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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금요일 맑음
해동사 법회 날이다. 나는 집에서 두 시간 기도했다.
아침에 길수엄마 법회 간다고 낮 소죽을 좀 주라고 부탁해서 아부지께서 주었다.
오전 기도 두 시간하고 오후 송아지 튀어나와 오환이와 사장댁 함께 몰아 너어 주셨다.
뒤집 할매 장물 한 되 갖다 주신다. 길수엄마는 미수가루 한 그릇 타가지고 가저 오셔다.
시목이가 소죽을 안쳐주고 나무를 갖다주어 소죽을 끌여다.
해숙이가 저녁상을 깨끗이 차려주고 내일 먹을 밥을 쌀을 씻어 안처 놓고 갔다.
저녁 먹고 일기 쓰고 기도하고 자다.
87년5월2일 토요일
오후 비가 왔다. 나는 오전 방을 쓸고 닦았다.
조모 기일이 오늘인대 금화도 업고해서 큰집에 나가보고 왔다.
백모혼자 송편을 만들고 잇다. 곳 바로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잇다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금화는 도에서 청소년 단합대회 하는데 같다가 6시 데서 왔다.
무척 피곤해 보였다. 많은 선물을 어더 가지고 왔다.
저녁에 나는 기도 한 시간 하고 잤다.
5월3일 일요일
식전부터 기분이 나쁘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밥 먹지 말고 큰집에 모두 오라하여 갔다가 밥이 업다하여 금화 다시 밥 먹고 오라한다며 속상해하며 나에게 욕을 하였다.
남이 전화로 그러기에 내가 잘못알고 빨리 가보라고 재촉 해떠니 그렇게 데다.
고추 온상에 가보고 보리가 만이 피었다. 오환네 소가 보리를 많이 먹었다.
소죽 끌여 놓고 저녁기도 하고 잤다.
5월4일
해동사 전화해서 연등 한등 달았다.
집안을 쓸고 닦고 독경 한 시간하고 점심 먹고 쉬었다.
상명이네가 우리 솥에 두부를 하고 주는 것을 먹어더니 맛이 좋아다.
소죽 끌이고 머리를 감고 저녁에 등을 켜고 기도 정진을 했다.
5월5일 음4월초8일 맑음 화요일
부처님 오신 날이며 어린이날이다.
오늘은 석가모니 부처님 사바세계에 탄생하신 날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들을 지혜롭게 생사의 괴롬의 모든 고뇌에서 자비와 광명으로 열반의 저 언덕을 뛰어넘어 해탈의 길로 인도하신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기 위하여 금화는 오늘 해동사로 연등 공양금을 가지고 떠나고 아부지 앞집 할배 생신날이여서 축하잔치에 가시고, 나는 내실에 새롭게 모신 진영 앞에서 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며 경문을 독송하며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을 염송도 했다.
저의 집과 집안대소와 이웃주민 예안면민 안과태평 남북통일성업완수 국태민안하여 88년 서울올림픽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치루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나의기도 소원성취와 삼제팔난 우환질병 근심걱정 영영소멸 해달라는 염원과 축원으로 하루종일 기도하고 등불을 밝히고 기도 해다.
상철모 해동사 갔다 와서 고기와 떡을 두사라 가저와서 잘 먹었다.
오후에는 종숙모와 용 계 아지매 사이다와 떡 과일을 가지고 오셨다.
대조사님 진영 전에 새로 가서 쌀과 돈 공양올리고 예배드린다.
나는 천수경을 독송하고 감사함을 축원하고 한량 업는 복과지혜가 생기게 하소서 바라는 소망이 성취 대도록 가피력 주소서 다함께 믿는 신도가 대어지개 해달라고 기도했다.
저녁을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가 석가모니불을 염송하고 언제 잠이 든지도 모르게 누워 잦던 모양이다.
이러나니 한시가 넘었다 다시 사랑방에 나와 잤다.
