 점점 희미해지고 풍요의 신 바알과 쾌락의 신 아세라를 섬기는 그 일에 열심을 내었던 아합과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바알 선지자들이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불을 지피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신 바알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온 모든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잠자는 영혼, 죽은 영혼을 깨우는 엘리야 선지자의 외침에도 백성들은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중간 지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신앙의 현주소이다.
그런 상황에서 바알 선지자들이 아무리 외치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심지어 칼과 창으로 스스로를 자해까지 해도 그들의 신 바알은 아무런 응답이 없다.
(렘 51:17)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가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들이 아무리 자기의 신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화려하게 꾸며도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부어 만든 우상에 불과하기에 그 속에는 생기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부르짖고 외치고 자해할지라도 응답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무너진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가 불발로 끝난 이후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을 때 거기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의 이목은 엘리야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무너진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엘리야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규정짓는 것은 바로 제단, 즉 성소이다.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은 곧 성소를 짓는 것이다.
성소는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이다.
그런데 성소가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것은 불의한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
바로 기근이었다.
3년 반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으므로 해서 풍요로움이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엘리야는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제단을 수축하여 무너진 성소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인구조사를 하는 죄를 범한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으면서 하는 신앙고백은 이렇다.
(대상 22: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그 후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는데 바로 아버지 다윗이 제단을 쌓았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짓게 된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하나님은 이처럼 범죄한 그 자리, 무너진 그 자리에 성소를 짓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그 자리가 바로 성소를 지을 장소인 것이다.
무너진 제단이 있는 그 곳은 바로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이 무너진 곳이다.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단, 즉 성소를 가장 먼저 수축하는 것은 엘리야에게 있어서 지금 당장 불을 내리는 일보다 우선되는 일이었다.
엘리야는 알았다.
제단의 번제물을 태우는 불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그 곳, 즉 무덤에서 주님과 성소를 짓고 의를 세우며 관계를 회복하여 화평의 관계가 되면 자연스럽게 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처럼 목이 터져라 부르짖지도 않고 자해하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짓는 의를 세우기 위하여 제단을 수축하고 성소를 다시 짓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소를 짓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부르짖고 기도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바알 선지자들은 처음부터 불을 내려달라고 외치고 부르짖고 자해하였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먼저 무너진 제단, 즉 성소를 회복하는 일을 먼저 행하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어그러진 관계를 바로 잡는 일을 먼저 한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의가 세워진 그 자리에 하나님은 화평을 허락하신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공의의 심판이 없는 평안은 거짓 평안이다.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지어놓고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더욱이 그 집을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하였던가?
세상의 3A(Appearance, Achivement, Affluence)로 남들에게는 보란 듯 하게 보여야 하고, 하는 일마다 다 성공해야 하며, 그렇게 일군 것으로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꿈이었으며 또한 목회의 성공 조건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목사라는 타이틀만 달랐지 나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3A를 교회 안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갈구하였던 것이다.
이런 내가, 바알의 선지자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나아가 교인 수를 늘려서 교회의 세를 확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내가 일궜다는 자기주장의지가 나를 지배하였다.
내가 무엇을 해서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했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무언가를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말씀 앞에 머물러 본 적이 거의 없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면서도 그저 세상의 것들로 성도들의 마음을 채우고 축복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려고 했던 예레미야 시대의 국정 거짓선지자들이 바로 나였다.
이 복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것이 목사의 일이요 옳은 목회로 착각하면서 열심히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영혼을 죽이고 잡아먹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데, 이런 내가 어떻게 이 복음을 알고 깨달아 바른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나는 지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주님의 은혜와 감격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는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았던 그 영광을 보는 것이다.
오늘도 영원을 잇대어 살게 하신 은혜에 무한 감사드린다.
말씀묵상을 시작할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생각나지 않고 심지어 기도조차 나오지 않아 기도문을 몇 자 적지도 못하였다.
묵상을 하는 내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를 무덤이라고 하시며, 그곳에 잠잠히 머무는 나에게 주의 성소를 지어서 나를 초청하신다.
그곳에 들어가는 나를 반겨 맞으시고 화평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묵상을 시작할 때는 그 자리가 무덤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뿐이었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으니 다시금 졸음만 나를 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 한 자 묵상을 적어 내려갑니다.
여전히 어둠이지만 그 자리에 잠잠히 머무를 따름입니다.
그때 주님은 한 줄기 빛을 주십니다.
엘리야가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쪽을 보라’고 할 때 사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말하고 계속 해서 기도합니다.
그 때 먼 바다에서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 이것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저에게 비쳐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빛입니다.
오늘도 그 빛을 붙잡고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것은 말씀 앞에 잠잠히 머무를 때 주시는 말씀의 빛임을 잘 아오니 오직 말씀 앞에 머무르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졸음에 겨워 어찌하지 못하던 내 영혼에 빛을 주시고 주님과 함께 춤을 추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