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다로 이민 간 여자
그렇게 눈물의 이별과 아쉬움을 뒤로한 주일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와 떠날 준비를 하는 월요일
여전한 방식으로 시부모님을 섬기며 이제 이것도, 여기 빨래도, 청소도
언제 다시 하려나 하는 생각들 속에 시간은 지나고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습니다.
콜밴이 도착 시부모님에게 절하고 나오는 뒤가 써늘했습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아들 갈 때보다 더 우시는 어머님을 안아주며 금방 다시 오겠다며 나왔습니다.
여유 있으려, 차라도 마시며 앉아 있으려 집에서 일부러 일찍 나왔는데 짐이 많아 ,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본 무게보다 더 오버가 돼 가방 만드느라,
오버차지 내느라 두 시간이 훌쩍 지났고
가방을 보내고 나니 지갑이 안 보여 또 쓰던 핸폰을 택배로 보내려 보니
안 보여 대략난감....
이미 비행기 안으로 들어간 가방에 있을 것이다 위안을 삼고
배웅 나온 친구들과 또는 아이들 배웅오신 이승민 전도사님과
차 한잔의 여유도 없이 간당간당하게 입국장을 갔고 가장 늦게 좌석에 앉았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상공을 날아 날아 12시간을 지난 뒤 토론토에 도착
토론토 입국장에서 마음이 떨려 가장 느슨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니
아름다운 미소짓는 분이 있어 그 분 앞으로 가서 섰는데
가까이 가서야 보니 할머니 수준.
의외로 간단히 끝나 휴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민국에 들어가라고...
이민국에서 심사시간
한 사람마다 질문이 길어 오랜 시간이 지났고 비행기 시간이 늦었다며
양보를 해 달라는 어여쁜 처자의 부탁을 들어 양보해주고 우리는? 하고
비행기 표를 확인하니 우리들도 그 처자 시간하고 같은 그 시간.
바삐 바삐 서두르고 싶지만 그 사람들 이민국 직원들이야
바쁠 것도 없고 서둘 것도 없으니 차 마시고 물 뜨러 가고 농담하고...
용희가 저 무섭게 생긴 여자분에게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 한 그 사람에게 걸려.....
고정관념을 깨느라 그분이 참 친절했고 용희 영어수준이 돼 의사소통이 잘 됐고
잘 통과 그 시간이 비행기 출발 5분 남긴 상태.
뛰어가니 사람들이 뛰어와 짐을 열심히 실어주기에 여긴 참 친절하기도 하지....
왠 걸 나중에 돈 달라 해서 30불 줬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어이없게 돈부터 쓰는 일이 발생.
결국 비행기는 떠나고 비행장에서 잠을 자야하는 상황이 발생.
마중 나올 식구들 생각에 콜랙트 콜을 걸다 걸다 안 걸려 못 걸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화기 빌려 한 통화 간단히 하고
나중에 콜랙트 콜을 걸 줄 알게 돼 상황 자세히 설명하고
짐을 산더미처럼 나두고 의자에 앉아 난감한 표정이 됐습니다.
짐을 열어 확인해보니 지갑과 전화기가 있어 감사.
에어컨은 빵빵하지, 다른 사람들은 반팔입고 다니는데 왜 그리 우린 추운지
캐나다에서 첫날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날 걸린 감기로 지금도 고생입니다.
24시간 문 연 커피집이 하나 있기에 커피 사서 추위를 녹여보려 아이들과 먹고
샌드위치를 사 먹으니 왜 그리 짠지.
용희가 뒤쪽에 쇼파가 있다며 즐거운 비명
우린 거기서라도 쪼그리고 가끔은 허리를 피며 감사히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밝아왔고 국내선으로 바꿔 타러 내려갔는데 비행기가 30분 연착.
하고고 캐나다 입국하기 한 번 힘드네...
다시 국내선은 밥을 안 준다는 강수말에(경험담) 대합실에서 브랙퍼스트 사 먹고.....
계속 토론토 경제에 보탬을 주는 우리.
위니팩에 도착해 남편과 만나면 어찌할까? 안아줄까? 에고 어색한데 어쩌나 했는데
남편이 먼저 환한 얼굴로 오느라 수고했다며 안아줬습니다.
얼굴이 어느새 살이 올랐고 밝아져 있어 맘이 편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호수에 위치한 집이 너무 좋았습니다.
집이 위니팩에서 가장 좋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위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고 하늘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 제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려 순간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이 좋은 환경을 주시려
그렇게
지난밤에 뻐꾸기가 울어댔나 봅니다.
위니팩에서 한국인의 위치가 참 좋았습니다.
대우를 받고 있고 인종차별이 없는 곳이지만 특히 더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은 곳이라
관공서 어디를 가도 친절했습니다.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시민증 모든 서류들이 착착 진행이 됐고 병원비 교육비도
다 무료로 됐습니다.
인컴이 있고 또 워킹퍼밋이 있기에 많은 혜택이 영주권자하고 똑같습니다.
아이들 학교도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됐습니다.
두 아이 다 좋은 학교에 가까운 학교에 자리가 있었습니다.
하루만 늦었으면 돈 많이 내는 사립으로(여긴 사립 시설이 더 안 좋음) 보냈어야 하는데
하루차이로 무료로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아주 럭키하다고 교육청,
학교 카운슬러들이 축하해줘 하나님 감사!! 저절로 나왔습니다.
조카들이 아주 잘 성장했고 마니토바 주립 의대 일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그 바쁜
중에도 아이들 학교 저희 서류를 하는데 같이 돌아다녀줘 얼마나 쉽게 일이
처리됐는지 너무 감사했습니다.
외국생활에서 길 하나 알려면 관공서 일 하나 처리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말 안 통하고 길 모르고 ...그 것을 이미 경험한 시누이 식구들에게
인도만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엄마가 일본에서 처음 외국 생활을 할 때 십분 거리를 한 시간을 돌아다니다 터득하고
시장은 어디가 좋다 터득하고 교회는 어디를 가고...고생하며 개척하시는 것을
봤기에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압니다.
아침이면 모두 일하러 나가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식사 준비를
했다가 식구들이 돌아오면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그야말로 제가 주인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저를 위해 만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해 시누이식구가 미리와 자리를 잡았고 저는 맘에 그리던 그림 같은 장소에서
재료가 없어 뭘 해야 하나 걱정 안 하고 편하게 있는 것 사용해서
음식을 맘대로 만들어 식구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는 ...
얼마 만에 가정주부로 완전하게 리턴을 했는지...
남편은 돈 벌어 오고.
저는 살림을 하고.
아 ~~~이렇게 살아볼 수 있도록 기도 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요.
역기능을 바로 잡아 달라고 가장이 제가 아니라 남편이 되도록.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 최고로 응답하심이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주일에 교회 가자고 했는데 알았답니다.
같이 갑니다.
이제 남편과 같이,
아이들과 저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일에 남편도 같이 교회 갑니다.
죽었던 제가
남편의 폭력과, 실직과 말도 안 되는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부모님
십자가 잘 지고 걸어갔다고 하나님이 부활시키셨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제 맘대로 선택 할 권리는 없지만
죽고 싶었습니다.
사는 것이 정말 싫었고 힘들어 죽고 싶은 날들이 많았습니다.
말씀이 들어오고 어느 순간 저의 자아가 죽고 주님이 제 안에서 사시며
저의 인생황로의 키를 주님이 잡은 순간부터 항해가 순조로웠습니다.
전 죽고 단지 주님만이 사시게 했는데 순조롭습니다.
할렐루야!
지금 오늘 행복합니다.
샬롬
글:정아
첫댓글 ㅋㅋ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