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론은, 현재 주둔 중인 서방 국가들의 특수부대와 정보기관들의 활약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 운영을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지원하는 데 대한 영국과 독일간의 갈등에 이어 '파병론으로 불거진 불편한 진실-2편'으로, 우크라이나서 비밀리에 지원 작업중인 미 CIA의 공과를 따져본다/편집자
우크라이나의 군사 지원과 관련, 관심을 끄는 것은, 전쟁의 배후에서 비밀리에 활약하는 외국 정보기관이다. 특히 미 CIA와 영국의 Mi-6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월 25일,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해 10월 23일 미 CIA가 지난 10년간 우크라이나에서 구축하고 펼친 작업을 세세히 분석, 평가했다.
스파이전쟁"CIA는 우크라이나의 푸틴(대통령)과의 싸움을 어떻게 비밀리에 도왔나?/NYT 웹페이지 캡처
두 매체에 따르면, 미 CIA가 우크라이나에 발판을 구축한 것은 10년 전인 지난 2014년 '유로마이단'(친러시아 정부를 전복시킨 반정부 시위/편집자) 사건 직후다. 새로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러시아어로는 Служба безопасности Украины, СБУ) 수장으로 임명된 발렌틴 날리바이첸코는 취임 첫날 미 CIA와 영국 Mi-6에 전화를 걸어 '3자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미국은 그의 제안이 반가웠지만 매우 조심스러웠다. '오렌지 혁명'(2004년 대선 부정사건 반대 대규모 시위/편집자)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재임기간: 2005년 1월~2010년 2월) 시절, 우크라이나 정보기관과 협력했으나, 이후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바로 망가진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존 브레넌(John Brennan) 당시 미 CIA 국장이 비밀리에 키예프를 찾았다. 그리고 날리바이첸코 SBU 국장을 만나 '우크라이나를 뒤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력 관계를 맺기로 했다.
CIA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GUR, 러시아어로는 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разведки Министерства обороны Украины, ГУР)을 이끌던 발레리 콘드라추크 국장과 접촉했다. 요원 수가 5,000명 미만인 작은 조직이고, 러시아 정보기관의 침투가 SBU보다는 적은 곳이어서, 조직 쇄신및 장악이 쉽다는 판단에서다. 다행히 GUR의 수장도 미 CIA와 폭넓은 인간 관계를 갖고 있던 콘드라추크 국장이었다. 그는 이미 키예프 주재 미 CIA 담당을 만나 미국이 그동안 담당해온 '러시아 정보 요원'의 채용을 우크라이나에게 맡겨주도록 요청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설득 논리는 간단했다. "러시아인이 미 CIA와 접촉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배신이고 반역행위이지만, 우크라이나 기관과의 접촉은 가볍게 맥주 한잔을 마시며 대화하는 일로 위장할 수가 있다"는 것.
우크라이나에서 근무한 전 미국 정보 관리는 "GUR는 우리가 더 많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작고 유연한 조직이라고 판단했다"며 "그들에게 새로운 장비를 제공하고, 교육하면서 조직을 바꾸고 키웠다"고 증언했다. GUR 장교들은 소련 시절의 KGB 출신 장군이 아닌 젊은 요원들이었는데 반해, SBU는 뜯어고치기에는 큰 조직이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몇 년 간에 걸친 GUR 쇄신 프로젝트를 기획한 CIA 인사 중 한 명은 키예프 주재 CIA 조직 책임자를 맡았다가 지금은 CIA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태스크포스 팀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위로부터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정보총국(GUR), 마 CIA의 엠블렘/사진출처:위키피디아
◇ 러시아 국경지대에 스파이 기지 구축
CIA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과의 협력 관계에서 우선 순위를 둔 것은, 러시아 국경지대에 12개 '스파이 기지'를 만들고 최첨단 감시 및 전자 도청 시스템을 설치한 일이다. 또 2014년 분쟁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 즉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방문하는 크렘린 고위 관리들의 휴대전화를 해킹할 수 있도록 첨단 설비도 제공됐다. 이 설비는 우크라이나 GUR 장교들에 의해 운영됐지만, 수집된 정보는 곧바로 미국 측에 전달됐다.
전직 GUR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하루에 러시아 군과 러시아 보안국(FSB) 산하 특수 부대에서 보내는 메시지 25만~30만개를 가로챘다"며 "우리가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많아 CIA 관할의 특수시설을 통해 워싱턴으로 전송되었고, 미국에서 이를 분석했다"고 말했다.
GUR은 또 우크라이나 작전을 담당하는 러시아 FSB를 비롯해 러시아 정보기관 내에 첩보 네트워크를 구축한 뒤, 협력관계가 긴밀해진 CIA 측에게도 러시아 첩보원 접촉을 허용했다.
또 하나, CIA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우크라이나 정보요원 훈련이다. 2015년에는 키예프 외곽에 훈련 기지를 설치해 정보기관 산하 특수 요원들에 대한 흔련을 시작했다. 정보 요원들 사이에는 '금붕어 작전'으로 불렸다. 이 훈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우크라이나 관리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최전선의 배후에 침투해 '사보타주'(비밀 폭파 작전/편집자)할 수 있는 특수 부대를 구성하는 게 목표였다"고 털어놨다.