87년5월 6일 수요일 맑음 군 위민실장님 다녀가심
오늘은 간밤에 꿈을 꾸어는대 나와 결혼 해준다는 아가씨가 찾아와 보여서 무슨 소식이 오려나 사진이라도 부처 주는 것일까 하고
집배원이 다녀 가기만 기다려는대 배달은 우리 집에 들르지 않고 갔다.
나는 마당을 쓸고 뒤우로 올라가 거름 퇴미에 소가 있으무로 그냥보고 온 천지가 푸르게 푸르게 생동감 넘치는 산야를 바라보다니
면 직원 정경윤과 박세환 면의원과 군 위민실장 권대인 면사회계장 운전기사 까지 다섯 분이 오셨다.
나에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앞으로 자립하고 싶은데 나와 같은 환우들과 서로 돕고 협조하며 살고 우리가 앉아서나마 무엇이든지 할수잇는 일을 하고 싶은데 집이 없으무로 대도시에 방값은 비싸고 하니 복지시책 일환으로 경북 대구지역 환우들을 위하여 나라에서 우리들이 살아 갈수 있는 집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이며 군에서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해 달라고 예기하니 재산을 떠나서 이런 분은 상신하여 생활보호자로 해주도록 하라고 하고 굳은 의지로 좋은 생각을 가지고 건전한 정신과 의지로 살아가고 있으니 더욱 열심히 살아달라고 하시고 박의원은 우리보다 자유롭지 못한 신체로 살아가자니 불편하게지만 몸에 병 한두 가지 안가지고 있는 사람 업쓰며 건강한사람몸속에도 지금 암이 진행데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없으니 좋은 생각으로 굳게 전과같이 살아가기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사진도 3판 찍어쓰며 이렇게 문의하고 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도에 다시 상신하게다는 말씀과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실장님께 전화하라면서 명함을 주시고 모두 가셨다.
오후에는 오상 둘째딸 이름을 해동사 강월스님께 부탁 드려떠니 작명을 다하시고 수수료 일만원 받아 달라하셨다.
그래서 하계아제 한태 그래떠니 돈이 너무 많타 하시였다.
사촌 처남한태 부탁하면 그냥도 지어 줄 터인데 하셔서 취소했다. 내가 공연히 부탁했다.
작명한 것 내한태 우송했다고 하셨다. 기도하고 잤다.
87년5월 7일 목요일 맑음 지서장님 전화가 왔다.
오늘은 집을 쓸고 방을 닦고 있다니 예안 파출소장님께서 청와대에 편지 한일 있는지 전화 주셔다.
그래서 4월 16일날 편지 보낸 사실 있다 하니까 그 내용이 참 좋아서 군에까지 내려왔다.
다시 갔다고 하며 내 이름 다섯 오자에 무슨 윤자 쓰느냐며 물었다. 맑을 윤자도 대고 진실로 윤자도 된다고 했다.
수고하시라하고 끈엇다. 저녁에는 친구진노 동장이 전화했다.
군 위민실장님 면 사회계장님 정경윤서기 박세환의원 운전기사 왔다 갔다 하고 생활 보호대상자로는 예기하여 대도록 해준다하시고 가셨다는 예기를 했다.
나는 고추온상과 보리 밭으로 돌아보고 왔다.
집에서 대구 자원봉사 최현숙씨 한태 전화해서 광배총무 전화해 달라 해떠니 전화 기다려도 오지 않아 내가 걸었다.
청와대 편지 해떤 것 도청으로 넘어온 것을 안동 군청으로 다시 넘어와서 군청 위민실장님 이하 여러 담당직원 들이 다녀가셨다는 예기하고 광배는 가창에 집이 방 다섯 개짜리 있다는 얘기도 하고 보증금 2백만원에 월 4만원씩 주고 논 300평 밭 300평 대지 250평인대 살려면 2600만원 달라 하는대 2200정도면 살수 있다고 했다.
살 형편은 못되고 우선 방을 얻어서 함께 기거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는 것이 어떻게나하고 연락 서로 교환 하자고 했다.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가 그냥 잤다.
87년5월8일금요일 맑음 어버이날 제수씨 오셨다.
