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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 제 7장 다윗 언약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임시 장막에 안치한 다윗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언약궤를 영원히 안치할 수 있는 성전을 짓기를 갈망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이제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이스라엘의 종교적 회복을 열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아직 그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음을 계시하신다. 그 대신 다윗의 충심을 아시고 그에게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바로 그 유명한 ‘다윗 언약’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아멘으로 그 언약을 받아들인다.
1.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소망 (7:1-3절)
모든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이스라엘의 정치적 안정을 찾고 국내적으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다윗은 자신의 일신상의 행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강구한다. 그는 두로 왕 히람의 도움으로 백향목 궁전을 짓고 평안히 살고 있는 자신에 비하여 하나님의 궤가 천으로 싸여 있는 장막 속에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선지자 나단과 의논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 유명한 ‘다윗 언약’을 주신 때는 그의 통치 말기였다. 그 근거로 1절에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방의 모든 대적은 블레셋을 포함하여 이방의 여러 족속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기는 다윗 통치 말기이다. 또한 2절에 다윗이 백향목 궁에 살았을 때는 두로 왕 히람이 다윗의 치세를 기념하기 위하여 호의를 베풀어 백향목 궁을 지어준 것으로 그의 통치 말기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8장 이후의 사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연대기 별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과 솔로몬 양 대에 걸쳐 크게 활동한 선지자이며 다윗 언약뿐만 아니라 밧세바와 간음 사건, 솔로몬의 등극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는 성전 예배에 음악을 장려하였다.
*대하29:25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또한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대상29:29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대하9;29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 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다윗이 언약궤를 위하여 준비한 휘장은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놓은 10폭 앙장을 의미하는데 이것으로 성막 전체를 덮었다. 그러나 성막 속의 여호와의 궤가 이토록 초라한 것에 대해 다윗은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제안을 받은 선지자 나단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대로 행하라.’고 하였다. 그는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줄 알고 즉흥적으로 대답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말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었던 것이다.
2.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뜻 (7:4-7절)
나단이 다윗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바로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의 그릇된 충언을 시정하여 주셨다. 나단은 꿈 혹은 이상, 아니면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앞장서거나 협력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할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나 하나님 나라 건설에 필요한 모든 일은 반드시 주의 뜻대로, 주가 정하신 방법에 따라, 주께서 허락하시는 때에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해 반대하시는 결정을 내리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고 반문하신 것이다. 대상17:4절에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직접적인 반대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반대하신 이유는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이는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자로서 적합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는 다윗의 진실한 신앙과 충정을 거절하신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그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절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경우와 흡사하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고 광야에서 연단과 훈련을 감당했기 때문에 저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정복하고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세의 간절한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은 ‘노’였다. ‘그만 해도 족하다.’는 것이며 그 일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몫이라는 것이다. 다윗의 경우도 이와 같았다. 다윗이 이스라엘 신정 왕국을 건설하고 국정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것까지 그에게 주신 사명이었던 것이며, 성전 건축은 그의 몸에서 날 자 곧 솔로몬의 몫인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의사를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들려 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고정된 건물에 계시지 않았고 백성들과 함께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장막과 성막에 거주하셨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말 ‘바이트’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영구한 건축물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영구히 거하시며 경배를 받으실 예배 장소나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막’이라는 말 ‘오헬’는 단순히 이동할 수 있는 임시 거처를 말하며, ‘성막’이라는 말 ‘미슈칸’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놓은 장막을 가리킨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가득 찬 하나님께서 비천한 장소에 계속해서 거하셨다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인간의 수준으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지내온 모든 날 동안 그 어느 지파나 사사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신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편히 모시기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짓겠다고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쁘게 받으시고 저 유명한 ‘다윗 언약’을 체결하여 주신다.
3. 다윗 언약의 선포 (7:8-17절)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 다윗 당대에 이스라엘의 안정과 번영이다.
둘째, 다윗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이어지는 다윗 왕조의 약속으로 이 땅에 임하실 메시야 예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약속으로 다윗 왕과 그의 후손들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즉 그들이 범죄한다고 할지라도 징계는 하실지언정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언약은 유다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성실히 이행하셨다. 이는 하나의 영적인 원리 즉 대표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그의 나라와 그의 후손들에게 복을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아비의 양을 치던 자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셨고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양치는 목자에서 일약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다윗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실 때에도 ‘너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고 하셨는데 다윗과 하신 이 언약은 개인적으로 다윗의 존재와 인격, 그리고 그에게 속한 후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나아가 이 언약은 다윗의 통치 하에 있는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거국적 축복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이스라엘을 심는다고 하셨는데 ‘심고’라는 말 ‘나타’는 본래 나무를 심는다는 의미이며, 이 말은 이스라엘에게 정착지를 주신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잦은 주변 국가의 침략으로 온전히 정착하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할 것인데 이 말의 뜻은 ‘다시는 두려움에 떨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과거 사사 시대의 혼란했던 무정부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평화스러운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이와 같은 평화와 안녕을 구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평화와는 달리 다윗 시대에는 영속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 질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질 진정한 평화 즉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을 예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하셨는데 이 집은 5절, 7절에 나오는 ‘집’과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 앞에 나온 집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한 것인데 반하여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짓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웅장한 건축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가정, 다윗의 나라, 다윗의 후손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 집은 다윗의 나라와 그의 후손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윗은 30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70세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 때에 다윗의 자식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윗의 뒤를 잇게 하고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이 씨는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을 지칭하고, 광의적으로는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다윗의 아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인데 그러나 이 집은 단순한 건축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집, 상징적인 집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영원히 드러내 주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그의 영원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메시야 왕국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14절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훗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던 말씀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다윗 언약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 언약의 극치는 세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첫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이것은 다윗 왕국의 기원을 말해준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같이 다윗 왕국은 하나님에 의해 탄생한 나라라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이러한 언약의 내용은 모세 언약의 장자 개념과 일치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나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나라로 세워 열방 위에 뛰어난 장자가 되게 하신 것처럼 다윗 왕국을 새로운 견고한 나라로 세우신 것이다.
