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돈 외에도 소중한 가치들이 참 많답니다!
연피정 하시는 신부님 수사님들을 일주일 내내 동반해드리고 왔습니다. 수도회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는 형제들이라 남 같지 않았습니다. 때로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로 측은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하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청빈의 삶을 서약한 수도자로서, 이 어려운 시대 어떻게 가난을 살수 있겠는지? 이토록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가난의 가치를 어떻게 세상에 설명할 것인지 고민도 참 많이 했습니다.
복음서 전반을 살펴볼 때 부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시선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 당신의 인생 전체가 일관되게 가난했기 때문에 그런가 싶습니다.
탄생부터 시작해서,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그리고 공생활 기간 내내 가난하셨습니다. 마지막 운명하실 때는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가난의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표현을 하시며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유랑생활을 계속하셨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고 오늘 복음을 통한 예수님의 부자들을 향한 질책과 경고는 아주 매섭습니다.
그래서 때로 부자로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좀 더 심사숙고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부자, 열심히 일해서 벌은 돈을 아낌없이 ‘살아계신 하느님’이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헌하는 부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낌없이 칭찬하시는 부자입니다.
매서운 질타의 대상이 되는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돈이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돈의 위치를 하느님보다 위쪽에 설정해놓은 사람들입니다. 죽어도 자선 한번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돈 많다고 함부로 가난한 사람들 업신여기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무서운 말씀, 섬뜩한 말씀입니다. 개념 없는 부자가 강한 경고를 받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또 다른 한 가지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돈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는 수도자들, 그리고 가진 바가 없어 나눌게 없는 분들에게 오늘 말씀은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하는 묵상입니다.
재물 외에도 ‘부’라고 칭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시간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긍정적인 측면들입니다. 장점들, 경쟁력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좋은 재능들, 어떻게 보면 재물보다 훨씬 가치 있는 ‘부’입니다.
이런 ‘부’를 공동체와 이웃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기쁘게 내어놓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칭찬받는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다시 한번 설레는 마음으로 공동체와 이웃, 그리고 세상과 하느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도 중요하지만, 저 너머 세상, 하느님 나라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는 몇천 배, 몇만 배 더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수도자들에게 주어진 중차대한 과제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난을 결핍과 궁핍함으로, 비참함으로 느끼게 사회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바로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부자들을 멀리해서도 안됩니다. 부자들에게 자신들의 재물이 여러분 것이 아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들을 잘 영적으로 인도하고 설득해야 됩니다. 감동을 줘서 많이 내어놓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일입니다.
부자는 크게 두 가지 부자로 나눠집니다. 안하무인의 부자들과 착한 부자들로 나눠집니다. 절대로 모든 부자들을 싸잡아 경멸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평생 땀흘리고 정직하게 모아서 일어선 부자들, 박수받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부자로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설명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관대한 나눔을 통한 구원의 길을 선포하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저주 받은 돈도 축복이 되게 하시는 분
복권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우리나라 돈으로 3억 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된 사나이의 가족이 벌이던 자축 파티가 살인극으로
돌변하여 일가족이 패가망신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93년 9월 25일 스페인에서 있었습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경찰은 이날 현지의 한 청년이 복권이 당첨돼 4천 9백만 페세타(약 3억 원)를
타게 되자 지난 23일 가족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즐기던 중 가족에게 나눠 줄 액수를 놓고 17세의 여동생과 심하게 말다툼하다가 그만 칼로 동생을 살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기 형에게 자신에게도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말해달라고 청합니다.
유산이라면 형제에게 모두 주었을 테지만 형이 모두 가로채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전혀 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예수님은 돈이 공평하게 분배되게 하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돈보다는 사랑에 신경 쓰도록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불행은 돈 때문에 깨지는 관계 때문입니다.
월간잡지 'MONEY'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82%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돈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미국인의 53%가 최고로 걱정하는 것도 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돈보다 관계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에 유태인 세 명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가지고 있던 돈을 함께 파묻었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몰래 그곳에
되돌아와서 돈을 꺼내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다음날 세 사람은 현자로 알려져 있던 솔로몬왕에게 가서, 세 사람 중에서 누가 돈을 가져갔는가를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당신들 세 분은 매우 현명한 분들이니까 우선 내가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당신들 세 분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한 남자와 결혼하기 약속했습니다.