오늘은 어제부터 참깨종자를 안골에다 넣었다.
첫 버스로 제수씨 아이들 대리고 넘어 오셨다.
닭튀김 한 마리하고 소주 4홉들이 한 병 베지밀 2병과 카네이션 장미 한 송이 사가지고 와서 달아드리고 오전에는 아이들 데리고 들에 갔다가 오후에는 내가 데리고 놀아는데 온 방안을 메란당으로 어질러놓고 놀긴 잘 놀았다.
벼 한 포대 상명이 아빠 싣고 가서 찧어왔다.
백부 상명 할배 오셔서 약주한잔 하시고 나가셨다. 저녁 축원기도 하고 잤다.
87년5월9일 토요일 맑음
아부지는 명종조부 생신을 잡수로 가셨다 오시고 오후 소꼴 베 오시고 나는 전화세 전기세 해숙이 가는대 보내고 제수씨한태 양초 값 부쳐드렸다.
안집에 것 첫 버스로 넘어가셨다. 속이 상하는 말을 들었다.
들에가서 금화보고 한소리 오늘 내가들으니 마음이 괴심 하였으나 또한 분노를 죽이면 곳 안온해진다.
너희들은 너희들 요랑해라 나는 내 요랑 내가하며 살아가면 된다.
너희들이 나를 원망하고 탓해도 이잰 다 지나간 이야기다.
소용 업는 일 차 떠나고 손들기란다.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며 잊어버리자 저녁때 소죽 끓였다.
오전 토지이전 관계 때문에 면에 위민실장님께 전화 드려떠니 팔앗으면 팔았다는 증거를 해둔 것 있으면 된다고 했다.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고 일기 쓰고 기도하고 잤다.
5월10일 일요일 흐림 칼라티브이 구입한 날
오늘은 금화가 졸라서 흑백 티브이 타버려서 칼라 티브이 14인지를 205000원에 헌거주고 현찰은 25000원 주고 잔금 18만원은 도목 할배 도장을 빌려서 외상 채결을 했다.
아부지도 심심 하신대 칼라로 잘나오는 선명한 화면을 보시는 것이 좋은 모양이시다 좋아 하신다.
정산동생과 제수씨는 나에게 불만이 많은 모양이며 나를 함께 살기 싫어서 기회를 기다리며 있다는 소리 등 금화를 보고 신발가계 차릴 때 나로 하여금 망했다는 소리와 농사를 지었다면 천만원은 벌고 적금을 넣었을 텐대 농사에 신경을 안 써서 빚만 늘어간다고 말하여 기분 나빠 못살게다고 했다.
말이면 다말인가 잘된 것은 저희 덕인양 안 된 것은 나를 탓하니 한 가지는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한심한 생각을 하며 지금 이정도로라도 살고 있는 것은 아부지와 금화가 모두가 서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이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함께 협조하지 안으면 무슨 일이 되었을까 잘되고 못되고 서로가 책임을 통감해야지 왜 나에게만 덮어씌우려 하는지 괴심하기 그지 업다. 그러니 이해하고 참으리라.
5월 11일 오전 비가내림 오후 갬
아부지 못자리 비닐 거두어 오시고 비가 내려 다른 일은 못하고 책을 보고 티브이보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는 무겁다.
그러나 지혜롭게 한세상 살아야 할텐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나는 소죽을 끌이고 금화는 빨래를 하고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하고 한시 넘어 잤다.
5월 12일 맑음 오늘 처음으로 고추를 심었다.
오전 집터와 고란에 비니루 깔고 오후 고추를 다 심었다.
나는 집안을 쓸고 닦고 기도하다니까 대구 광배총무 한테서 전화가 왔다.
가창 집은 팔여다며 단독주택 실내화장실 목욕탕 있으며 방 셋 칸 전세2백만원 주면 된다 했으며 빠른 시일 내 연락 달라 해씀 나는 오건이 한태 전화해서 돈 좀 봐 달라하고 세명식당 영한이 한태 예기하니 봐준다 해쓰며 앞집 할 배도 봐준다 하셨다.