둘째, 사랑의 관계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무조건 사랑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비록 다윗 왕국이 범죄할지라도 그들은 사울의 왕국처럼 버림을 받지 아니하고 징계로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셋째, 상속하고 상속받는 관계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업을 물려받은 다윗 왕국은 영원토록 멸망할 수 없는 것이다.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고 있는 다윗 왕국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몰락하는 불완전한 나라가 아니며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존속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물론 ‘네 집과 네 나라가 견고하리라.’고 하신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국은 솔로몬 사후 분열되었으며 바벨론의 침공으로 남북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나라는 보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나라를 의미하는데 곧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메시야 왕국이다.
4. 다윗의 감사기도 (7:18-29절)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째,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다윗 왕의 감사기도, 둘째,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기적적 은혜 언약에 대한 감사기도, 셋째, 주의 약속하신 바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다윗의 모범적 기도는 네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첫째, 그의 기도는 귀중한 시간을 드린 기도였다. 그는 성소에 나아가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기도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으로부터 입은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드린 기도였다.
셋째, 하나님의 신성을 높이는 찬양으로 가득 찬 기도였다.
넷째, 확고한 신앙으로 넘치는 기도였다.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안치한 장막 앞에 나아가서 그곳에 머무르며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앉아서’라는 말 ‘야솨브’는 ‘머물러 있다.’ ‘지체하다’라는 의미로서 다윗이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여호와 앞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도의 첫 마디에서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을 대조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자신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임을 고백하고 크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그 아비의 목장에서 불러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시고 통일 왕국의 왕으로서 살게 하신 은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거기에다 미래에 대한 더 큰 복을 보장해 주신 데 대하여 크게 감격하였다.
다윗은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라고 했는데 ‘조트 토라트 하아담’이라는 말의 의미를 직역하면 ‘이는 아담의 토라입니다.’라는 뜻이다. 아담의 율례, 아담에게 정하신 율례, 아담의 후손에게 주신 율례를 말하는 것으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례 즉 ‘여자의 후손 언약’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다윗 왕국을 굳건하게 하시고 영구히 견고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모두 성취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는 구속사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이 모든 큰 일’이라고 하였다. 이 계시는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우주적 계획이며, 다윗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였던 것이다.
이제 다윗은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 외에는 참 신이 없다.’라는 고백은 과거 출애굽 시에 홍해를 건너고 난 후 모세가 토로한 고백과 일치한다. 다윗은 지금까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을 드리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세우셨는가 하는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이러한 은총을 받은 나라가 없음을 밝히고 무조건적인 은총에 감사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방 가운데서 이적을 행하시고 주의 명성을 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10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에서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켰으며, 아말렉을 물리치시고,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고 수많은 대적을 물리치심으로 열국에 명성을 내셨다.
셋째,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신정국가를 친히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 그들을 백성으로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하였다. 다윗은 시내 산 언약을 회상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을 성취시켜 더욱 발전시키고 구체화시킨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그의 은혜를 확신한 다윗은 담대함을 얻어 자신의 소원을 아뢴다. 그러나 이 소원은 사적인 생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묵시를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것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던 그의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자신의 소원을 일치시키고 있다. 이는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깊고 오묘하며 원대하시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였다. 다윗이 간구한 소원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그의 귀를 여시고 듣게 하심으로 그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던 것이다. ‘알게 하여’라는 말 ‘갈리타 에트 오젠’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귀를 열어놓았다.’ 라는 뜻이다.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주신 계시는 너무나 오묘하여 다윗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뜻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해 굳게 닫힌 비밀의 문을 열어주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획실히 깨닫게 하신 것이다. 인간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달은 다윗은 전적으로 그 계획에 동의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라는 말 중에 ‘말씀하셨사오니’라는 말 ‘테다베르’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의 선포에 대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그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했던 것이다. 즉 자신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시고 그 메시야를 통하여 인류 구원의 대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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