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1 - 2015. 8. 19
베트남 중부·북부 여행
서울 출발 -(Hong Kong Express) 환승 -(Dragon Air)- 다낭 - 호이안 왕복 - 다낭 -(버스)- 후에 -(열차)
(하노이 환승) - 라오까이 -(버스)- 사파 -(버스)- 하노이 -(Vietjet Air)- 서울 도착 (여정표는 맨 끝 편에 첨부)
1일차. 2015. 8. 11 (화) (서울 → 홍콩 도착)
- 밤 10시 30분, 홍콩 저가항공 Hong Kong Express(www.hkexpress.com)로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메이저 항공사에 비하면 몇 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홍콩까지 세시간 남짓.. 질끈 눈감고 잠을 청하면 닿는 거리다. 항공기는 만석으로 출발한다. 경인 수도권의 휘황한 불빛이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다낭 전경
2일차. 2015. 8. 12 (수) (홍콩 → 다낭 도착)
- (베트남전이 아니라 American War) 항공기는 홍콩시각 새벽 1시 15분 홍콩공항에 도착한다. 환승대기 구역에서 지루한 7시간을 기다려 다낭행 Dragon Air 항공기에 오른다. 홍콩을 경유하는 것은 유효기간이 다가온 캐세이패시픽 항공 마일리지를 소진하기 위해서다. 홍콩 출발 한 시간 40분만에 다낭에 도착한다. 다낭국제공항은 현재 하노이, 호치민과 함께 베트남의 세 개 국제공항 중 하나다. 베트남전(베트남 사람들은 이 전쟁을 American War라고 부른다) 당시 가장 중요한 공군비행장으로서 하루 수천회 출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전쟁의 흔적... 들판 한 가운데 방치된 미군 헬리콥터 격납고
- (자랑스러운 역사) 베트남은 국토면적 33만 평방킬로미터(남한의 3.5배), 인구 9천3백만으로서 투쟁과 독립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천년넘은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 938년 독립했지만 1862년부터 1954년까지 96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1954년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베트남이 승리함에 따라 제네바협정(Geneva Accord)에 따라 북위 17도를 가운데 놓고 남북이 갈라졌다. 1965년에는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여 개입을 본격화했으나 지리멸렬한 전과와 자국내 여론 악화로 1973년 철수했다. 이후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이 사이공(현재 호치민시)을 함락함으로써 베트남은 자력 통일을 이루었다. 1979년에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에 대한 불만 표시로 중국이 국경을 침입하여 잠시 유린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패퇴시켰다. 파란만장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나라다.
다낭 해안선
- (전쟁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40년전 전쟁의 흔적은 거의 다 사라졌으나 다낭 공항 활주로옆 공터에 남아있는 수십개의 항공기 격납고가 당시를 말해 준다. 남중국해의 곧은 해안선을 따라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기는 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널찍한 도로와 예쁜 건물들이 인상적인 도시는 한강(Han River)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뻗어가고 있다.
- 다낭은 호치민, 하노이에 이어 베트남 3대 도시이다. 일찍부터 서구인들이 찾아와 1535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1856년에는 선교사 박해를 구실삼아 프랑스가 침입하여 1862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병합했다. 하노이 759km, 호치민까지는 960km로 남북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물의 도시 다낭
- (스쿠터 시동 걸고) 호텔에 체크인하고 곧장 시내 탐방에 나선다. 인구 100만의 대도시이고 도시 면적이 꽤 넓어서 이동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살인적인 더위에 걸어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하루 14만동(한화 약 7천원)에 스쿠터를 렌트하여 이동 문제를 해결한다. 다낭은 도로가 넓게 잘 뚫려있어서 스쿠터 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먼저 시내 가까운 해변을 찾는다. 깊숙이 들어온 다낭만(Da Nang Bay)을 따라 넓고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다. 해변 도로를 따라 식당, 호텔, 게스트하우스, 카페들이 이어진다. 저마다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 위하여 멋을 내어 지었다. 그냥 알룩달룩하게 페인트를 칠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건물 모양과 디자인, 색감으로 멋진 거리를 연출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베트남 장인들은 여기에 베트남 고유의 멋을 넣어 독특한 건물 양식을 만들었다.
