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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우환(識字憂患)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된다는 말이다.
識 : 알 식(言/12)
字 : 글자 자(子/3)
憂 : 근심 우(心/11)
患 : 근심 환(心/7)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대로 지식이 해가 될까? 이것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몰라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을 남겼다.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간혹 있겠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을 때 한탄하는 것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이 성어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북송(北宋)의 대표적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란 시의 첫 구절에 바로 시작한다.
人生識字憂患始 姓名麤記可以休.
인생식자우환시 성명추기가이휴.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설명하는 내용은 이렇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삼고초려(三顧草廬)로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군사(軍師)가 서서(徐庶)였다.
그는 조조(曹操)가 탐을 내는 인물이었는데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계략을 썼다.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 위(衛)부인이 위독하다는 가짜편지를 보냈다.
영문을 모른 위부인은 아들이 돌아오자 자기 필체를 위조한 계락인 것을 알고 통탄했다. 나중에 서서가 조조 진영으로 간 것을 알고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라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근본 원인(女子識字愚患/ 여자식자우환)’이라 했다.
위부인의 말을 인용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가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실제는 원본에 없는 내용이 번역소설에 재미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보다 울분에 차지만 더 멋진 사용처가 있다. 조선 말기 우국지사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3수에 나오는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란 절절한 구절을 남겼다.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추등엄권회천고 난작인간식자인.
식자우환(識字憂患)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 ②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음을 이름 ③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출전 :
삼국지(三國志)
소동파(蘇東坡)의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
속담 :
모르는 것이 부처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
무자식이 상팔자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친다는 말로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식자(識字)는 ‘글자를 안다’는 뜻이고, 우환(憂患)은 ‘근심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즉 글자를 알게 되어 근심을 얻는다는 말로, 아는 만큼 근심거리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서서(徐庶)의 어머니 위부인(衛夫人)이 조조(曹操)에게 속고 한 말에 여자식자우환(女子識字憂患)이라는 말이 있다.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얻기 전에는 서서가 군사(軍師)로 있으면서 조조를 괴롭혔다. 어떻게해서 든 서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조조는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가지 계획을 꾸몄다.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의 영역인 위(魏)나라에 있는 것을 이용해 그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의리를 아는 여장부여서 오히려 한 군주를 잘 섬기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형편이었다.
조조는 모사 정욱(程昱)의 계책에 따라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내어 급히 魏나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서서에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위부인은 깜짝 놀라 까닭을 물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필체를 본뜬 가짜편지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글자를 안다는 게 근심거리를 부르는 원인이 되는구나(女子識字憂患).'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들이 어느 것 하나 우환의 시초가 아닌 것 없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기 쉽고, 나무에 잘 오르는 사람은 떨어져 죽기도 쉬운 법이다.
또한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란 詩에서 소동파(蘇東坡)도 이렇게 읊고 있다.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
소식(蘇軾)
人生識字憂患始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姓名麤記可以休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
何用草書誇神速
어찌하여 초서를 배워서 빠른 것을 자랑하여
開卷惝怳令人愁
책을 펴면 당혹하게 사람을 근심하게 만드는가
我嘗好之每自笑
나도 일찍이 놓아는 하나 매변 스스로 웃노니
君有此病何能瘳
그대도 이 병이 있으니 어찌 고치겠는가
自言其中有至樂
이 속에 지극한 즐거움 있다고 스스로 말하여
適意不異逍遙遊