저녁 때 동생이 와서 토지 이전등 모두 예기 하고 넘어갔다.
5월 13일 흐림
오늘 아부지 금화 큰집 옥신네 고추 심으로 가고 큰집 고추를 다 심어야 고추 묘종을 얻어 심을 수가 있스무로 나는 집에서 안팎청소를 쓸고 닦고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안동 군수님이 보낸 회신을 받았다. 군에서 혜택을 줄 수 있는 대까지 주겠다는 약속 회신이여다.
5월 14일 맑음
큰집 고추 묘종과 집에 것으로 금화 아부지 품무골 고추 다 심었다.
나는 집에서 집을 직히며 소죽도 끌이고 호박을 삶아 물을 먹기 위하여 숙모를 씩혀 안쳐다.
저녁에 정산 동생내외 아이들을 대리고 넘어왔다.
내가 돈을 차용해 가지고 대구로 간다니까 금화결혼 문제와 집에서 쓴 빚돈 등을 정리하고 가라고 했다.
동생도 앞으로 아이들 교육 문제 등으로 대구로 이사를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금화는 거리감이 생기게 말을 하며 넘어 가란다 탈을 잡는다.
서로가 자기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신경전을 벌리고 있다. 나도 마찬 가지다 새벽3시가 넘어 잤다.
이런 저런 예기를 하다보니 적막강산이다.
부처님이 해결하여 주시리라 믿으며 마음 편히 잤다.
추신 저녁때 김휘국씨 도목할배네 자전거 사로 완는데 할배 집에 안계셔서 나한태 전해드리면 된다며 2만원 주고 가저갔다.
시목이 사줄라해던 문엽이 자전거는 만원까지 해준다더니 정산 넘어가서 15000원에 팔여다하여 잘했다 하고 말았다.
5월15일 맑음 오건이 생일날 오탁 사촌 결혼식이다.
오늘 금화는 청소년 군 체육대회 참석하고 오후느께 대구로 가서 오건이 생일을 차려 줄 준비하고 사촌 결혼식을 치루는대 갔다 오려고 출발하고 제수씨는 아침도 안먹고 애들 대리고 넘어가셨다.
내가 원망 슬어워 밥도 해주지 않고 그냥 갔다.
금화가 차려놓은 아침 상을 정산 동생이 와서 셋이 먹어다.
아부지 감자 밭을메고 율무묘종을 얻어온 것 심고 오후 고추 사이골 라쏘 제초제를 고란에 집터치고 땅콩묘종 부었다.
나는 집안을 쓸고 닦고 소죽끌이고 정산동생은 분무기 수리해서 약치게하고 점심차려 함께먹고 오후 넘어갔다.
대구가서 광배 총무를 만나 집 전세 얻는 이야기와 앞으로에 구상이 어떤지 나에 입장과 견해를 예기하고 자세히 알아가지고 오라했다.
돈은 준비가 되어 있으나 꼭 필요하면 서로 놔눠내기로 하고 내가 일백정도 부담하고 다른 환우들도 2. 3십만원씩 내고 함께 생활하기로 방법을 모색하며 물리치료 바들오 다니게 편리한 곳 택시타면 이삼천원 나오는 거리 적합하다는 예기 등등하라고 했다.
요즘 거택보호대상자로 해달라는 부탁으로 토지이전 관계와 4촌 오탁이 결혼식 문제 등으로 대구 전화로 차대절하는 것 등 집에서 골치 아푸게 내가 신경 다써야하다니 참 골치 아푸다. 저녁에는 기도하고 잤다.
5월 16일 송아지 사망
어제 밤 꿈속에 황소가 죽었다며 장만하는 것을 보앗더니 오늘 도목 할배 한테 품무골 58번지 전 532평을 권영일 삼촌 앞으로 팔아다는 증거서류를 쓰려고 갔다 오니까 송아지 죽어있다. 이상한 일이다.
하루 앞서 큰 소가 울어서 암소를 내나보다 해더니 오늘 낮에 송아지가 죽어버려다.
