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의자
배영옥
의자는 죄의식의 냄새를 갖고 있다
전생이 나무였거나 멸종한 짐승의 시체였거나
모체를 떠난 기억이거나
하나도 남김없이 버려야 하는데
나는 너무 늦었다
의자가 다시 의자가 아니었던 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자기로부터 떠나온 것
아픈 나와 마주앉아 생각해보니
함부로 의자를 떠올리기도
함부로 의자를 해체하지도 못했던 내 지난날들이 모여
생애를 이룬 것을 알겠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의자를
어떤 이는 희망의 또다른 서자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늦었다
의자라는 말이 있기도 전에
나는 늘 의자를 가지고 다녔으므로
내 의자는 항상 한쪽 다리가 기울어져 있다
ㅡ『이상한 의자』 전문
*1966년 대구 출생(2018년 지병으로 타계).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졸업.
*1999년〈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뭇별이 총총』,
*여행 산문집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첫댓글 슬픔이라 말해야 할 의자네요. 오랜 암투병으로 의자는 늘 다리가 기울어 있었을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