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분량이 많네요;
모두 공부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하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 읽고, 오십시오.
7. 풍경화가들
1) 반 데르 하이덴(1637-1712)
257. 암스텔담의 새 시청 청사 1652
258. 암스텔담 풍경
2) 가스버 반 비텔(1653-1736)
259. 프로렌스 풍경 1695
260. 프라스카티 빌라 1725
261. 항구 (나폴리) ---
262. 로마 베드로 성당 1711
263. 로마 성 안제로 성(castel) 1700
** 네델란드의 풍경화
네델란드는 장르화가 발달하였다. 신교지역으로서 미술의 주문자가 바뀌므로 화가들은 주문자의 기호에 맞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가정생활을 그린 그림 등등,
이중에 풍경화의 발달은 미술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그림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술사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일로 해석하기도 한다.
1. 야곱 반 로이스달(Jacop Van Ruisdal 1628-1682)
그는 좁안 집안에 태어나서 화가로 밥먹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버릴 수 없어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시골 풍경과, 바람에 의해서 변하는 풍경을 잘 그렸다. 그의 풍경화는 후배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독일인들은 조국의 하늘과 풍경을 사랑했다. 그러나 화가들은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재구성하여 그렸다.
로이스달 일파의 풍경화 특징
1) 구름으로 채워진 하늘
2) 지평이 그림의 아래쪽에 배치하였다. 하늘을 넓게 그렸다.
3) 처음에는 단조로운 색상의 풍경화였으나 나중에는 색상이 다양해졌다.
264. 로이스탈 유대인 성소 1660
265. 바위가 많은 풍경
266. 폭포 1665
267. 벤하임 성 1663
268. 성과 교회가 있는 풍경 1670
269
270. 호숫가 오크 나무 1668
271. 풍파가 있는 풍경
272. 상세
273. 평야의 찬미 1670
274. 유대인 성소 1660
275. 거대한 오크나무 1652
277. 살러먼 루이스탈 여관 앞에 서다 1649
278. 수목이 우거진 풍경
281. 알버트 쿱으 저녁풍경
282. 알버크 쿱의 해양풍경
285. 호버머의 가로수 길 1689
* 제자인 호베마의 가로수 길이 유명하다.
* 살로몬 반 로이스달(Ruysdael1600-1670)---아주 청량하고 선명한
풍경화를 그렸다. 구도는 비슷하다. 마치 비온 뒤의 하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해양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 Albert Cuyp(1620-1691)
클로드 로랭의 영향을 받았다.
그림-- 세계미술사 p 792
*바로크 건축
바로크 건축은 16세기 말엽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시대의 건물 양식을 이르는 용어이며,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 로마식 표현 형식을 첨부한 것이 특징이다. 바로크 건축 양식은 역동성과 거대한 규모의 기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영광과 전제주의 왕정의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바로크 건축 양식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대화하면서 형태와 색을 도드라지게 하여 극적인 강렬함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585년에 칼 5세의 용병이 로마를 침범하여 대대적인 침탈과 학살, 그리고 도시를 파괴했다. 로마를 재건하면서 비놀라, 프르타 등의 건축가가 바르코 양식을 가져왔다. 르네상스를 버리고, 고전주의를 기본으로 했다. 주요 예술가들로는 조각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그리고 화가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건축 작품을 만들어냈다.
17세기 동안 바로크 건축 양상은 예수회의 활동을 통해 유럽 및 남아메리카 전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바로크 건축의 특징
스페인에서 바로크 건축은 신대륙, 특히 라틴 아메리카로 옮겨졌습니다. 이 건축 자원은 개신교 교회의 힘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1. 디나미스모
바로크 건축에서는 볼록한 선과 오목한 선이 교차하는 곡선의 구현을 통해 건축물에 동적
느낌을 준다.
2. 고전 양식의 사용
고전적인 형태가 사용되지만 그 의도는 매우 다르며 장식적인 목적 만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지지대로 기둥 등 건축 구조물을 사용했으니 바로크는 장식으로 구부러진 기둥을
사용하였고, 르네상스 건축의 대칭을 유지했습니다.
3. 금고와 돔의 사용
종교적인 사원 및 토목 공사의 다양한 건축에서는 궁전 외에도 돔과 둥근 천장을 사용했고, 타원형을 좋아했다.
4. 또 다른 특성은 조각, 회화와 같은 다른 미술이 구현되어 착시를 만드는 큰 본당이 있는 건축 작품의
풍부한 창문입니다.
5. 풍부한 장식 요소로 부조를 만들었다.
6. 조경의 일부로 정원을 구현하고, 대부분의 종교적인 모티브가 있는 천장과 벽에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건축물 내부를 장식하는 것은 바로크 건축에서 볼 수 있다.
7. 영성에 대한 탐구 - 바로크 건축을 통해 그는 많은 종교 사원 건축으로 인해 가톨릭 교리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
1. 로마의 트레비 분수
2. 바티칸이 성 베드로 성당
3.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
=====> 19세기
다음 글은 19세기 문화를 나타낸다.