송아지야 불상하구나 우리 집에 모든 액운을 송아지가 대신 거두어 갔다고 생각하니 한편은 다행이며 한편은 섭섭하게 생각 된다. 밥맛이 업다. 아부지는 얼마나 섭섭 하실까 백부 종형 우씨 사돈어른 함께 오셔서 장만해서 조금씩 논아가셨다.
두와 피와 내장은 묻어버려다.
저녁은 시목엄마 숙모가 해주었다. 아부지는 못자리 피를 뽑았다.
나는 소죽을 끌이고 오늘종일 눈에 핏줄이서서 안약을 찾아 너어더니 핏줄이 삭아주며 눈이 덜 피로 한 것 같다.
저녁 먹고는 티브이 시청하다니까 길수부친이 오셨다.
토지 정리하면 이사를 간다면 집은 자기가 산다는 의사를 보이신다.
11시 되서 가신 뒤 기도 좀 하고 잤다.
87년5월 17일 맑음 오탁 종제 결혼식 올린 날
오늘은 아부지께서도 봉고 차를 타고 대구 오복 예식장으로 오탁 결혼식에 가셨다.
안동에서 차가 도착하지 안아서 전화가 오고해서 대구에서 차가오지 안앗나하여 가슴 졸여다.
공연히 방안에서 전화를 하여 모든 일이 잘 안되면 나 한태 원망이 돌아 올 것 같아 크게 걱정 했더니 다행히 예산 데로 잘 데어 차도 왔다 가고 저녁때 모두 잘 다녀왔다. 부처님 감사 합니다.
숙모 안 간다고 해놓고도 다행히 갔다 왔다고 했다.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면서 다녀온 얘기 금화 한태 다 듣고 낮에 소죽은 시목이가 퍼다 주고 저녁 소죽 물도 퍼다 부어주고 해숙이 소죽 안쳐주고 내가 끓였다.
기도하고 잤다.
87년5월18일 맑음 월요일
박상한 안동 군수님이 다녀가신 날
오늘 큰집 종형수도 오시고 하여 어제 큰일을 보고 온 얘기를 듣고 있다니까 고물 수집 장사가 와서 헌 리어가체 800원 빈병 공포대 등등 모아서 팔았다.
그러다니 정산 제수씨와 정경윤 면서기 한태서 전화가 왔다.
군수님이 위로금을 전해주려고 우리집까지 친히 방문하신다며 면장님과 직원들이 먼저 와서 손님이오시니까 집을 깨끗이 청소 좀 해달라고 왔다 가시고 오후 두 시경에 오신다더니 다섯 시가 넘어도 안 오셔서 오시지 안는 것으로 알아더니 다섯 시 반이 넘어오셨다.
위민실장님과 군수님 면장님 박세환의원 이렇게 오셨다.
나라가 잘살아야 앞으로 더욱 많은 혜택이 돌아오며 우리보다 더 못한 사람이 너무 많으며 여러 번 건의가 올라와도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문서상 해당 되지 안아서 지금까지 못해주었다며 토지는 누나나 삼촌이 있으면 그 앞으로 넘겨버리고 해주는 방법으로 처리 하라고 했으나 정식으로 된다고 했다.
팔앗는 토지 이전을 해가지 안아서 정리하면 된다하고 면장님은 지금 서류를 구비하고 있다고 말씀 올린다.
내가 대통령각하님께 올린 편지로 인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 하신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앞에서 일보는 사람들이 수고하지 안으면 어떤 사람이 수고해 주실까?
군수님 시간 내서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 합니다.
더욱 용기를 가지고 굳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면장님 수고 하셔습니다.
위민 실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박의원님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인사했다.
아버지 좋아하셨다.
며칠 전에 송아지 죽으니까 부처님 믿는 것을 말씀하시더니 오늘 돈 같다 주시니 말하지 않고 좋아 하신다.
이충 보충 다행한 일이다.
부처님 감사 합니다. 저녁에는 티브이 시청하다가 기도하고 잤다.
