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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휴학을 마치고 얼떨떨하고 두려운 기분으로 집 밖을 나섰다.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고 교류 없이 지내던 나의 세상에서 벗어나니 세상이 참 별천지더라.
학교에 가니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다 제 얼굴에 맞는 예쁜 화장, 제 체형에 맞는 예쁜 옷을 입고 좋은 향을 풍기며 다녔다. 예쁘게, 당당하게,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악명 높은 전공 수업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A+ 학우는 교실 안에서 가장 예뻤고, 예쁜 자신을 예쁘고 당당하게 꾸밀 줄 알았다.
작아졌다. 그나마 입고 치장하던 옷들은 맞지 않을만큼 살이 쪘고, 화장품은 굳어 나오지도 않았다. 내가 가진건 남루한 티셔츠 몇장과 츄리닝 바지 두 장이 전부였다.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던 내 작은 세상에선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가 대견하고 멋졌다. 외모지상주의, 여성에게 강요되는 성상품화를 등지고 나만은 자유로운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비교되니 다르더라. 향기나고 빛나는 그들을 보며 안타깝게도 열등감을 느꼈다. 작아진 스스로를 숨기고 싶었고 오랜 휴학 동안 까먹고 있던 성형외과 이름들이 다시 떠올랐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쇼윈도 너머 시즌에 발맞춘 마네킹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하루는 어쩌다가 선물받은 높은 가죽샌들을 신었다. 쉬는 동안 땅바닥에 붙어다니며 운동화와 삼선 슬리퍼를 신고다녔던 나였다. 오랜만에 신는 높은 굽의 샌들은 아팠고, 힘들었다. 새 가죽에 열 발가락이 성치 않았다. 물집만 여러군데 잡혔다.
그런데도 그 아픔을 딛고 선 몇 센치 높아진 키가, 그 몇 센치로 조금 더 얇고 길어보이는 다리가 예뻐보여 나도 모르게 쇼윈도에 나를 비춰봤다. 여전히 유행에 따른 예쁜 옷을 걸쳐 입은 마르고 긴 마네킹이 보였다. 다리가 조금은 더 얇고 길어 보이는 내 모습도 보였다.
웬만해선 잘 입지 않던 브라를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입었다. 브라를 입지 않으면 발표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었지만, 브라를 입지 않은 내 뾰족한 가슴께를 쳐다볼 사회의 규정이 두려웠다. 오랜만에 찬 후크가 내 등을 파고들었다. 그날엔 소화불량과 장에 차오른 가스, 답답한 명치 때문에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거울에 비춰진 가슴께는 둥그랬다. 언제나와 같이 뾰족하지 않던 둥그런 가슴께를 바라보며 쇼윈도의 마네킹도 둥그런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곱게 개어 둔, 한 때는 즐겨 입었던 예쁜 원피스들을 보며 누군가는 안타까움을 내뱉었다. 예쁜 옷 다 제쳐두고 왜 우중충한 츄리닝만 입고 다니냐는 한소리를 들었다. 곧 살 빼고 입을거야. 지금은 들어가질 않아.
그냥 츄리닝이 입고 싶어서 입는다던 얼마 전의 나와 다른 대답이었다.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고, 간간히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다. 어느 것 하나 여성혐오가 담기지 않은 컨텐츠가 없었다. 된장녀라는 단어가 나온 드라마를 보며 어느순간부터는 깔깔거리고 웃게 되었다. 여성혐오가 잔뜩 담긴 여성향 게임을 하며 분통을 터트리다가도 즐거워했다. 무뎌지고, 동글동글 변하는 내 안의 불편함 탐지기는 꼭 브레지어를 입은 내 가슴 같았다.
예쁜 여성,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동경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아름다움에 열등감, 질투심 같은 추악한 감정도 느꼈고, 동경, 추앙심도 느꼈다. 성형 견적을 찾아보고, 수술대 위에 오른 내 모습을 생각했다. 얼굴이 작아진 나는 지금보다 예뻐보였다.
재밌고 한심하게도 나는 다시 화장하지 않았다. 브레지어를 입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았다. 칙칙한 츄리닝을 여전히 입었다. 아름다움에 열등감과 동경을 느끼면서도 성형자금을 모으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드라마를 멀리하고, 게임을 삭제했다.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완벽히 페미니즘을 좇고 성상품화에서 멀어지려고 한 행동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다. 위의 것들을 실현하기에 나는 너무 바빴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버텨야 했으니까.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질투하는 마음보다는 팍팍한 현실이 우선이었으니까.
살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야 했고, 바쁜 삶 속에서 유일한 낙인 음식과 편한 옷차림을 멀리 하기 어려웠다. 화장을 할 시간도 없었고, 배를 아프게 하는 브레지어도 원치 않았다.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혼자만 꿋꿋하게 못나기란 쉽지 않다.
언제나 나는 주눅들고 숨어들었다. 체중 증가를 알아볼 친구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맨얼굴로 츄리닝만 입는 나를 무시할 사람들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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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학교 안 은행 앞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 아무렇게나 편한 츄리닝을 입고 앉아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던 여학우였다. 그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나처럼 바빠서 꾸미지 못하는 걸까?', '저 사람 부끄럽지 않을까?', '작아지는 기분은 아닐까?', '꾸미면 이쁠텐데.' 따위가 아니였다.
