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덩이 어머니 - 박형권
간에 바람이 들어서 물옷 걸어 두고
두척산에서 화왕산으로 지리산에서 비슬산으로 진달래 따러갔다가
우리 동네 뒷산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 조개밭에 나무 밑동 하나 흘러든 것 같다
한편으로 보면 옛날 큰댁의 일소 같고 나자빠진 바다사자 같고 투실투실 물에 분 돼지 한 마리 같고 떠내려 온 시체 같다
꿈지럭꿈지럭 움직이다가 가끔 고요하다
우둔살 한 덩이가 왜 우리 조개밭에 던져져 있나 가서 보고 썩었으면 내다 버리자
코에 묻은 진달래 향기 지워 버리고 호미로 파낼 듯 달려갔더니
뒷산 언덕배기 늦게 핀 진달래 꽃대궁 같은 우리 엄마!
–그래, 코에 바람은 많이 넣었나?
물어 오는 입에 꽃잎 한 장 물려 있다
학교에서 학부모 좀 보자고 했을 때 내가 무전취식으로 끌려갔을 때 발랐던
전투용 위장 크림 같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조개를 캐고 있다
–오늘 니 아부지 생신인 거 아나?
내가 진달래에 미쳐, 봄 밖으로 밀쳐 준 한 덩이의 어머니가 꽃 피고 지는 통증을
숭덩숭덩 잘라
피 흐르는 그대로 몇 점 드셨나 보다
'한 물때만 보고 와서 꽃구경 가자더니' 하며
저녁노을 속의 아버지가
선창에서 바다 채송화처럼 마중 나와 계시겠다
*시집/ 내 눈꺼풀에 소복한 먼지 쌓이리/ 걷는사람/ 2023
# 요 근래에 읽은 시 중에서 이처럼 흡인력 있는 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느 한 줄도 버릴 게 없는 좋은 시다.
이 시는 부산 출신인 중견 시인 박형권의 일곱 번째 시집에 실렸다. 걷는사람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냈으나 걷는사람은 알찬 시집을 꾸준히 발간하는 곳이다.
흔히 시집 만드는 명문 출판사로 문학과지성, 창비, 문학동네, 민음사 등을 꼽지만 이곳에서 시집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자체적으로 심사 기준이 있어서 아무나 내고 싶다고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통과를 했다 해도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단다.
출판사 걷는사람은 메이저 출판사 못지 않은 양질의 시집을 꾸준히 내고 있다. 내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시집 전문 유명 출판사보다 훨씬 좋은 시집들이라 자주 구입을 한다.
벌써 115 번째 시집이 나온 걸로 아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박형권의 이 시집이다.
나는 숨어 있는 시인의 좋은 시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 박형권의 이 시도 그렇다. 읽는 눈이 즐겁고 조용히 낭송하기에도 입에 짝짝 붙는다.
시인 특유의 날 것처럼 느껴지는 거친 표현들이 참 마음에 든다. 이 시에서도 그렇다. 시에 나오는 화자는 시인 본인이다.
역마살이 도진 아들이 봄바람을 타느라 며칠 산으로 들로 한 바퀴 휙 돌고 왔다. 엄니는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안다.
엄마는 아들이 부모가 짓는 조개 양식장에서 서툴게나마 일을 돕거나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안도가 된다.
갯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비유법이 이색적이다. 누군가는 불경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문장에서 무릎을 쳤다.
<투실투실 물에 분 돼지 한 마리 같고 떠내려 온 시체 같다>. 심지어 <우둔살 한 덩이가 왜 우리 조개밭에 던져져 있나 가서 보고 썩었으면 내다 버리자>고까지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생일상에 올릴 조개를 캐면서도 행여나 아들이 올까 가끔 고개를 들어 선창가를 쳐다 봤을 것이다.
서로 믿는 구석이 있는 이심전심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입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사랑한다.
시 제목인 <한 덩이 어머니>는 시인이 껴안을 수 있는 거리에서 늘 지켜보고 있는 한 덩이 섬이다. 나는 이런 시가 좋다.
## 오래전부터 나는 시 읽는 것을 좋아할 뿐 문학적 비평 같은 것은 모른다.
그저 읽어 내 마음에 스며드는 감동이 오면 그뿐이고 시에서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마도 내가 군대 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고향에 내려갔던 어느 여름날 초등학교 동창들과 피서를 가기로 했다.
당시 피서라는 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저수지에서 홀랑 벗고 헤엄치는 것이 피서였던 시절이다.
성인이 되었으니 그런 것은 시들해졌고 옆 마을에 사는 한 친구가 섬으로 놀러 가자는 제안을 하자 우리는 즉석에서 날짜를 잡아 배편을 마련했다.
장소는 꽃섬으로 정했고 배는 옆 마을 포구에 사는 한 친구의 삼촌 것을 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쌀이며 양파며 풋고추며 된장과 고추장에 솥단지까지 각자에게 배당된 물품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내가 동무들과 놀러간다는 말에 근처 해변으로 가는 줄 았았다가 꽃섬이라고 하자 가까운 곳 두고 왜 그 먼 꽃섬이냐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큰 배가 아니라 당시 딸딸이라고 불렀던 모터가 달린 소형 배에 다섯 명이 타고 꽃섬으로 출발했다. 한 친구만 예전에 꽃섬을 가 본 적이 있었고 나머지는 처음이다.
가는 동안 팝송에서 뽕짝까지 신나게 떼창을 했다.
꽃섬은 배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작은 섬인데 왜 꽃섬이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른다.
간첩 신고가 가장 큰 임무였던 시절이라 섬에 도착하자 마을 이장한테 가서 이름, 주민번호 등을 적고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조개를 캐고 게도 잡고 낚시도 하면서 신나게 하루를 보냈다. 버너같은 번번한 취사도구도 없던 때라 돌덩이 주워다 해변에 아궁이를 만들어 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었다.