마음대로 되는 것이 소요의 세계와 같다고 하는구나
近者作堂名醉墨
요즈음 지은 집을 취묵당이라 이름지었으니
如飮美酒消百憂
좋은 술 마신 것처럼 온갖 근심 사라진다는 뜻과 같으리라
乃知柳子語不妄
유자의 말이 허탄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노라
病嗜土炭如珍羞
병들면 흙이나 숯이 산해진미보다 좋다는 것을
君於此藝亦云至
그대는 이 예술에 지극하다 말할 수 있나니
堆牆敗筆如山邱
버린 붓 담장에 쌓은 것이 산처럼 많도다
興來一揮百紙盡
흥이 일어나 한번 흰 종이에 휘두르면
駿馬倏忽踏九州
준마가 잠깐 사이에 천하를 밟고 지나간 것 같도다
我書意造本無法
나의 글씨 법도 없이 쓴 글이라
點畫信手煩推假
마음대로 쓴 점과 획을 번거롭게 추천하고
隻字片紙皆藏收
글씨 하나 종이 한 조각 모두를 거두어 두는가
不減鍾張君自足
종요와 장지에 못하지 않은 그대는 스스로 충분하지만
下方羅趙我亦優
나도 이제야 아래로 나휘와 조습보다는 나으리니
不須臨池更苦學
못가에 나가 애써 배울 필요는 없도다
完取絹素充衾裯
비단 전부 가져다가 이불이나 말들어 채우리라
석창서(石蒼舒)는 송대(宋代)의 뛰어난 서법가이다. 해서와 초서에 남다른 조예를 보였다. 그의 집에 취묵당(醉墨堂)이라는 재실이 있었다. 소식(蘇軾)이 이를 보고 조롱조로 지은 제시(題詩)가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근심도 그만큼 많이 하게 되는 것, 또는 어줍잖은 지식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국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금언이 배우는 사람을 분발 시키지만,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자고 문자를 만들어 냈으나,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문자의 역기능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글자로 해서 불행을 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만이 지니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은 이래서 생겨난 것이니, 사람이 문자를 알게 되면 걱정이 따른다는 뜻이다.
서양 속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과 동양의 격언인 ‘아는 게 오히려 근심이다’라는 뜻의 식자우환 이라는 말은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맥상통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제대로 알아야 힘이 되는 것이지 섣불리 안다고 자신하는 것은 오히려 근심을 낳는 근본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보석과 같은 재물보다는 배움이 더욱 값진 보물이다.
아주 호화로운 여객선이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객선에 탄 손님들은 모두 큰 부자였습니다.
손님들은 갑판 위에서 제각기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보석이 훌륭하고 많음을 말했고 그 뿐만 아니라 직접 보석상자를 열어 보였습니다.
이 손님들 가운데 랍비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들보다 자신이 훨씬 부자라고 말했습니다.
한 손님이 놀라서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이에 랍비는 물론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 재산을 보여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말에 그냥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해적이 습격해 왔습니다. 손님들은 깜짝 놀라서 선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해적들은 배로 올라와 손님들의 보물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고 그배는 겨우 어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재산을 빼앗긴 손님들과 랍비도 그곳에 내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항구 사람들은 랍비가 높은 교육을 받은 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랍비는 선생님이 되었고 생활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얼마후에 랍비는 우연히 여객선에 탔던 손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자였던 그들은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가난뱅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랍비에게 그때 랍비가 한 말이 과연 틀림이 없고 그야말로 정말 부자이며 배워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재물 많은 부자보다 더욱 부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보물이라고 하면 金, 銀, 보석과 같은 재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재물은 이 글에서와 같이 도둑을 맞거나 잃어 버리기가 쉽고 잃어버린 후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반면에 공부를 하여 얻은 지식은 천하에 도둑도 그 주인으로부터 빼앗아 갈 수가 없고 그 주인은 도난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다. 따라서 배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값진 보물인 것이다.
속담에 ‘모르는 것이 부처’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앎으로 해서 오히려 더 걱정이 되고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쓰는 말이다. 몰랐다면 부처님처럼 마음이 편했을텐데 말이다.
살다보면 하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말로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다’라는 말도 있다.
옛날 한 선비의 장인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선비는 동네 사람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오지장인(吾之丈人)을 남산지호(南山之虎)가 착거(捉去)하니 유창자(有槍者)는 지창이래(持槍以來)하고 유궁자(有弓者)는 지궁이래(持弓以來)하라. 무창무궁자(無槍無弓者)는 지봉이래(持捧以來)하라.
나의 장인을 남산 호랑이가 물고 가니 창있는 사람은 창들고 나오고 활있는 사람은 활을, 창도 활도 없으면 몽둥이라도 들고 나오라는 소리다.