키릴 부다노프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 국장/사진출처:gur.gov.ua
현재 GUR을 책임지고 있는 키릴 부다노프 국장도 CIA로부터 훈련받은 정예 특공부대(Отряд 2245, 2245 특수부대) 장교중 한 명이었다(NYT 2월 26일). 부다노프 국장은 '2245 특공부대'에서 '떠오르는 스타'였으며, 적진의 배후에서 대담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소수 정예 요원들을 지휘하는 장교로 유명했다. 그는 작전 중 오른팔에 부상을 입자, 재활을 위해 미 CIA에 의해 미 메릴랜드에 있는 군의료 센터로 후송되기도 했다. .
특히 그는 콘드라추크 국장의 명령을 받고, 러시아군으로 위장한 뒤 야밤에 보트를 타고 크림반도에 침투해 막 배치 중인 러시아 공격용 헬기들을 겨냥한 '사보타주' 작전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작전은 실패헸고, 이 사실을 안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이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를 더이상 자극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2020년 안드리 데르카치 우크라이나 전 최고라다(의회) 의원이 포로셴코-바이든 전화 통화 내용을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포로셴코-바이든 대화 내용은 2020년 미 대선 초기에 '(부시 대통령의 차남) 헌터 스캔들'의 '스모킹 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2245 특공부대'는 돈바스 지역의 독립 투쟁을 지원한 러시아측 책임자 아르센 파블로프와 현지 무장세력 지도자(우크라이나에게는 반군 사령관/편집자) 예브게니 질린과 미하일 톨스티흐(암호명 기비)를 제거했다. 질린은 2016년 모스크바의 한 레스토랑에서 총을 맞았고, 기비는 1년 뒤 도네츠크에서 한 여성이 설치한 폭탄에 당했다. 대략 3년 사이에 러시아측 인사와 반군 사령관, 친러 협력자 등 최소 6명의 주요 인물이 GUR 작전의 희생양이 됐다고 한다.
키예프 외곽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 GUR 본부/사진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측도 '2245 특공부대' 부대장인 막심 샤포발의 자동차에 폭탄을 심는 방식으로 보복했다. 그는 키예프(키이우)에서 CIA 장교들을 만나러 가던 중 폭사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마리 요바노비치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가 CIA 현지 책임자 옆에서 조문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2245 특공부대'의 암살 대상에는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도 포함돼 있었으나, 미국 측이 끝끝내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목숨을 구했다는 게 WP의 주장이다.
◇ 우크라 정보기관 SBU와의 협력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의 쇄신은 GUR과는 다른 길이었다. 미 CIA의 지원을 받아 2014년부터 두 개의 부서(제 5국, 6국)를 새로 창설했다. 제 5국은 미 CIA가, 6국은 영국 Mi-6이 감독했다. 기존의 SBU 간부들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별도 조직을 만든다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몇 달 만(2022년 7월)에 SBU가 여전히 러시아 정보기관과 유착돼 있다는 이유로 SBU 물갈이에 나선 바 있다. 또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통신 네트워크에 러시아산 모뎀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교체하기도 했다.
미국이 러시아와의 '스파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SBU와 GUR 등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혁신에 투자한 돈은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미 정보 관리들은 밝혔다. 그 핵심은 여전히 소련(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있던 우크라이나의 정보기관을 미국 쪽으로 돌리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CIA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우크라이나 정보 요원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그림자 전쟁'을 효율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게 WP의 지적이다.
CIA는 또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생산한 첩보와 위성및 인적(휴민트) 정보 등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측에 미사일 공격 표적과 러시아군의 움직임 등을 알려주는 등 우크라이나의 방어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NYT의 결론이다. 개전 직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미 정보기관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겨냥한 군사 작전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조직의 규정을 바꾼 게 그 발판이 됐다.
NYT와 WP에 따르면, CIA는 개전 8일째인 2022년 3월 3일 러시아가 향후 2주간의 진격 예상로및 작전 계획은 물론, 우크라이나 6개 도시에 대한 폭격 계획과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들에 대한 암살 계획 등을 우크라이나 측에 제공했다. 그해 7월에는 우크라이나 첩보원들로부터 러시아군이 남부 헤르손주(州)에서 드녜프로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CIA가 Mi-6과 함께 첩보를 검증한 뒤 우크라이나군에게 알려 러시아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이같은 작전 등으로 러시아군의 공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CIA 우크라이나 책임자는 "러시아의 얼굴에 제대로 한방 먹었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러시아에 대한 핵심 정보의 제공은 CIA가 러시아와 접경 지역에 12개의 '스파이 기지'를 설치하고 러시아의 통신을 도·감청했기에 가능했다. CIA 요원들이 '스파이 기지'에서 러시아 공격 목표를 점검하고, 관련 첩보를 미국 정보기관이 가진 정보들과 대조해 정확한 지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의 정보 담당 세르게이 드보레츠키 장군은 NYT와 인터뷰에서 '스파이 기지'의 역할에 대해 "(러시아) 위성들을 해킹해 비밀 대화를 해독하는 것"이라며 "(친러시아 성향의) 중국과 벨라루스 위성도 해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 기지'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러시아와 전쟁이 발발할 경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 지휘부를 대상으로 펼치는 '게릴라 작전'이다. 실제로 헤르손 지역에서는 친 러시아 주요 인사에 대한 암살 작전으로 나타났다.
***미 CIA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들의 '사보타주'는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