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세 번째 고추끈 묶기와 들깻잎 장아찌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음력 壬寅年 유월 스무하룻날
거의 한달 가까이 이어지는 장마가 꽤 지루하기는
하지만 가뭄보다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다. 습하고
후덥지근 하긴 해도 밭에 물주기를 하는 수고로움
없고 오락가락을 반복하는 장맛비에 농작물도 꽤
잘 자라주고 있어 하는 말이다. 농작물만 그런것이
아니다. 집주변에 서식하는 온갖 야생초도 제각기
나름의 특이한 모습의 예쁜 꽃을 피워 뽐내고 있다.
원추리도 꽃피는 시기가 되었다. 길죽한 잎파리들
사이에서 긴 꽃대가 목을 쭈욱 빼고 나와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더니 끝에 예쁜 꽃이 피었다.
그래서 꽃말이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했을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촌부의 자연마트 장보기는 거의
상추, 쑥갓, 아욱을 비롯한 잎채소가 주종이었지만
요즘은 오이, 가지, 풋고추, 방울토마토, 호박 같은
열매채소가 장바구니에 채워진다. 어제는 처음으로
두 종류 호박을 첫 수확했다. 그것도 네 개씩이나...
여느해와 달리 올해는 호박을 많이 심지는 않았다.
해마다 밭가 끝부분에 갖가지 종류의 호박을 꽤나
많이 심어 수확을 많이 하여 우리가 먹는 것보다도
거의 대부분을 나눔으로 소화했다. 고추를 더 심는
바람에 종류별로 조금씩 줄이다가 보니 호박도 두
종류로 줄여 심은 것이다. 그런데 어찌나 잘 자라고
넝쿨이 무성하게 뻗어가고 있며 꽃도 피고 호박도
꽤 많이 열리고 있다. 이 추세라면 올해도 우리가 다
소화하지 못하고 나눔으로 소화를 하게 될 것 같다.
어제는 모처럼 밭일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거의 매일 후드득 거리던 장맛비도 내리지 않았고
흐린 날씨에 이따금씩 바람까지 살랑거려서 좋았다.
때는 이때다 싶어 고추끈 뭉치를 담은 배낭을 매고
밭으로 나갔다. 세 번째 고추끈 묶기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은 아내와 함께 '환상의 복식조'로 호흡을
맞춰서 하기로 했으나 아내가 다른 바쁜 일이 있어
혼자서 하기로 한 것이다. 전혀 힘든 일은 아니지만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는 것이 솔직히
더 좋다. 어쩌겠는가? 촌부의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아내는 더 바쁜 일이 생겼으니 혼자 하는 수밖에...
올해는 두 군데의 모종을 가져다 심었는데 자라는
모습도 고추가 열리는 것도 눈에 띄게 다른 것 같다.
한쪽은 풍성하게 자라는 반면 고추가 덜 달리는 것
같고 다른 쪽은 풍성하게 자라지는 않지만 고추가
더 많이 달리는 것 같다. 고추끈을 묶어주다가 보니
확연히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둘 다
지금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잖아 익을
무렵이면 별반 차이가 나지않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고추농사에 생계가 달린 것도 아닌데 예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우들과 자급자족을 할 만큼이면 된다.
지금 고추가 열리고 달리는 것으로 봐서는 충분할
것 같으니 욕심은 내지말고 밭이 내어주는 만큼에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자고 다짐한다.
혼자서 고추끈을 묶어주고 들어왔더니 아내가 잔뜩
부어있는 인상이었다. 수고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퉁명스런 말투가 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전날 저녁무렵에 잔뜩 따다놓은 들깻잎 때문이었다.
깔끔한 성격이라서 들깻잎을 한 잎 한 잎 씻느라 꽤
고생을 했단다. 안봐도 비디오다. 아마도 한두번 만
씻어도 될 텐데 서너번씩 씻었지 싶다. 고무장갑을
끼고 할 수 없는 일이라 맨손으로 씻었으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우리 물은 지하에서 끌어올리는
암반수라서 여름이라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손을 보니 퉁퉁 불어있었다. 그 고생을 했으니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내가 하는 말은
이랬다. "적당히 먹을 만큼만 따오면 되는 것이지
어디에 퍼돌리려고 이렇게나 많이 따오면 어쩌자는
거야! 장아찌는 따오기만 하면 그냥 되는 것인가?"
할 말이 없어 그냥 아내를 쳐다보기만 했다. 한참 뒤
아내가 장아찌를 담그기에는 너무 많다면서 일부는
대쳐서 냉동보관을 하여 나물로 무쳐 먹고 일부만
장아찌를 담가야겠다고 했다. 조달은 촌부 몫이고
처리는 아내 몫이라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때서야
기분이 좀 풀렸는지 들깻잎 한가득 담긴 플라스틱
함지박에 장아찌용으로 달인 간장을 붓고 있었다.
"장아찌 잘 삭아 익으면 어디에다 막 퍼돌릴란고?"
라며 살며시 웃는 것이었다. "수고했네!"라는 말 외
더 할 말이 없어 그냥 따라 웃었다가 한마디 더했다.
"장아찌는 당신이 퍼돌리지 내가 퍼돌리나?"라고...
첫댓글
두분이서 가꾸는 알콩살콩 사랑이야기
그러면서 익어가는 곡식들을 보면 늘 살아서
숨쉬는 아름다운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자족할줄 알면서 언제나 천천히 움직이시는
촌부님 내외분에게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많은 이들과 접하는 도시생활과는 사뭇다른 산골살이의 일상은 단둘이 살다보니 이따금씩 티격태격을 하지요. 그래도 함께하는 일상은 고마움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삶에 늘
활력이 넘치시는
촌부님 댁을 바라보며
저도 파이팅을 얻어 갑니다
그런가요?
대화의 상대가 없으니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면 이따금씩 티격태격도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가지가. 없어지기전에. 들려야되는데
아직은 싱싱합니다만...ㅎㅎ
요즘 야채값이 하늘을 찌르는데
촌부님댁은 넘쳐나네요
깻잎 장아찌 나두 좋아하는데~~~^^
요즘 천정부지로 채소값이 오르다는 뉴스를 접하며 이렇게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