5월 19일 화요일 맑음 동생이 장날인대 넘어왔다.
오늘은 금화가 칼라 티브이 값을 갔다 마갔다. 볼 일 보고 왔다.
나는 동생이 토지 매도증서를 가지고 면에서 서류하여 취득세만 내면 서류가 대기 때문에 볼일 보는데 도목 할배께서 쓴 매도증서 날짜를 봐꿔 금년에 바로 어제 매도 한 것 같이 하면 취득세 반액 감소 된다고 다시 만들로 왔다.
도목 할배 안 오셔서 큰집 형님하고 계약서 매도증서 작성하여 가지고 왔다.
대밭골 숙모 술이 곤드래가 대어서 왔다. 오랜만에 만나다 불상하고 가엽다.
내가 베풀어 준 것 같이 해주지 안으니까 며느리와 자식을 욕하고 원망한다.
저녁도 먹지 않고 큰집에서 놀다 새벽 두시 되서 동생만 와서 자고 숙모는 큰집에서 잤다.
나는 돈을 정리하고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 좀하고 잤다.
5월 20일 수요일 맑음
상명이 아빠께 예기하여 과원 약을 치려고 물을 한 통 실어놓고 왔다.
군수령감께 감사함을 표시하는 편지를 한통쓰려고 초안해 놓고 소죽끌이고 티브이 시청하고 놀다 기도하고 잤다.
87년5월21일 목요일 맑음
안동엠비시 문화방송국 최옥경 리포트가 취제하로 왔다.
편지를 써서 붓이고 사과나무에 약을 치려고 식전 상명 아빠 물 두통 아부지하고 실어놓고 오셨다.
오늘은 종일 과원에 약을 치고 제초제를 쳤다.
나는 집 청소 쓸고 딱고 했다.
일기도 쓰고 소죽도 끓이고 동생은 군수 영감님께 편지를 갈 때 농협에 돈 일반대출 80만원 값푸라고 이자포합 86만원을 보냈다.
오늘은 내가 은둔생활 34년 동안 살아 온 가운데 군민에게 알려지는 날이다.
군 위민실에서 엠비시 방송국에 알려준 모양이다.
리포트 최옥경양이 운전기사와 함께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잠깐예기 이것저것 물어봐서 알고 있는 대로 말했으며 발병된 시기와 앞으로에 희망 연구대상자로 결심하게 된 동기 등을 녹음 하였다.
다음날 오전 11시10분부터 40분까지 주부교양강좌 시간에 방송된다고 라디오 들어 보라고 했다.
나는 인터뷰 해본적 업시 처음으로 말하라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상 마이크를 들이 데니 조금은 당황이 된다.
그러나 평소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말하니 별 어려움은 없었다.
오전에 쓴 편지는 군수 령감님께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으로 써서 붓이고 그런대 최옥경 리포트가 찾아와서 어떻게 군수 령감님 위로금 20만원 전해 주셔다는 말을 했으며 방송국에 알리지 마라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군 위민실장님께서 알려주셨다 하시더니 정말로 찾아 오셔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 저도 될까 모르게다.
부처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믿으면서 기도 염불독경으로 나날을 보내고 인연 있는 모든 분들에 안녕과 건강과 행복을 기원 합니다. 생에 있어 잊을 수 업는 날이다. 음4월 24일 관음제일이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가피력 내려주소서 티브이 보다 기도 좀하고 취침했다.
5월 22일 오전 맑음
오후 비가내림 최옥경 리포트가 취제해 간 내용이 방송 데었다.
오늘은 금화가 집에 있으무로 나는 어제 엠비시 방송국 최옥경 리포트께서 오늘 오전 11시10분 주부휴게실 프로를 청취하면 된다 하여다.
녹음을 해 두기위하여 녹음 시킬 준비를 해두고 있다니 11시15분경에 취제해 간 것이 나온다.
권미경 아나운서와 최옥경 리포트가 말을 주고 받으면서 진행하는 것을 들엇으며 녹음시켜다.
나를 도와주려는 방송이 틀림없다.