잡은 해산물로 매운탕을 끓여 소주를 마셨는데 댓병짜리 소주 한 병이 금새 바닥이 났다. 뻘겋게 물든 해거름의 바다 풍경이 눈물 나게 좋았다.
모깃불을 피웠어도 밤새도록 텐트 속으로 몰려드는 모기가 극성이었지만 우리의 낭만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이튿날 아침을 지어 먹고 섬 주변을 돌았다.
더벅머리 촌놈들 눈에는 해변의 늙은 소나무뿐 아니라 조개껍질과 매끈한 조약돌까지 모두가 섬소녀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친구 형에게 빌린 사진기를 너무 자주 누른 탓에 36방짜리 필름은 아침에 동이 났다.
우리는 섬 풍경에 취해 예정보다 늦게 점심 무렵쯤 섬을 출발했다. 지난 밤의 추억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우리는 다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포구에 도착했고 우리집은 포구 마을을 지나 공동묘지가 있는 산모퉁이를 한참 돌아야 나오는 동네다.
어머니가 마을 입구 우물이 있는 곳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집이 동네 맨 꼭대기 집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언제쯤 오려나 종일 마을 앞을 내려다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마치 1년 만에 오는 사람 맞이하는 것처럼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놀러 간 아들에게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어머니는 걱정으로 밤새 뒤척였을 것이다.
집에 오자 옥수수 냄새가 마당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들 오면 주려고 옥수수를 따다가 푸짐하게 삶아 놓고 기다렸다.
나는 어머니와 마주 앉아 적당히 식은 옥수수를 먹었는데 맛나게 먹는 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엄니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저 시 제목처럼 나에게 한 덩이 어머니는 천 개의 추억이 서려 있는 보석상자다.
때론 추억이 현실보다 생생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때 먹었던 옥수수 냄새와 어머니 얼굴은 여전히 스무 살 적에 봤던 꽃섬처럼 내 가슴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첫댓글 언어도 용감하게
참 글을 잘쓰십니다
ㅎ 전의친구님도 소신 있는 용감한 댓글을 주셨습니다. 첨부한 그림이 장 미셀 바스키아 그림처럼 독특해서 인상적입니다.
모쪼록 님의 건필을 빕니다.
진달래 동산에서 개펄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전경을 차용해서 꽃섬에 나들이 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얹었나봅니다.
자모의 정이나 모자의 정은 마찮가지겠지요.
잘읽고 갑니다.
이 시를 읽다가 퍼뜩 생각이 났네요.
제가 경험했던 풍경과 시인의 묘사가 쌍둥이처럼 겹쳐서 저절로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잊고 있던 풍경을 생각나게 한 시가 눈에 붙어 반복해서 읽게 만듭니다. 석촌 선배님, 평화로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섬을 고향으로 둔 저는 바닷가 주변의 언어 표현에서
익숙한 친근감과 사랑을 느껴봅니다
어머니를 들여다 보는 시인의 마음은 1도 욕심이 없이 속세의 때를
전부 벗어버린 그러니까 아름답다, 곱다, 자애롭다, 깊고 높은 은혜,등등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시체 우둔살 날 것 그 자체 존재만으로 위대하다는 작가의 시평과
작가를 들여다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존재와 더불어 삶은 옥수수라는 매개로
찰지고 알알이 이어지는 무한한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어머님,
시평을 읽으며 행복한 짬을 가져 보았습니다.
바닷가 어머니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에 대한 감상을 이스트우드님께서 밀도 있게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님의 댓글에서 저도 공부를 합니다.
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기존의 상투적인 표현들과 달리 박형권 시인은 자기 만의 언어인 독특한 비유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시평이든 시 독후감이든 딱 규격에 맞는 글은 쓸 줄 모르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저만의 방식으로 시를 소화하고 해석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이스트우님과 옛 추억을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저도 참 기쁩니다.
어제 늦은 시간 글을 읽었습니다.
박형권님의 시가,
솔직히 부담스러웠는지 읽히지 않았습니다.
가사로 좀 피곤했던 것 같았고...^^
지금, 유현덕님의 시평은 눈에 쏘옥 들어 옵니다.
'시인 특유의 날 것처럼 느껴지는 거친 표현들이 참 마음에 든다' 고
시평은 그러한데,
제 정서에는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조목조목 이어지는 유현덕님의 시평, 잘 읽었습니다.^^
아하~ 그러셨군요. 콩꽃님의 솔직한 감상 후기에 동의합니다. 같은 음식을 두고도 호불호가 있어서 저는 아주 맛있는데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시인은 고생하는 엄마를 향한 안쓰러움에 이런 도발적인 비유를 생각해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시 앞 부분에 엄니를 큰댁 일소 같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중 이 시인의 다른 시로 콩꽃님을 감동시킬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ㅎ 처서가 지났어도 여전히 무더위가 끈적끈적합니다. 평온한 일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는 절대 복잡하지 않지요
복잡해서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단순 소박 부족 결핍만 모여 있어도 어찌나 맛있는 이야기가
되는지 솜씨 좋은 현덕님 항상 아궁이 앞 부뚜막에서
듣는 이야기 같아요 홍~
복잡해서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운선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가방끈 짧은 저의 약점이자 장점이기도 했던 것이 단순함이었기에 추억도 소박합니다.
한 덩이 어머니란 시 제목에서 문득 오래전 어머니가 옥수수를 삶아 놓고 기다렸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엄니는 꽃섬을 끝섬이라고도 했다는데 저는 꽃섬으로만 기억합니다.ㅎ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