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세 자루로만 치는 골프
오늘은 특별한 골프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골프를 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약간의 거부감이 있으실 수도 있으나 그저 재미난 이야기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골프는 골프채로 공을 쳐서 결국 홀컵에 넣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그 골프채는 14개를 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골프를 치시는 분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14개의 채는 가장 긴 채인 드라이버부터 그린에서 홀컵에 공을 넣기 위해 쓰는 퍼터까지 길이와 각도가 다 다르게 만들어져 있어 자신의 기량에 따라 특정 거리를 내기 위해 특정 채를 씁니다. 골프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채를 한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드라이버, 3번 우드, 4번 우드, 5번 우드, 3번 아이언, 4번 아이언, 5번 아이언, 6번 아이언, 7번 아이언, 8번 아이언, 9번 아이언, 피칭 웨지, 샌드 웨지, 퍼터 등 14개가 대부분의 구성입니다. 필요에 따라 일부를 추가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면 150야드를 보내야 할 때는 7번 아이언을 씁니다. 그리고 120야드 안 쪽은 대부분 피칭 웨지로 커버합니다. 물론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달리 하기도 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제 평생 처음으로 3개의 채만으로 4명이 골프경기를 하였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제안을 하셔서 다들 소위 객기로 응하여 시합이 성사되었습니다. 전반 9홀 동안은 미리 정한 3개의 채로만 치고 후반 9홀은 바꾸고 싶은 사람은 채를 바꾸어 역시 3개로만 치기로 하였습니다.
다들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채를 구성하는 것이 경기에 유리할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제일 큰 고민은 그린 위에서 공을 굴려 홀컵에 넣을 때 필요한 퍼터를 넣을 것인지 뺄 것인 지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세 사람은 퍼터를 넣고 한 분은 퍼터를 뺐습니다. 그 다음 고민은 드라이버를 포함하여 우드를 한 개 넣을 지 말 지였습니다.
우드를 넣는다는 것은 일단 먼 거리를 보내는 무기를 확보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 퍼터를 추가하면 결국 채가 한 개만 남아 그 채를 가지고 20야드부터 180야드까지 커버하여야 하는데 무슨 채를 고를 것인지가 고민되었습니다. 120야드 미만을 커버하는 피칭 웨지를 고를 경우 그 이상을 어떻게 커버할 것인지가 고민되고, 170야드를 커버하는 5번 아이언을 고를 경우 그 채가 커버하는 범위가 20야드부터 170야드까지 너무 넓어 정확성이 떨어지고 맙니다.
저는 전반에는 5번 아이언, 9번 아이언, 퍼터로 결정하였고 후반에는 3번 우드, 7번 아이언, 피칭 웨지로 결정하였습니다. 결과가 어떠하였을까요. 네 사람 모두 평소 실력보다 10타에서 15타 정도 더 쳤습니다.
그러나 경기 집중도와 스릴은 평소의 몇 배나 되었고 재미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짧은 채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내려고 잔뜩 힘을 주어치는 바람에 공이 빗맞는 경우가 허다하고 평소 같으면 전혀 하지 않을 실수도 수없이 하였습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동반자 한 분이 20미터도 넘는 내리막 퍼팅을 피칭 웨지로 쳐서 넣어 버디를 만든 것입니다. 평소 퍼터로 쳐도 어려운 것을 피칭 웨지로 쳐서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저는 세 자루 채 골프를 하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첫째 즐거움은 물건의 개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채가 14개일 경우 느끼는 즐거움보다 3개일 때 느끼는 즐거움이 몇 배나 되었습니다. 인생살이도 물건이 많다거나 돈이 많다는 것만으로 즐거움과 행복의 양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둘째 채가 적어 채 하나로 여러 가지 경우를 커버하다 보니 유연성과 탄력성이 늘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 170야드를 보내는 5번 아이언으로 170야드부터 140야드까지 해결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니 채를 다소 짧게 잡고 쳐보기도 하고 스윙을 70-80% 힘만 가지고 쳐보기도 하는 등 요령을 부렸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사는 바람에 물건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두꺼운 판례집을 베개로도 쓰던 사법연수원 시절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셋째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처럼 정말 잇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후반 9홀에는 퍼터가 없어 우드 3번이나 피칭 웨지로 퍼팅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얼마 안가 적응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기존 퍼터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 없으면 없다는 사실에만 집착하여 불편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세 자루 채 골프를 쳐 보니 얼마든지 대체품을 구할 수 있고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넷째 부족함이 고민을 낳고 집중도를 높여 더 정교하게 골프를 치게 하였습니다. 종전 같으면 캐디에게 몇 야드나 남았는지 물어보고 아무 생각 없이 그 거리에 맞는 채를 달라고 하여 쳤습니다. 그러나 채가 부족하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 딱 맞는 채가 거의 없어 엇비슷한 채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요령을 부려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골프를 오래 치면 기량이 많이 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지난 토요일은 특별한 골프경기를 통해 색다른 즐거움을 얻었고 몇 가지 교훈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교훈이라면 물건의 부족함이 행복의 부족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물건의 풍요로움이 행복의 풍요로움을 가져 다 주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9.10.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