군수 령감님께서 위로금 20만원을 전해준 것 방송을 하지 않고 아버지 소개와 나에 소개 투병이야기 등으로 나에 희망 등을 말하고 따뜻한 온정이 필요하다고 위민실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우리서로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저 보자고 했다.
한편 자존심 상하는 기분도 들지만 어차피 방송이 나간이상 어쩌랴.
내가 연구대상자로 결심한 동기 질문하는데 어차피 병을 치료하여 회복이 안 되고 죽는다면 나와 같은 환우들을 위하여 내 한 몸 희생하여 치료 할 수 잇는 길이 열린다면 하는 뜻에 결심하게 된기라고 할까요?
이 질문에 희생이란 말이 이치에 좀 어울리지 안는 것 갔다.
그냥 연구 자료에 몸 바칠 각오여다 해쓰면 오히려 더 편하고 나아 쓸탠데 거추장스럽다.
저녁에는 비가 내린다.
내일 모심기가 될까 티브이 시청하다 일기 쓰고 취침했다.
5월23일 토요일 비가내림 첫 모내기한 날
오늘은 댐 주변 논에 모내기를 하기 위하여 물이 될까 해더니 재종형님께서 전화를 해 주셔다.
물이 풍족하니 모내기를 하도록 하라고 하신다. 고마웠다.
그래서 시목으네 집 삼촌과 숙모 함께 논을 장만하여 모내기를 했다.
나는 선예 대리고 놀았다. 오후에는 집안을 쓸고 닦았다.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 두 시간 하고 소죽 끌이고 저녁 먹고도 연속극을 시청하다 일기도 쓰고 기도 좀 하고 잤다.
5월 24일
제수씨 넘어온다 하여 백미 일승 떡하고 참외 딸기 토마토 등 사가지고 공양 올렸다.
저녁 백모 숙모 하계 아지매 병일 조모 이렇게 길수모 상철모 오전에 왔다가고 모여서 기도조금하고 공양을 논아 먹었다.
제수씨 낮에 와서 오후에는 모내기 거들었다.
나는 오늘도 집 청소 날마다 당번이다. 소죽 끌이고 티브이 시청하고 오늘 소 교배시켜다.
5월 25일 맑음
오늘은 영봉 어머니 그라목손을 조금 마셔다며 피마자 기름을 구하로 우리 집에 미나무 할매 오셔다.
소주잔 반잔 정도 따라드려다.
제수씨는 상명이내 모내기 거들로 가시고 아부지는 큰집 참깨 심을 밭에 비닐 깔로 가시고 금화는 기성이와 선예를 대리고 간장을 끌여다.
술 밥을 하여 술도 해 너어다.
나는 불을 너어 주고 엿기름을 갈고 병아리 주려고 옥수수와 벼쭉정이도 갈았다.
기아를 교환하여 꼴을 썰어 보았다. 팔이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아 위험 하다고 했다.
기아를 교환해야 될 것 같다.
저녁 먹고 금화 궁합 생년월일은 좋은대 생월이 9월녀는 4월남을 만나면 가취 멸문에 해당된다고 책에 나와 있으무로 설영완씨께 문의 해더니 자내 책 믿고 사는가 하며 나는 원망 듣기 실으며 모르니 큰 스님 전에 나이를 대고 물어서 된다면 하고 안 된다면 못하고 이렇게 가르쳐 주신다.
설의원이 나 한태는 현명하게 가르쳐 주신다.
내가 죽음의 고통 병마와 싸울 때도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셔는데 죽을병이 든 사람이 죽을가바 겁넨다고 안 죽고 살까 살사람은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산다며 명은 천명에 따라야한다는 새로운 각오를 하도록 해주셔다. 고마운 분이시다.
기도하고 잠자리 들었다.
5월26일 자정부터 비가 쏟아 저다.
새벽에 쏟아지는 비는 아침을 먹고 오전10시까지 계속 내려다.
오전에는 기성이와 선예 금화 제수씨 함께 점심반찬을 다듬으며 금화 결혼문제를 토의했다.
