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동차의 놀라운 적재효율
김기택
빈틈마다 발 하나라도 더 집어넣기 위해
밀고 밀리고 비비틀고 움츠린 끝에
사람들은 모두 사각기둥이 되어 있다.
승객들을 벽돌처럼 맞추어 빈틈을 없애버린
놀라워라, 전동차의 저 완벽한 적재효율!
전동차가 급정거하자 앞쪽으로 사람들이 기운다.
사각기둥들은 일제히 흐트러지며 찌그러지고
그동안 조용하게 질서를 지키던 비명들이
찌그러진 사각기둥에서 일제히 터져나온다.
영자야엄마나여기있
어밑에아기가깔렸어
요숨막혀내핸드백내
구두나좀내리게그만
밀어어딜만져이짐승
쌍년아야귀찢어져손
가락에귀걸이걸렸어
어딜자꾸만주물러소
새끼침튀겨개년말새
드디어 전동차 문이 폭발하듯 열리고
파편처럼 승객들이 퉁겨나간다.
승객들이 미쳐 다 밀려나기도 전에
한떼의 승객들이 또 밀려들어온다.
빈틈, 퉁겨져나간 사람들 뒤에 생긴
저 좁디좁은 빈틈을 향하여
머리와 팔다리와 구두들이 밀려온다.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벽도 온몸으로 부딪쳐 밀면
발자국 하나 디딜 공간이 나온다는 것을
노련한 승객들은 잘 알고 있다.
차곡차곡 구겨넣어진 사람들을 한번 더 누르며
전동차 문이 있는 힘을 다해 닫힌다.
전동차가 출발한 다음에도 비명과 신음이
찌그러진 사각기둥마다 새어나오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정사각기둥을 되찾아가고
몸 비틀 때마다 벌어지던 빈틈도 모조리 메워버린다.
빠르고 정확하다, 우리나라 승객들의
자동화된 저 순발력!
비명과 짜증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찌그러졌던 사각기둥들은 어느새 반듯하게 펴지고
사람들은 다시 질서정연하고 고요해진다.
첫댓글 가로 세로 9, 정말 글자가 정사각형이네요 ㅎㅎ--좋습니다 이런 색다른 시!글자가 마치 그림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