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퓨전시대, 사진과 수필을 조합한 여행기를 써봤습니다.
이 글은 대구향교 청년유도회(靑年儒道會) 주관 중국탐방프로그램(2012.7.25. - 8.9)인 '광서에서 내몽고까지'의 일원으로 참여한 데 따른 개인의 기행문입니다.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냥 가벼운 읽을거리입니다. 제목를 '스케치'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2012년 7월 25일 오후, 상해의 홍차오 공항.
13:10 푸동(浦東) 공항에 내려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상해의 동서를 버스로 가로질렀다.
“동방명주가 어디야?”
누군가 좀 아는 척을 하다가 금방 잠잠해진다. 그 넓은 곳을 어찌 알겠는가. 세계의 심장부로 발돋움하고 있는 2,300만 인구의 상해….
대륙의 서남쪽 광서장족자치구의 계림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첫 목적지 유주(柳州)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첫번째 중국요리를 머릿속에 그리며 입맛을 다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16:55 출발하여야 할 비행기가 감감 무소식이다.
광동성 심천(深圳)의 ‘대폭우’로 우리가 탈 비행기가 뜨지도 못했단다. 아하, 그쪽 동네 날씨가 판을 망치는구나. 천재지변이지만 미안해선지 도시락을 서비스해준다. 의자가 모자라니 바닥에 퍼질러 앉아 난데없는 저녁을 먹는다. 수백개의 도시락을 신속하게 조달하는 양이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하기야 하늘의 일을 인력으로 어찌 하겠는가. 눈치를 보니 전부 느긋하게 있는데 우리 일행만 안달이다. 그러나 꽉 짜인 일정인데 조바심을 아니 낼 수 있는가. 하여튼 첫날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셈이다.
넘쳐나는 시간, 이리저리 기웃거리지만 마땅히 들를 곳도 없다. 만만한 곳이 서점. 25원 짜리 지도책 한 권을 사고 자기네들 말에 신기해 하는 샤오지에(小姐)들과 한 컷.
밤 10시에 계림공항에 도착, 가이드 미팅 후 버스로 3시간을 꼬박 달려 유주로 간다.
부슬비 뿌리는 밤길, 처음 가는 광서장족자치구의 풍광은 어둠속에 파묻혀있고…. 폭우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새벽 1:20에 도착한 호텔. 이름도 아름다운 여정대주점(麗晶大酒店). 호텔의 일반적인 명칭이 ‘대주점(大酒店)’이란 것은 우리에게도 어느덧 상식이 되었다.
아무튼 모두들 즐거운 모습이다. 장장 15일 여행의 첫날이 아닌가. 애써 여유롭고 즐거운 척 자기암시라도 해야 할 것이다.
7.26 오전 첫코스로 찾아간 대용담공원(大龍潭公園). 일단 유주 제일의 경승지에서 기분전환을 하는 셈이다. 거울 같이 맑고 잔잔하다는 경호(鏡湖). 갑자기 우리의 경포대가 생각난다. 다리 건너 건물 밑에 수원인 대용담이 있다.
중국 천지는 어디 가나 글씨.
마침 지나가는 촌로에게 글씨를 물어본다. 눈에 띄는 붉은 글자 어떻게 읽지요? 강산여화(江山如畵), 그림 같이 아름다운 강산! 나도 따라서 쟝-산-루-화! 외쳐주니 무척 좋아한다.
인간선경(人間仙境), 용담연우(龍潭煙雨).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최고의 찬사들이다. 용담연우가 현장감이 드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煙雨, 안개 같은 비. 그렇다, 그 날도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호를 에워싼 초록의 봉우리들. 공작산(孔雀山), 와호산(臥虎山), 어디가 어딘가. 연우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경호의 상류에 용담과 뇌담의 두 못이 있고, 뇌담 가에는 우리의 주인공 유종원이 지은 기우제문이 있다. ‘뇌당도우문(雷塘禱雨文)’이 비각 속에서 1,200년 전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공원에 도교(道敎)사원이 있고, 사원 앞에 버티고 선 두 그루 발원목이 좌청룡우백호다. 이 곳 중국 변방에서도 학업과 결혼이 인생양대사인 모양인데 나무에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중국엔 도교사원이 많다. 이번에야 알았다.(느꼈다는 말이 더 정확하지만) 우리처럼 유불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 특히 도교는 원시토착신앙의 수준이란 점. 그리고 월로(月老)가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준말로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전설의 노인이란 것을.
