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한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지 못한다. 예부터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짐작할 뿐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터에 중창한 것이다. 당우에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한 대웅전과 선덕묘, 2동의 요사채가 있다.
문화재로는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쌍탑(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석등대석(石燈臺石), 마애여래좌상, 배례석(拜禮石)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주춧돌, 화려한 문양의 장대석(長臺石)을 볼 수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인 승가시가 섰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지금도 음력 3월 보름, 동네 사람들과 승려들이 함께 선덕제를 지낸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다.
부인사 석등 [夫人寺石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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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8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신라양식의 석등이다. 기단은 하나의 돌에 지대석과 하대석을 함께 만들었는데, 기단부의 각면에는 2개의 조각을 새겨넣었고 두 겹의 연꽃에는 8개의 잎을 조각하였으며 윗면에는 3단의 8각 받침을 만들어 8각의 간석(竿石)을 받치도록 하였다. 간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불을 켜는 몸체 부분인 화사석의 8각 형태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상대석과 하대석에는 두 겹의 연화무늬를 새겼으며, 화사석의 네 면에는 사각형의 화창(火窓)을 만들었다. 옥개석은 8각의 삿갓모양으로 맨 윗부분에 연화무늬를 음각하였다. 8각의 곡면이 유려하여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미 및 조화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인사 일명암지 석등 [夫人寺逸名庵址石燈]
1990년 5월 15일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하였다. 부인사 남쪽 일명암지에 있던 것을 이전·복원하여 부인사에 보관하였다. 상륜부는 없어졌고, 화사석은 파편을 근거로 복제하였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팔각형의 기본적인 석등이다. 하대석, 간석(竿石),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석은 사각형 지대석의 4면에 좌우 2구씩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윗면에는 팔각형의 연화대 받침을 조각하여 돌출시켰다. 간석은 단면이 팔각형으로 상부에는 상대석에 삽입되는 돌기가 있다. 상대석은 연판 안에 화엽문을 장식하고 위에는 3단의 받침을, 아래에는 2단의 괴임과 간석의 돌기를 꽂기 위한 홈을 만들었다.
화사석은 팔각형의 넓은 측면에는 사각형의 창을 2개, 좁은 면에는 1개씩 뚫었는데, 다른 석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구조의 기본요소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지대석과 하대석, 그리고 간석은 부인사 석등과 유사한 양식을 보이나 상대석과 화사석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팔각형 석등양식에서 약간 벗어나는 새로운 양식으로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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