그저 편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똑같이 맨얼굴에 츄리닝을 입은 나 또한 덩달아 편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와 나를 비교하지 않으며 편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같은 장의자에 앉아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몰두하다 고개를 드니 그는 자리를 떠난지 오래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오랜만에 남을 의식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다.
짧은 마주침에서 오랜 불편함의 해답을 얻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한 여성들 속에서 느꼈던 불편함의 실체와 마주쳤다.
초조함.
나도 예뻐야 하는데, 나도 꾸며야 하는데, 뭐라도 찍어 발라야 할텐데, 내 다리도 마네킹처럼 얇고 길어어 할텐데, 내 가슴도 마네킹처럼 둥글고 적당히 커야 할텐데.
나도 유행하는 옷 입어야 할텐데, 저 배우의 아름다움을 좇아가는 척이라도 해야 할텐데.
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를 외치는 신념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눈 한 번 감고 no를 외치는 건 생각보다 정말로 쉬운 일이다.
어려운 건 no를 반복해서 외치는 자신감이다. yes의 홍수에서 목이 찢어져라 계속해서 no를 주장할 담력이다.
담력이 부족했다. yes를 의식하고, yes의 눈치를 보고, 초조해하며 yes를 무의식 중에 좇으려는 불안감 투성이의 하루하루였다.
그러니 편한 노브라 차림이 불편했고, 편한 맨얼굴이 부끄러웠고, 편한 츄리닝이 목을 조른 것이다.
몸의 편함을 정신의 불편함이 채찍질한 것이다.
보여지는 게 아름다운 여성 뿐이었으니까. 꾸미고 향기나는 여성들 속에서 꾸미지 않고 향기나지 않던 유일한 나는 언제나 동떨어져 있었으니까. yes의 파도에 휩쓸리던 no였으니까. 잘 빚어진 마네킹 공장 속에서 유일하게 못난 모습을 지녔으니 뾰족한 가슴을 누가 알아챌까 두려웠던 것이다.
동시에 보여짐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나와 같은 맨얼굴과 편한 차림이던 여학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알 길이 없다. 그가 맨얼굴을 부끄러워하며 빨리 집에 가서 화장을 하고싶어 했더라도 나는 알 수 없었고, 그가 다이어트 중이었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잠깐의 마주침에서 본 그의 모습은 그저 자유로웠다.
화장을 하지 않았구나, 옷을 편하게 입었구나.
화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은 다른 여성도 역시나 있었구나. 나 혼자만이 돌연변이를 자처한 건 아니었구나.
앞으로도 편할대로 다녀도 괜찮겠구나.
그래서 보여진다는 건 이렇게나 중요하다. 마주쳤던 그가 평소에는 열심히 치장하다가 어쩌다 한 번 꾸미지 않았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앞으로도 알 길이 없다.
중요한건 그 순간 꾸미지 않은 그를 보고 내가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이다.
꾸미지 않는 김하루를 마주칠 다른 여성들은 어떨까.
못났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꾸미지 않는 하루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내가 느꼈던 해방감을 느낄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맨얼굴의 김하루, 츄리닝 차림의 김하루의 곁에선 나도 비교당하지 않고 맨얼굴, 츄리닝 차림으로 다닐 수 있겠다고 자신감을 느낄 여성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반면 그 모습 안의 김하루가 사실은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동경한다는 것에 대해, 초라하고 남루한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챌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하루의 마음은 김하루만 알 뿐이니까.
바빠서, 고돼서, 귀찮아서 꾸미지 않았을지언정 김하루는 그렇게 운동가가 될 수 있었다. 보여지는 하루의 모습엔 여성의 성상품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의 면모가 분명히 존재하니까.
덧붙여 하루가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을 말한다면 누구든 하루를 그렇게 바라볼테다.
평생 화장을 거부하고 치장을 거부할 순 없을 것이다. 어쨌든 김하루는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유행하는 옷들을 입어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고, 다이어트를 입으로나마 결심하는 여전한 나니까. 꾸며진 김하루가 업된 자신감으로 바닥을 내딛으며 세상에 섞일 날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꾸미지 않은 김하루를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는 언젠가의 하루가 그랬듯 자유로움을 맞닥뜨릴 이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꾸미지 않은 하루의 모습은 그다지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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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하루는 마음껏 편하게 다니는 남성들을 본다. 아무렇게나 안경을 쓰고, 모자를 눌러쓰고, 편한 옷차림과 당연한 맨얼굴로 당당히 바닥을 내딛는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남자들만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나도 하고, 남자들이 안해도 되는 건 무조건 나도 하지 말자.>
그것만 해도 성공적인 운동이다.
첫댓글 멋있다
좋은글 고마워 내가 요새 겪고있는 문제들이랑 비슷해서 더 와닿았어
고마워
진짜 좋은 글이다ㅠㅠㅠ 나도 힘내서 완벽한 탈코를 할 수 있길
진짜 좋다
좋은 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