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길 홍 (의성김씨 천상문화보존회 명예회장.전국회의원)
나는 의성김씨 청계공파의 후손으로 경북 안동군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3대가 한집에서 산 우리집 아버지께서는 내앞 큰종가 종손으로 양자가신 종조부님의 막내 동생이시었다. 내가 철들기 시작한 중학시절 할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셨던 큰집 종손이신 종숙부님께서 오랜 병환으로 바깥출입을 하실 수 없었다. 차종손이셨던 재종형께서는 타지에 직장을 갖고 계서 종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때부터 할아버지께서는 청계공 5파를 대표하는 내앞 큰종가(약봉공파)의 문중 대소사와 큰집살림을 도맡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에 바쁘셨지만 문중 일을 부지런하게 살펴보셨다. 청계공.약봉공 양대조의 기제사를 비롯하여 국보 450호로 지정된 문화재 종택과 재사(齋舍)및 서원의 보수 유지관리, 역대 선조님들의 묘소 입석 고유, 위토(位土) 관리와 각급 소(所:종중의 산과 토지등 재산을 관리하는 일종의 계모임 )의 운영등 잡다한 일과 문중공금등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계산하면서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처리하셨다. 선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한 위토(田畓) 경작의 수입.지출등을 손수 결산한 문서와 돈다발을 묶은 서류뭉치를 장롱설합에 소중하게 보관하시고, 또한 수십리 밖까지 멀고 높은 산에 모신 선조묘소에 상석(床石)과 비석을 세우고 고유제를 지내시는 할아버지의 근엄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고향에서 크고 자랐다. 이런 문중 제반사를 독단적으로 추진하지 않으시고 병석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보다 연세 많은 조카이신 종손과 자주 의논하면서 챙기셨다.
내앞에서는 음력 정월 초이렛날 큰종가 종택 대청마루에서 청계대조 5파 지손들이 참석하는 문회(門會)가 열린다. 나는 중학생의 어린나이에 할아버지를 따라 낯익은 큰집에 가서 문회광경을 가끔 지켜본 적이 있다.
마침 할아버지께서 종중으로 위임받은 위토관리와 몇개 소의 결산 및 큰종가 관리문제등을 이날 문회에 설명하셨다. 나이 어려 보고의 내용에 대한 잘잘못은 몰랐으나 참석한 친척들이 삿대질을 하면서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질책하면서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망했던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께 “농사짓기도 힘드신데 고생하시면서 문중 일을 열심히 봐주시고 고맙다는 소리를 듣기는커녕 왜 엉뚱한 욕까지 얻어 먹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넘기시고 그만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종중 대소사는 싫다고 안하고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욕을 먹더라도 문중내력이나 사정을 잘아는 누군가가 심부름을 해야한다. 그래야 숭조중종(崇祖重宗)을 열심히 하는 우리 의성김(義城金)가의 전통과 미덕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우리 내앞마을에서는 할아버지(무실할배)께서 문중의 각종 곗돈도 말썽 없이 정직하고 투명하게 관리하셨고 내앞 5파의 단합과 문중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셨다. 그리고 선비의 고장인 안동(安東)의 명문유가(名門儒家)들과 우리 내앞김가 일족들이 지금까지 두터운 교분과 빈번한 내왕으로 상호 돈독한 문중 교류를 유지해오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는 후일담(後日譚)이 전해오고 있다.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하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30여년 전 의성김씨 천상문화보존회를 창립하셨다. 초대회장으로 일하시면서 뜻있는 문중 어른들과 힘을 모아 내앞 주변에 산재해 있는 선조님들의 문화유적과 정자.서원들을 유지 보수 관리하셨다. 또 내앞에 자리잡은 의성김씨 종택을 국보 450호로 지정하여 처음 국비로 보수작업을 마쳤다. 이같은 문중일에는 박정희대통령시절 청송의 족숙이신 고 김시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외손인 무실의 고 류혁인 정무수석비서관의 도움이 컸으며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나도 어른분들을 모시고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천상문화보존회 초대회장 때 천전리 비리실에 마련해 놓은 명당자리에 30년후 내가 보존회장으로 재임하던 2011년 11월 19일 청계대조 6부자분을 배향한 사빈서원(泗濱書院)을 이전 중건했다. 이밖에도 의성오토산(義城五土山) 성역화사업, 퇴암(退庵)선생 추념사업, 죽산재(竹山齋)등 불천위(不遷位) 제례, 학봉(鶴峯)선생 기념사업등 전국각지에서 우리 김문 선현들의 수많은 숭조사업들이 주손과 지손들에 의해 세세년년 연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 의성김문은 예로부터 숭조의 전통, 중종(重宗)의 열성, 돈종(敦宗)의 미덕, 봉제사(奉祭祀)의 의례(儀禮)를 어김없이 지켜왔다. 경향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면서 한결같이 조상을 섬기는 정성이 지극했다. 문중의 뿌리를 찾고 종가(宗家)를 돕고 지키는 종사(宗嗣)에 최선을 다하고 일가간에 친목을 두텁게하고 단결을 이루는 사업에 열성을 다해 참여했다. 명현제유(名賢諸儒)를 배출한 우리 의성김문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숭상하는 선비와 양반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아름답고 훌륭한 숭조중종의 전통과 봉제사.접빈객(接賓客)의 미덕을 어떻게 하면 우리 자손들에게 잘 가르치고 자랑스럽게 물려줄 것인지 모두가 함께 생각하면서 유가의 후손답게 처신하고 솔선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