변방이라지만 유주는 지급시(地級市-우리의 광역시급)로 인구 364만(도심인구는 100만), 면적은 18,670㎢(경상북도 넓이)에 달한다.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의 구성원답게 장족, 묘족 등 47개 소수민족의 인구가 198만 명으로 54%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 다시 못 올 선경, 아쉬움을 못 이겨 나오면서 한 컷. 기괴한 돌 위에 마침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분위기를 맞춰준다.
배달민족이라면 꼭 들려야 할 곳,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상해, 광주를 거친 후 중경으로 옮기기 전까지, 1938년 10월부터 1939년 4월까지 이 곳 임시정부청사에서 광복전선청년공작대를 조직하였다고 한다.
중일전쟁의 파노라마 속에 항일투쟁의 힘겨운 숨결이 느껴진다.
유주시정부가 2004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항일투쟁활동전시관’을 개관하였다.
즉석 성금이 3,4백원 정도 걷혔을까. 뜻밖의 손님에 흥분한 관리인과 우리 임원단의 기념촬영은 이럴 때 눈치 빠른 내가 맡았다. 공무원 버릇일까.
양념으로 말씀이 빠질 수 없다. 아쉽게도 한족이었지만 대화는 정다웠다.
“시에셰(謝謝)”
“워스(我事)”
자기 일을 하는 것이란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이랄까.
우리가 멀리 아열대 지방의 유주를 찾은 목적은 유종원의 사당, 유후사(柳侯祠)가 있기 때문이다.
당대(唐代)의 문인정치가 유종원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실각한 후 마지막으로 유주자사로 옮겼다가 여기에서 47세 일생을 마쳤다.
당송팔대가로 꼽히는 고문대가로, 산수유기(山水遊記)와 우언소품(寓言小品)에 두루 뛰어나다고 한다. 안사의 난 이후 비참한 민생을 풍자한 글 ‘포사자설(捕蛇者說)’은 그의 대표작이다.
유종원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유후공원에는 유후사와 유종원의관묘 외에 나지묘비(羅池廟碑)가 유명하다. 역시 당송팔대가인 한유의 문장과 소동파의 글씨가 어울렸고, 석각까지 뛰어나 이를 일러 삼절비(三絶碑)라나.
“…유종원은 유주 고을을 다스릴 때에 그 백성들을 비루하다거나 오랑캐처럼 여기지 않고 예법으로 감동시켰다.…”
말하자면 변방의 오랑캐를 그 옛날 처음으로 중화의 문명권에 편입시켰다는 얘기다.
또한 이 유주에서의 고난과 성취가 유종원의 문학에 녹아들어 당송팔대가의 문을 연 역할을 했다면 그 의미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러한 행적이 오늘날 광서 최고의 명승고적으로 남았다면 역사의 행운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최선생님! 귀하신 기행문과 사진을 올려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 우리 카페가 살아 나는 것 같아 힘이 펄펄 납니다. 꾸뻑-^^
카페활성화를 위한 사무국장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주 쉬운 일인 것이 아주 어려울 때가 있는 모양이지요...
사진을 보니
같이 동행한 듯 실감이 더 납니다~
올려 주셔 감사드립니다~~~^^*
실감과 재미, 거기에 핀트를 맞춘다고 신경은 썼습니다만...
찬찬히 둘러봅니다.
글과 사진을 통해 함께 여행을 합니다.
이런 방면에 계속 노력할까 합니다. 코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