얼마 후 아가씨는 다른 남자와 사랑하게 되어, 처음의 남자를 만나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위자료도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위자료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파혼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노인에게 유괴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결혼할 것을 약속했었던 남자에게 파혼하자고 요구했는데도 위자료도 내지 않고 허락받았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돈을 빼앗지 않고 그녀를 그냥 놓아주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칭찬받을 사람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첫째 번 남자는 “그녀와의 파혼을 허락해 주면서도 위자료를 받지 않았던 남자가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도 첫 번째 남자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남자는 “이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첫째, 유괴라고 하는 것은 돈을 얻으려고 하는 짓인데, 돈도 받지 않고 놓아주었다는 것은
조리가 없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큰소리로, “그대가 돈을 훔친 범인이렷다! 다른 두 사람은 사랑이나 처녀와 약혼자 사이의 인간관계, 혹은 그사이의 긴장에 주목하는데, 그대는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대가 범인임이 틀림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솔로몬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돈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복권 당첨금 때문에 형제끼리 싸울 때 부모가 마음 아파함을 느꼈다면 그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남매에게 부모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있다면 형제는 싸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돈이 관계를 깨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면 이는 예수님의 현존이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만 대면 다 금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신화는 좋은 의미의 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다스라는 왕이 신으로부터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축복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버렸고 음식도 그래서 먹을 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외동딸도 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신이 인간이 황금을 제어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한다면 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역할을 하려고 하십니다.
돈을 나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에 관계가 깨지는 일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으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는 마지막 말을 하듯,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믿으면 그래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때문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일은 없습니다.
신학자 팀 켈러(Tim Keller)는 “진정한 자유는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 멍에를 메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멍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십시오.
그러면 돈과 관계의 행복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돈을 제어할 능력과 그릇이 된다면 하느님은 얼마든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2,13-21: 어리석은 자야!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15절) 하신다. 주님께서는 조심하여 크고 작은 모든 탐욕을 경계하라고 하신다. 어리석은 부자는 엄청난 소출을 거두고 근심에 빠져 한심한 말을 한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17절) 그는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19절). 미래를 내다보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땅에서 소출을 거두듯이 자기 목숨의 길이를 정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부자는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는 최후의 심판 날에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마태 25,42)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굶주린 배가 자신의 곳간보다 더 안전한 창고라는 것을 몰랐다. 그 재산을 가난한 이들의 배에 쌓았더라면, 세상에서는 모두 없어졌겠지만, 하늘에는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재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재물을 쌓아 둔다.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다. 사는 동안 모은 재물은 유산으로 상속된다. 선행, 덕행만이 죽은 사람의 동반자가 된다. 자비만이 우리를 따라온다. 그것이 우리를 하늘나라와 첫 번째 거처로 인도한다. 그래서 주님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말씀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며, 영광스러운 희망을 지닌 사람이다. 누가 그런 사람일까? 재물보다 덕을 사랑하는 사람, 그의 손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며, 모든 힘을 다해 없는 이들의 슬픔을 달래 주는 사람이다. 그는 하늘에 있는 곳간에 보화를 쌓는다. 그는 덕행과 바른 삶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몇 년 전, 강원도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영동 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앞 차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좌우로 흔들리더니 차선을 벗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졸음운전인 것 같아서 경적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경적이 들리지 않는지 계속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차선을 옮겼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옆 차선을 달리던 트럭과 추돌했습니다. 정말로 큰 소리와 함께 문제의 승용차는 몇 차례 굴러서 보호난간에 부딪힌 뒤에 멈췄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혹시 몰라서 차간 거리를 두었고, 또 옆 차선으로 옮겼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갓길에 차를 대고 119에 사고 신고를 한 뒤에, 사고 차량으로 다가가니 다행히 운전자가 별 이상 없이 창문을 통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섬뜩합니다. 만약 차간 거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또 차선을 옮기지 않았다면 저 역시 사고 당사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불과 몇 초의 차이로 말이지요.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최악의 시간도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유산 분배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형의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라고 하시면서, 세상의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해주십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이 전부이고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삶을 마친 뒤에는 아무런 쓸모없는 것임을 이야기하십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 삶을 찰나(刹那)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매우 짧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요? 이 세상 삶 안에서만 필요한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많은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편견을 재배치해 놓고 이것이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윌리엄 제임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에페 2,8)
믿음도
은총도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네.
자유의지 안에서도
우리 선택의 배후에는
늘
하느님이 계시고
우리의 선행도
믿음도
은총도
모두 그분의 선물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인색은 탐욕에서 흘러나옵니다.
아무리 가진 게 많고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부와 재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이 지상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살 집은
우리가 지상에서 올려 보낸 자재로 지어집니다.
하늘의 곳간에는 우리가
지상의 곳간에서 비워 낸 재화만큼만 쌓입니다.
타인에게 인색해서 하늘에 쌓은 자재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비운 만큼
하늘의 곳간에 쌓이는 것입니다.
집착한다는 것,
그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집착하면 집착하는 만큼 힘이 듭니다.
우리에게 잔재하는 소유에 대한 집착은
십자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이병우 루카 신부님
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2,1-10
형제 여러분,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말씀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3-21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