더위에서 구해 준 모터 바이크
잔뜩 멋을 낸 건물들
- (수변 도시 다낭) 린웅(Linh Ung) 사원 가는 길, 손트라(Son Tra) 반도의 해안 절벽 도로를 달린다. 전망좋은 곳마다 바이크를 멈춰 도시를 조망한다. 남중국해의 장관 너머로 아스라이 도시의 모습이 들어온다. 바다에 둘러싸이고 강이 도시를 관통하는 다낭은 베네치아처럼 바다위에 떠있는 도시처럼 보인다. 숨막히는 비경을 보며 여러 구비를 돌다 보니 67m 높이의 하얀 거대 여불상이 나타난다. 이 그윽하게 아름다운 땅에 도대체 언제 전쟁의 참화가 스치고 지나갔는지 믿기지 않는다.
린웅사원 여불상
해신각(海神閣)
- (다낭에도 한강이) 시내로 돌아오는 길, 스콜이 쏟아져 무더위를 잠시 식혀준다. 참박물관(Cham Museum)에 들른다. 아담한 작은 박물관이지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패넌트가 자랑스럽게 나부낀다.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베트남 중부지역의 대부분을 통치했던 참파왕국의 조각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사암을 가지고 조각했는데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다.
- 다낭시내를 관통하여 다낭만으로 흘러드는 한강(Han River)이 도도하다. 강위에는 네 개의 다리가 놓여있는데 모두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멋을 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Dragon Bridge(Cau Rong)다. 황금색으로 칠한 용을 새겨넣은 구조물은 밤이면 더욱 화려해진다.
Dragon Bridge
3일차. 2015. 8. 13 (목) (다낭 → 호이안 왕복)
- (분주한 베트남의 아침) 아침 7시 조금 넘은 시각. 호텔 부근 산책에 나선다. 이미 32도. 오늘 낮은 38도를 예상한다. 어제와 차이가 없다. 벌써 이렇게 몇 달 째 지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더위에 대한 내성은 놀라운 것이다.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하고 냉장도 또한 풍부하지 않다. 자판기에서 마음대로 꺼내먹은 청량음료도 만날 수 없다. 아마도 이 도시에서 에어컨 달린 방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은 호텔에 머무르는 관광객 몇 사람 정도 아닐까 싶다. 가파른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국민소득 1,500 달러 수준인 베트남에서는 이 모든 것이 호사스럽다.
- (더위에 강한 베트남인들) 그래도 시민들은 벌써 분주히 아침을 연다. 곳곳에 열린 거리 좌판식당은 먹음직스런 쌀국수와 죽을 내놓고 있다. 그래봐야 한국돈 1천원 남짓이다. 과일가게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난생 처음 보는 열대과일들을 진열해 놓았고, 냉장고도 없이 돼지고기를 다듬는 정육점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이런 날씨에 수천년 살아 DNA 깊숙이까지 더위에 적응된 사람들을 상대로 미국이 벌인 베트남전은 날씨로만 따져도 미국이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몇 발자국 움직여도 온몸이 땀에 젖는 더위에 이제 내몸에는 베트남 냄새가 땀과 함께 촉촉이 배어가고 있는 듯 하다. 한국의 더위를 떠나왔지만 그것보다 훨씬 지독한 더위를 만나고 있으니 ‘이열치열’이란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추울 정도로 시원한 내 차, 한국의 지하철, 버스가 그립다.
호이안 거리 1
-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으로 되살아난 호이안) 오늘은 스쿠터를 타고 호이안(Hoi An)에 다녀올 계획이다. 다낭 남쪽 28km, 인구 12만의 호이안은 1535년 포르투갈인들의 내항 이후 남중국해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으로 부상하여 참파왕국의 무역중심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19세기 왕국의 쇠락과 함께 프랑스의 다낭 입성에 따라 다낭에 중심적 무역항의 위치를 내주고 호이안은 잊혀진 항구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호이안 올드타운은 15-19세기 동남아시아 무역항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이유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제는 관광도시로 변모하여 다시 성장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베트남에서 보존이 잘 되었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현상이기는 하다.
