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로 뭉치고 가로로 묶다
合從連橫 (합종연횡) <사기>
소진이 말한 '합종책'과 장의가 말한 '연횡책'을 합성한 말이다.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할지, 어떤 사이가 되어야 자신에게 유리할지를 궁리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앞 장에서 보았듯 소진은 북쪽 연나라에서 남쪽 초나라까지 여섯
나라가 동맹하는 이른바 합종책을 성공시켜 진나라의 위협에 대항
하려고 했다.
한편 장의는 진나라 혜문왕을 알현하고서 '연횡책'을 설명했다. 연
횡이란 횡으로 연결한가는 의미다. 말하자면 진나라와 연나라, 진나라와 조나라,진나라와 위나라라는 식으로 횡으로 연결하는 모양새로 각각의 나라들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종으로 서로 뭉치는 합종책을 분쇄해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겠다는 책략이다. 장의의 생각에 동의한 혜문왕은 장의를 진나라 재상으로 앉혀 이를 실현하도록 했다.
귀곡 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한 두 인물은 이렇듯 서로 상반된 두 정책을 펴면서 정면으로 맞붙어야 하는 숙명적인 라이벌이 되었다.
장의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연횡책을 실현하려고 했을까? 장의가 먼저 노린 것은 제나라와 위나라였다. 이 두 나라를 합종책에서 떨어져 나가게 한 다음, 이들 나라를 부추겨 조나라를 치게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장의는 사신으로 위나라와 제나라로 가서는 왕들에게 말했다. 하나의 나라라도 떨어져 나가면 합종책은 유명무실해지지만, 연횡책은
두나라 사이의 동맹이라서 그 같은 불안정한 요소가 없으며, 더욱이 강대국 진나라와 손을 잡으면 주변국들에게 고립되는 일이 없다는 이점을 내세웠다.
장의의 책모는 멋지게 들어 맞았다. 연횡을 하면 진나라에게 배후를 찔리게 될 염려가 없다는 점 때문에 안심을 한 제나라와 위나라는 연합을 하고서 조나라를 공격했다. 이로써 합종책은 금이 갔다.
한편 소진은 합종쳑을 우지하려고 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전국 7웅은 합종과 연횡을 왔다갔다 했다. 그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으로서 끈기 있게 연횡책을 추진했고, 마침내 10여 년이 지나서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합종책과 연횡책은 소진과 장의가 살았던 때만이 아니라, 그 후에도 각국에서 외교적인 정책으로 채택했다.
이러한 상황을 사마천은 <사기>속에서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쏟으며 남을 공격하고 정벌하는 것을 현명함으로 여기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의미를 살펴보면 천하의 여러 왕들이 어떤 때는 합종을 하면서 진나라에 대항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연횡을 하며 진나라에 붙으면서 그때그때 정세의 변화에 따라 서로 치고받는 일에만 열심이었다는 말이다. 결국 백성의 안녕을 위해사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세력 쟁탈에만 혈안이 되었다고 통렬히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이 없는 이합집산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늘날의 정치도 사마천의 이런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
저러한 당이 있지만, 진정 국민을 위하는 뚜렷한 정책이나 이념 없ㅇ
그저 서로 합종했다가 연횡했다가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쫓고 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도 정치를 하는 자들의 자태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해서 뒷맛이 쓸쓸하다.
( 剛軒 選集 <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