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建 / 중건(다시 세움)
摩9:11, 創26:18, 王下14:22, 21:3, 代下8:2, 29:3, 拉2:68, 尼2:5, 詩51:10, 傳3:15, 但9:25, 徒15:16, 加2:18
到那日、我必建立大衛倒塌的帳幕、堵住其中的破口、把那破壞的建立起來、重新修造、像古時一樣.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摩9:11)
<서론→ 겉>
摩9:11 到那日、我必建立大衛倒塌的帳幕、堵住其中的破口、把那破壞的建立起來、重新修造、像古時一樣.그날이 오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부서진 틈새를 막으며 무너져 내린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 옛날처럼 다시 회복시켜 주겠다.
위 본문 말씀은 아모스 9장에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되 옛날 다윗 왕조 때처럼, 그리고 대자연 복원(復原)의 축복을 내려주시겠다고 결론을 짓고 있다 (13~15절).
위에서 대자연의 복원은 젖과 꿀이 흘렀던 가나안 땅을 말하며 외국의 포로 생활에서 회귀(回歸)됨을 뜻한다.
重新(중신)의 重은 ‘무거울 중’이 아닌 “다시” 라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부합되는 단어로 重生이 신약 約3:3, 多3:5, 彼前1:23에 설명되고 있다. 특히 彼前1:23에서는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יחה)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彼前1:23 你們蒙了重生、不是由於能壞的種子、乃是由於不能壞的種子、是藉著 神活潑常存的道。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새 생명은 죽어 없어질 것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결코 죽지않는 것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본론→속>
1. 降禍不降福/ 복이 아닌 재앙을 줌
雖被仇敵擄去、我必命刀劍殺戮他們.我必向他們定住眼目.降禍不降福。그들이 사로잡혀 적군에게 끌려가더라도 내가 칼에 명령하여 그들을 죽이게 하겠다. 내가 그들을 지켜보리니 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앙을 주기 위해서다. (摩9:4)
降禍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이고, 降福도 역시 살아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복이다.
生死禍福(생사화복) 네 글자가 들어있는 성경 말씀은 申30:15 看哪、我今日將生與福、死與禍、陳明在你面前。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여기서 문자적으로 볼 때 살아있는 것이 福이고 죽음은 禍임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福과 禍 역시 示(하나님)의 주관 대상임을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福은 물질이다. 물질에 얽매어 살다보면 禍도 어느새 다가온다. 현실의 生과 死는 유한적이다. 그래서 허무(虛無)이기도 하다. 하지만
彼前1:23~25
你們蒙了重生、不是由於能壞的種子、乃是由於不能壞的種子、是藉著 神活潑常存的道。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因為『凡有血氣的、盡都如草、他的美榮、都像草上的花.草必枯乾、花必凋謝.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惟有主的道是永存的。』所傳給你們的福音就是這道。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위 말씀처럼 福은 물질의 한계성에 얽매여 있지만 福이 音의 파동이 될 때 영원성의 主的道가 된다. 가나안 혼인 잔치의 포도주와 오병이어의 제한된 숫자를 초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道)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道는 約1:1 태초의 말씀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은 그 얼마나 큰 福인가? 이 복은 다시 삶(重生)이다.
2. 滅絕淨盡/ 완전히 없앰
主耶和華的眼目察看這有罪的國.必將這國從地上滅絕、卻不將雅各家滅絕淨盡.這是耶和華說的。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摩9:8)
야곱 지파는 滅絕淨盡에서 제외되었다. 왜인가?
이렇게 깡그리 멸함(完全除滅)은 이스라엘人들이 여호와의 언약으로 출애굽 되었기 때문에 내버려두었으나(利26:14~39)
摩7:2-3 蝗蟲喫盡那地的青物、我就說主耶和華阿、求你赦免.因為雅各微弱、他怎能站立得住呢。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耶和華就後悔、說、這災可以免了。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한바 있기 때문에 야곱 지파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한국은 최근에 식량난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전쟁도 없었다. 야곱 지파처럼 그 지경에 들어가기 전에 Amos 선지와 같은 선지자의 기도가 있지 않았을까?
야곱 지파가 언약의 지파라면 한국도 제2의 방주(方舟)를 만들어 제2의 구원자 역할을 했으면 한다.
제2의 방주는 무엇인가? 반물질(反物質/3H+3O)을 만드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묵묵히 환경이 허락되는 대로 이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3. 重修(重新修造)/ 중수(다시 세움)
到那日、我必建立大衛倒塌的帳幕、堵住其中的破口、把那破壞的建立起來、重新修造、像古時一樣.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摩9:11)
다윗은 왕조(王朝)의 왕이었고 야곱은 지파(支派)의 족장(族長)이다. 야곱의 복원(復元)에 이어 다윗의 重新은 장차 오실 萬王之王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이스라엘은 아랍권을 뒤흔들고 있다. 히브리어는 사장되었다가 전 세계인의 언어로 변모하고 있다. 여호와의 道를 기록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를 영어로 표기하기엔 그 완전성의 결여가 없지 않다. 이스라엘은 서양과 동양의 중간 정도에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그 언어는 우리 한글의 영향을 받았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창제 이전부터 있었다. 그 예가 천부경(天符經)의 81字이다.
천부경은 철저하게 상형문자이지만 우리는 그 상형문자의 발음을 정확하게 낼 수 있다. 方舟는 백두산 고원(高原)에서 지어졌기에 천부경도 백두산 사슴의 모양을 닮고 있다. 이것은 노아 시대에 창제(創製)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下로 예표하고 있다. 下는 골골타(骨骨他) 언덕의 십자가 象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萬王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족속(族屬)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그들 조상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賽1:7-9 시온성(zion城)이 이방인에게 정복되어 무너지고 마치 포도원의 텅 빈 초막처럼 홀로 남을 것이고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원수들에게 포위된 城같이 되어 버릴 것이다. 외국 군대가 자멸할 때 비로소 회개하고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그때는 핵전쟁(亞14:12/肉必消沒)이다.
徒15:16-17
正如經上所寫的、『此後我要回來、重新修造大衛倒塌的帳幕、把那破壞的、重新修造建立起來.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叫餘剩的人、就是凡稱為我名下的外邦人、都尋求主.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여기의 主는 여호와이시다.
重新과 관련된 성경은 다음과 같다.
| 중국 성경 | 우리말 성경 |
創 26:18 | 當他父親亞伯拉罕在世之日所挖的水井、因非利士人在亞伯拉罕死後塞住了、以撒就重新挖出來、仍照他父親所叫的、叫那些井的名字。 |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
代下 8:2 | 以後所羅門重新修築希蘭送給他的那些城邑、使以色列人住在那裡。 | 후람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다시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거기 거하게 하니라 |
拉 2:68 | 有些族長、到了耶路撒冷耶和華殿的地方、便為 神的殿甘心獻上禮物、要重新建造。 |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
詩 51:10 | 神阿、求你為我造清潔的心、使我裡面重新有正直的靈。〔正直或作堅定〕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결론→ 씨>
正如經上所寫的、『此後我要回來、重新修造大衛倒塌的帳幕、把那破壞的、重新修造建立起來.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徒15:16 )
主,我要回家(나 주를 멀리 떠났다) 5절
나 바랄 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날 위해 돌아가심만 믿고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