*신사(gentleman)는 누구인가
빅토리아 시기(19세기의 64년 간 통치)에는 기존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도덕주의를 내세웠다. 도덕주의의 중심 태도는 ‘체면’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행동하는 것이 체면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육체적인 욕정을 느낀다. 욕정을 비도덕이라하여 ‘금기’시 하였다. 욕정을 억누르므로 명예를 지키고, 존경받을 수 있다. 명예를 지키는 방법인 것이다. 남자는 강하고 거칠어야 한다는 의식도 가졌다. 눈물을 보이거나, 감성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은 남자다움이 아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도덕주의는 자신을 도덕적 위선, 정치적 위선, 종교적 위선에 빠지게 하였다. 도덕주의에 빠져 있는 인간상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아니고, 신사로 박제된 모습을 보인다. 도덕주의적이고, 남자다운 인간이 젵틀맨이다.
젠틀맨에 상응하는 여인상(lady)은 현모양처 형이다. 여자들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았다. 교과로는 음악, 사생, 가사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가장 인기있는 책은 비턴의 ‘가정 관리서’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상당했다. 소설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나는 인형의 집에 갇혀 지내는 인형보다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말은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유능한 인간이 되고 싶다. 는 이 시대 여인들의 사회분위기르 나타낸 말이디.
다시 말하자면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층은 18세기에 퍼져 있던 신사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농민이나 공 장 노동자는 살아가는데 체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 신사(gentleman)는 신분(gentry)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신분에서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신사가 되기 위한 조건에 여자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버지의 권위가 한껏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남을 의식한다는 체면은 공중도덕으로 발전하였다. 공중도덕으로 발전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일이 더욱 복잡해졌다. 질서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아지면서, 경찰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런던에서 19세기에 처음으로 경시청을 설립하였다. 무기가 아닌 경찰봉으로 질서를 유지했다.
이것은 체면 의식이 공중도독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바로크 음악 Baroque music)
(*음악은 제가 모르므로 생략합니다. 어느 분이 설명해주시면 고맙고, 고맙겠습니다.)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한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르네상스 음악의 다음 시대이며, 갈랑 양식이라는 잠깐의 과도기를 거친 뒤 고전주의 음악이 이어진다.
정치적으로는 절대주의 왕정으로부터 계몽주의로 이행을 볼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 철학사적으로는 합리주의적·계몽주의적인 사조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음악은 통주저음의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의 시대를 '통주저음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바로크 음악은 '정서론' 즉 '음악의 궁극목적은 음과 음의 리듬, 멜로디, 하모니, 음정 등으로 모든 정서를 자아내는 데 있다'고 하는 독특한 타율적 미학관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통주저음 기법 - [음악 ] 주어진 숫자가 딸린 저음 위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보충하면서 반주 성부를 완성하는 기법. 유럽에서 17~18세기에 널리 쓰였다.
화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인 통주저음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통주저음을 보고 하프시코드, 파이프 오르간, 류트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보이싱을 하여 베이스라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하프시코드 — 건반악기이며, 현악기 소리도 낸다.
피아노의 사촌 쯤 된다.
* 류트ㅡ - 키타와 유사하며, 줄은 여러 종류가 있다.
(모두 옛날 악기임으로, 현재는 이 악기보다 개량악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음악 양식으로는
모노디(화음 반주만 가지고, 그 이외의 무대장치나 행위 등은 일체 없이 단일 멜로디만 사용하는 음악 양식이다.) 통주저음, 오페라. 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종교적 제재로 일체 장치 없이 오로지 음악만을 연주하는 것) 등이 있다.
바로크 음악의 작곡자는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아
비발디 — 사계, 작품 1-4번
헨델 -- 메시아 등
**절대왕정 시대의 축제와 생활
.1. 가족축제 — 결혼식과 세례식이 가장 큰 가족 축제이다
장례식
2. 민중축제 — 새해, 사육제, 오월제, 하지의 횃불놀이 등
에로틱한 모습이 있다.(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축제로서
민속이 되어 있다. 민중은 음탕하게 춤추고, 노래한다.)
3. 춤과 놀이
고대의 춤은 윤무이고,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하여 종교적 의미가 있다.
절대왕정시대는 개인의 춤이 유행한다.
새로운 양식이 나타난다.(미뉴에트, 알망트, 왈츠 등), 육욕적이며, 남녀가
마주 보고 추는 양식이며, 스커트를 휘날리며, 감각적이다.
(*미뉴에트는 정해진 규칙에 맞추어서 추며,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최고의
예술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절대왕정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다.)
4. 연극
연극은 구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오락이었다.
부르주아지는 연극을 통해서 절대주의에 대한 저항을 나타냈다.(표현의
자유, 말의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통해서 마구 뱉아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도 탈춤을 통해서 비판적인 말을 쏟아냈다.)
--> 말에는 관객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 호색적인 말도 많았다.
여배우가 무대에 등장한다. --영국에서 첫 등장은 1660년 대이다.
어릿광대도 인기가 높았다.(웃음 선사)
==> 품위 있는 귀부인이 극장에 오도록 하기 위해서
간막이 장치와, 마스크를 제공했다.(영화에서 귀부인이 안경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외설적인 내용이 하층민을 위한 오락이 아니고
오히려 상층민이 즐기는 오락이 되었다.
5. 오페라와 발레
오페라는 노래, 음악, 의상, 화려한 무대 장치와 자극적 색상을 활용하여
최대의 환락적 가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발레도--, 발레 감독이 왕실(주로 왕)에 뚜쟁이 역할도 했다고 한다.
6. 살롱의 등장
뒤에 아주 상세히 공부하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