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25:47]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그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 - 여기서 '우거하는 이방인'은 원문상 '객이나 우거하는 자'란 뜻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면서 사회적,종교적으로 이스라엘에 동화된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이방인들은 상업에 많이 종사했으며 그 결과 이들중 일부는 많은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 적대자들의 사도 시비, 그것에 의해 흔들렸던 일부의 고린도 교인들, 그리고 전체적인 이스라엘의 불신앙 등은 바울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늘 기뻐하였고
그의 성도들에게도 그리하도록 가르쳤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인 특징이다(Barrett).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 바울은 세상의 부를 거의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경제적인 가난의 상태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고린도 교인들의 영육이 부해지도록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회의 보수받기를 피했지만 그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의 가난이다(Collange).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였는가 ?
(1)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고귀한 지식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부요한 자라고 생각하였다(빌3:8). 바울이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인간의 부요함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한자가 되셨다.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바울이 '아무것도 없는 자'라고 했을 때,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관한 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이 세대'가 진행되는 동안만 쓸모 있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에는 전혀 가치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었고 '새로운 세대'를 얻었으므로 사실은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다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의미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기 때문에 오직 주 예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을 믿고 살아간다
. 한편 본절의 내용은 영적인 것에 자신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초점을 맞춘 철저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바울 사도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바울은 실로 소유와 무소유, 삶과 죽음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던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였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 야고보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새로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앞절까지는 사람 외모로 판단했을때 죄가 되는 것을 언급하였지만 본절에서 11절까지는 사람을 구별하여 판단하지 말아야 될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당시 사회에서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부류였다 그러나 그들이 돈이 없고 가난해서 사회에서 천대 받는 자들이었다고 할지라도 믿음에 대해서는 결코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기 때문이다.야고보는 여기서 미래적인 영적 안목을 가지고 세상에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시각임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자들에게 그들이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소망을 품게 하셨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모두 다 믿음이 부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는 '가난한 자'의 헬라어 '투스 프토쿠스' 에서 관사 '투스'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들이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한정된 자들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택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셀렉사토'는 부정 과거 중간태 용법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친히 선택하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 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신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보상으로 인한 약속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혀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부르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마련하셨다.
이러한 것을 믿고 바라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으며,그 결과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된다 한편 '아니하셨느냐'는 본절 상반 절에서 언급된 '택하사'와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냐'라는 의미이다. 이는 4절에서의 용법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사용한 야고보의 표현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