아부지 전법 논둑 발으로 가셔다. 점심 갔다 드리고 제수씨 와서 아이들 대리고 사과 적과 하로 갔다.
나는 집 청소를 하고 기도를 하고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고 오늘은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를 보냈다.
27일
아침 제수씨 아이들 대리고 넘어가시고 금화는 종일 적과를 하고 아부지 앞집 모심기 가시고 나는 집을 직히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또 하루를 보내다.
기도 좀하다 논에 칠 제초제 한 봉 동생한태 보내달라는 전화를 하고 저녁 먹고 있다니 면에 김만년 사회계담당 직원이 전화를 했다. 토지대장정리 임야 과수심긴 것 등을 조사하여 정리해야 된다는 전화가 왔다.
사회계 담당직원이 서류상 정식으로 가추기 위하여 그러는 모양인데 정말 어려운 일인가 본데 대구동생 진단서 확인하기 위하여 뛰 달라고 했다.
편지를 하여 만년씨 심려를 끼쳐 죄송하오니 이해하시고 서로도와 함께 삽시다 수고 하십시요.
오늘은 말씨가 부드러웠다.
제 아무리 안 해 줄라 해도 어쩔수 업스리라. 올해는 된다 해도 금화 결혼하지 안으면 명년에는 또 안된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일기 쓰고 기도 좀 하고잤다.
5월 28일
오늘은 금화는 종일 적과하고 아부지는 유태를 갈앗다.
오후 논에 마세트 뿌려다 안골 밭가우로 유태심고 나는 집안 청소하고 대구 오건이 진단서 보내왔다.
오후 기도 하고 티브이 시청하고 서울 부회장님 앞으로 후원금 5천원 동봉하여 보내는데 못 받은 모양이다.
저녁 기도하고 잤다.
29일
아부지 하고 금화는 큰집 모내기 거들고 나는 서울 정철영 부회장님 강원도 저근 외삼촌 대구 광배총무 한테 편지를 세통 쓰고 기도 좀하고 탤레비 보다 취침 한다.
30일
금화는 적과하고 아부지 기열내 모심기 가시고 나는 오늘도 집안을 쓸고 닦고 기도 하다 티브이 시청하다 하루가 간다.
임동 마령동 금화친구 문옥화양이 단오명절을 마지 하여 우리 집에 내일 놀러온다니까 금화 집안을 정리정돈하고 대청소를 하여다. 기도하고 잤다.
87년5월31일
아부지 안골 참깨 밭에 그라목손 종일치고 웅 동생 와서 적과 거들고 금화는 오후 다섯시까지 적과하고 친구 온다하여 일찍 왔다.
..나는 대밭골 숙모 와서 이야기하다가 가고 집을 쓸고 닦았다.
점심 먹고 5시까지 잤다.
일어나 있다니 문옥화양 한테서 전하가 왔다.
정산 와 잇는데 어떻게 가면 데느냐고 하여 .택시타고 서당골 가자하여 오면 된다 하고 10분경 금화 오지 안아 내가 나갔다.
그래 떠니 마침 택시도 오고 조금 있다니 금화도 와서 나는 어서오라고 하고 집에 들와서 예기 좀 하고 놀러나갔다 와서 기도하고 티브이 시청하고 놀았다.
문양 8남매 3남 5녀라 했다. 언니 둘 오빠 둘 다섯째라며 여동생 둘 남동생 한명 이러타하고 전라도 평화 문씨라 했다.
어른 연세는 57세라하고 마을동장을 역임했다고 하였다. 65호 정도 된다 하였다.
이렇게 예기하고 자정이 넘어 취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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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형님께서는 늘 기도하시며 부처님과 함께 살았군요.
열심히 사신 모습이 아름답네요.
기도도 발심과 끈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일기를 보고 오늘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그땐 그랬어요.
서당골 집에서 구인사 창건 조사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마을 사람들과 기도도 하고 그랬거든요.
형님은 그 나이에도 별달리 할수 있는 일도 없고 해서 집안 청소와 기도로 일상을 보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