동네 사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선비는 화가 나서 관에 고발했다. 관에서 알아보니 선비의 잘못이라 거꾸로 그를 가두었다. 아내가 먹을 것을 싸들고 감옥을 찾았는데 창이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았다.
선비가 가로되, 여수(汝手)가 단(短)커든 아수(我手)가 장(長)커나, 아수(我手)가 단(短)커든 여수(汝手)가 장(長)커나, 고창(高窓)이 적(敵)이로다.
네 손이 짧거든 내 손이 길든지, 내 손이 짧으면 네 손이 길든지, 높은 창구멍이 원수로다.
관이 그 꼴을 보고 볼기를 쳤다. '아야둔야(我也臀也)!' 아이고 엉덩이야! 도저히 구제불능이라 官도 두 손 들고 풀어준다. 앞으로는 문자로 말하지 말라.
선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후일에는 불용문자(不用文字)하리다.' 어쭙잖게 문자 쓰는 것을 비꼰 이야기다.
고을 원(院)이 식자우환이라고 탄식 했다는데, 여기에도 야유가 담겨 있다. 우리 속담으로 ‘아는 게 병’이라고 하면 쉬운데 꾸짖는 원님까지도 굳이 문자를 들먹이는가. 둘다 식자우환이긴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19세기 시인이며 비평가인 메슈 아놀드는, '교양이란 이 세상에서 생각해 낸 가장 좋은 것들을 알고 배우고, 그리고 또다시 세상에 펼치려는 노력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편 20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에마뉘엘 뮤니에는 교양에 대하여 ‘어떠한 영역에 있어서도 교양은 지식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주체의 심오한 변혁에 있는 것으로서 그 변혁이야말로 당사자로 하여금 많은 내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보다 많은 가능성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즉, 교양이란 한 인간이 일체의 지식을 잃은 후에도 남는 인격,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흔히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낫고 많은 것을 알아두어서 손해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이 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지식의 외면적 효용성 만으로는 사실이지만 바로 그러한 지식의 축적이 자기 주체에 대한 내면적 상실을 초래하여 소위 식자우환, 아는 것이 병이 된다면 야단이 아닐 수 없다.
연전(年前)에 세계적 사상서로 유명하던 알렉시스 카렐의 '인간 그 미지의 것'에는, 오늘의 과학이 인간을 더욱 무엇인지 모르도록 분열시켜놓았다고 지적하면서 오늘의 우리 인간은 기계문명의 중압과 인쇄물의 범람, 물질과학의 만능시, 기술시대가 가져온 인간의 도구화로서 자기의 존재나 본질에 대하여, 첫째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과거 종교나 관념철학이 정립하였던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일제히 붕괴되고 분열되어 버렸다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재건을 위하여는 현재 생활에서 마비되고 위축된 지능의 방향을 전환하고 그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저러한 교양의 외면적 중독자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뮤니에 선생의 말대로 그 인간에게서 지식을 빼놓으면 남는 인격이나 인간성이 없는 교양인들이 득실거린다.
이러한 아놀드적 교양인들의 발호가 우리 사회의 가치 질서를 확립하는 데 가장 장애적 요소임을 두말할 것도 없다.