손트라 반도
- (호이안 가는 낭만의 해변길) 호이안 가는 멋진 해변길은 미케(Mikhe) 해변을 왼쪽에 두고 달리는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다. 끝없는 백사장은 미군들이 차이나비치(China Beach)라고 불렀다. 멀리 손트라(Son Tra) 반도의 험준한 산들이 바다로 길게 드리워져있는 낭만적인 풍경이다. 해변을 따라 고급 리조트들이 이어진다. 길 건너편에는 해산물 음식점들이 저마다 화려한 치장을 하고 손님들을 부른다. 도시가 끝나자 열대 평원이 이어지고 들판에는 헬리콥터 격납고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전쟁의 추억이고 미군의 흔적이다.
미케 헤변 (차이나 비치)
다낭 해안의 고급 리조트들
- (마블 마운틴) 도시를 벗어날 무렵 평원에 난데없이 산들이 솟는다. 마블마운틴(Marble Mountains)이다. 높이 200m 정도 되는 산들이 화, 수, 목, 금, 토, 즉 화산, 수산, 목산, 금산, 토산... 이렇게 다섯 봉우리가 솟아있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토산(Thuy Son)에 오른다. 겉으로는 나무로 덮혀있지만 산의 속살이 드러난 곳에 가면 글자그대로 대리석 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대리석이 흔한 이곳에서는 절지붕의 추녀와 장식 같은 것들을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산 곳곳에 있는 많은 동굴은 순례객들의 보금자리였다. 그중에서 암푸동굴(Am Phu Cave)에 들어가 밖으로 난 구멍을 뚫고 나오니 정상이다. 땀으로 목욕을 했지만 남중국해의 푸른 바다를 눈시리게 바라보는 보상을 얻는다.
마블 마운틴 1
마블 마운틴 2
마블 마운틴 3
마블 마운틴 정상에서
- (스쿠터가 가져다 준 자유) 스쿠터를 달리는 동안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짧은 대화나마 나눌 기회가 생긴다. 순수한 사람들이다. 40년전 우리도 그랬다. 이 나라가 잘 살게 되더라도 순수한 모습은 잃지 말기를 바란다. 호이안 가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불과 30km도 안되는 거리이지만 편리한 이동수단 덕분에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며, 이 들판 저 들판, 이 해변 저 해변에 들리는 자유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호이안 가는 길 1
호이안 가는 길 2
- (꽃의 도시) 드디어 호이안이다. 호이안의 거리는 절반은 서양인들로 채워졌다. 중국과 서양의 영향에 베트남 고유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나타난 호이안식 도시는 참으로 절묘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집집마다 여름꽃들이 만발했으니 여기가 곧 꽃의 도시 피렌체 아닌가? 다만 아쉬운 것은 잘 보존된 옛집들이 모두 상점으로 획일화되었고 물가가 턱없이 높아 세계 유명 관광지 수준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호이안 거리 2
호이안 거리 3
호이안 거리 4
- 도시를 배회하다가 페리를 타고 공연히 강건너 마을에 다녀온다. 페리라고 해봤자 동력이 있는 나룻배 수준이지만 낭만은 만점이다. 호이안은 저녁 이후가 더 매력적이다. 일몰 이후 밤 9시 30분까지 랜턴과 각종 조명기구로 도시를 밝힌다고 한다. 정취 가득한 호이안의 저녁을 즐기고 싶지만 스쿠터로 밤길을 달릴 수는 없으니 아쉬움 속에 호이안 탐방을 마무리한다. 도시 자체의 넘치는 매력에 유네스코의 검증까지 거쳤으니 도시는 방문자들로 번잡하다. 서양인들 이외에 일본인들이 많다는 점도 특이하다. 16세기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며 무역에 종사했다는 인연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모양이다.
호이안 중앙시장
페리 1
페리 2
- 따갑게 쏘는 여름해를 곧바로 안으며 서북쪽으로 달려 무사히 다낭에 닿는다. 길도 어둡고 스쿠터 조작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무사히 호이완 왕복을 끝낸 것에 스스로 박수를 보낸다. 다낭시에 들어와서 호텔을 찾느라고 30분을 허비한다. 호텔을 곁에 두고서 인근을 몇 바퀴 배회한 것이다. 어제도 잘 찾아왔던 길인데 말이다. 방향 감각이 전보다 무디어진 나 자신을 발견하며 놀란다. 나홀로 세계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왔음을 직감한다.
다낭의 롯데마트... 이것도 한류라면 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