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1]아름다운 사람(25)-‘수제手製경옥고’ 빙강섭
신선이 산다는 마을, 선거리仙居里(전북 임실군 운암면)에 신선처럼 살고 있는 외우畏友가 있다. 희성稀姓인 빙씨氷氏. 세조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온 분이 귀화하여 국내에 700여명이 있다고 한다. 공무원 40년을 끝으로 퇴직한 직후 2017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교 동기동창이나 같은 반班인 적이 없어 잘 모르나, 성씨 때문에 이름은 낯익었다. 그가 지난해 3월 불쑥 우리집을 찾았다. 만나보니 바로 옆반이어서 낯도 익었다. 그는 ‘준비된 귀향인’으로, 증조부모 때부터 사시던 고향의 낡은 집을 헐고 철근콘크리트로 아담한 집을 지었다. 같이 귀향한 처지, 농사도 짓기에 대화의 공통분모가 많아 종종 만난다.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 위여서 호형호제한다. 그의 집 답방을 하니, 직접 만들었다며 귀한 <경옥고瓊玉膏> 500g 한 병을 선물했다. 하도 광고를 때려 <광동 경옥고>는 알고 있었지만, 보느니 처음이었다.
조선시대 임금과 고관대작이나 먹을 수 있었다는 보약 중의 보약. 조선왕조실록에도 500여회 언급된, 지황과 복령(소나무뿌리에 기생), 인삼과 꿀, 네 가지로 만든다는 보약. 친구는 거기에 구기자를 첨가했다. 퇴직 후 국립농수산대학교에서 시행하는 일반인대상 특용작물과 1년과정을 수료하며 지황을 알게 됐다. 5가지 재료가 다 갖춰져 있으면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딱 1주일. 친구들이 찾아오면 마땅히 줄 것이 없어 경옥고 1병씩을 선물한다나. 참 좋은 생각이다. 식품의약청 등에 까다로운 건강식품 허가과정을 거칠 생각이 없는, 완전 수제手製(self hand-made).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있을까. 뜨거운 물을 부어 차로 마셔도 되고, 작은 스푼으로 원액을 그냥 떠먹어도 된다. 효능을 검색해 보시라. 거의 만병통치(면역력 증진, 간기능 보호, 건위, 거담작용, 원기 회복 등) 약같다. 6년여 동안 만든 것만 해도 100여병. 몸에 맞는 약같다며 몇 병씩 구입을 원하는 친구에게는 완전 실비(500g 1병 5만원, 시중가격은 10만원, 1kg 10만원)로 제공한다.
찾아오는 친구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친구의 마음이 가상하다. 그러고도 그는 쉬지 않고 산림공학과와 가공학과 1년과정을 수료하더니, 요즘엔 식초의 세계에 쏙 빠졌다. ‘향학열’이 보통을 넘는다. 유일한 단점은 체질적으로 술이 안받아 한잔도 못한다는 것. 그러고도 임실군청과 군산시청에서 노가다업무라 할 토목관련 업무를 전담했으니 어떻게 버텼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소득所得이 아닌 농촌생활의 소일消日거리로 경옥고와 식초를 만들어 형제를 비롯한 일가친척 그리고 친구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마음이 참 거룩하야 '아름다운 사람' 25번째 주인공으로 뽑는다.
아무튼, 그가 지난달 졸저의 출판잔치때 참석한 약초 재배로 소문난 나의 ‘신농업인’친구 얘기를 듣고 만나고 싶어했다. 하여, 어제 3인이 처음으로 만나, 그들끼리 전문적인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됐다. 신농업인 친구는 20여년 전부터 토종 엉겅퀴를 대량 재배해 독보적인 건강식품을 제조판매하는 ㈜임실생약 대표이다. 농림학교를 졸업한 이후 거의 50년간 오직 약초 재배라는 한길을 걸어오며 ‘성공한’ 농업경영인으로, 이미 국내에 명성이 자자한 농학박사. 지황이나 땅두릅(독활) 등의 재배 경험과 실패담 등을 얘기하고,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가며, 그들끼리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한 것같아 흐뭇했다. 외우는 경옥고를, 신농업인 친구는 통증에 특효인 엉겅퀴크림과 엉겅퀴차뭉치를 선물로 주고받았다. 이런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친구들만 농촌에 많이 있다면 ‘오래된 미래’ 우리 농촌의 미래가 훨씬 밝아질텐데. 우리 농촌의 암담한 먹구름은 언제나 걷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