▶️ 識(알 식, 적을 지, 깃발 치)은 ❶형성문자로 识(식)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戠(시, 식)으로 이루어졌다. 말(言)로 듣고 알게 된다는 뜻으로 알다를 뜻한다. 본디는 戠(시)이라고만 써서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내었으나 나중에 말뚝은 樴(직)이라 쓰고, 안표(眼標)가 되는 깃발은 幟(치)라고 쓰며, 그 밖에 職(직)과 織(직) 따위의 글자가 생기고, 안표(眼標), 알다란 뜻의 경우는 말씀언변(言)部를 붙여 識(식)이라고 쓴다. ❷회의문자로 識자는 ‘알다’나 ‘지식’, ‘표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識자는 言(말씀 언)자와 戠(찰흙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戈(창 과)자에 깃발이 걸려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긴 창이나 막대기에 깃발을 매달아 부대나 종족을 구별했었다. 識자에 아직도 ‘깃발’이나 ‘표시’라는 뜻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識자는 본래 이러한 표식을 그렸던 것이지만 후에 言자와 音(소리 음)자가 차례로 추가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말(言)과 소리(音)를 통해서도 식별한다는 뜻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識(식)은 (1)사물의 시비(是非)를 판단하는 작용 (2)오온(五蘊)의 하나. 사물을 인식, 이해하는 마음의 작용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지식(知識) ③식견(識見) ④친분(親分) 그리고 적을 지의 경우는 ⓐ적다(지) ⓑ기록하다(지) ⓒ표시하다(지) ⓓ표지(標識: 표시나 특징으로 다른 것과 구분함)(지) 그리고 깃발 치의 경우는 ㉠깃발(旗-)(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지(知), 알 인(認)이다. 용례로는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사물의 성질이나 종류 따위를 구별함을 식별(識別), 사람이 지니고 있는 학식이나 견문이나 도량을 식량(識量), 학식이나 상식 따위가 있는 사람을 식자(識者), 학식과 사람을 잘 알아보는 감식력을 식감(識鑑), 어떤 의식 작용의 생기와 소실과의 경계를 식역(識閾), 견식이 있고 사물의 도리에 밝음을 식달(識達), 학식과 덕행을 식덕(識德), 견식과 도량을 식도(識度),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을 식력(識力), 마음과 영혼을 식신(識神), 일식 또는 월식 때에 해 또는 달이 제일 많이 가리워진 때를 식심(識心), 어떤 순간에 있어서의 의식 경험의 전 범위를 식야(識野),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을 인식(認識), 생각이 미치어 대상으로서 알거나 깨닫거나 느끼는 것을 의식(意識), 어떤 대상을 연구하거나 배우거나 또는 실천을 통해 얻은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지식(知識), 일반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보통의 지식을 상식(常識), 양심적인 지식과 판단력을 양식(良識), 감정을 하여 식별함을 감식(鑑識), 많이 알고 있음을 다식(多識), 배우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음을 무식(無識),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을 식자우환(識字憂患),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듣고 보고 한 것이 적고 지식이 얕음을 과문천식(寡聞淺識),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다문박식(多聞博識) 등에 쓰인다.
▶️ 字(글자 자)는 ❶형성문자로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아들자(子; 어린 아이)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한 집안에 자손이 붇는 일을 말한다. 옛날에는 글자를 名(명) 또는 文(문)이라 알컫다가 진(秦) 나라의 시황제(始皇帝) 때 쯤부터 문자(文字)라는 말이 생겼다. 字(자)는 文(문자)과 文(문)이 합(合)하여 마치 사람의 가족이 붇듯이 계속하여 생기는 글자라는 뜻이다. 나중에는 글자 전부를 字(자)라 일컬었다. ❷회의문자로 字자는 '글자'나 '문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字자는 宀(집 면)자와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宀자는 지붕을 그린 것이기에 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이렇게 집을 뜻하는 宀자에 子자가 결합한 字자는 '집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字자에 아직도 '기르다'나 '양육하다'는 뜻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진시황 때부터 字자를 '글자'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문자(文字)'와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字(자)는 (1)글자 (2)글자의 뜻으로, 그 수효(數爻)를 나타내는 말 (3)사람의 이름을 소중히 여겨 본 이름 외에 부르기 위하여 짓는 이름 흔히 장가든 뒤에 본이름 대신으로 부름 등의 뜻으로 ①글자, 문자(文字) ②자(字: 이름에 준하는 것) ③암컷 ④기르다, 양육하다 ⑤낳다 ⑥사랑하다 ⑦정혼(定婚)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글자의 음을 자음(字音), 활자를 부어 만드는 원형을 자형(字形),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많은 한자를 모아 낱낱이 그 뜻을 풀어놓은 책을 자전(字典), 글자와 글귀를 자구(字句), 글자의 근본 원리를 자학(字學), 글자의 새김을 자훈(字訓), 글자가 구성된 근원을 자원(字源), 영화에서 표제나 배역이나 설명 따위를 글자로 나타낸 것을 자막(字幕), 글자를 쓰는 법칙을 자격(字格), 글자와 글자 사이를 자간(字間), 글자의 모양을 자체(字體), 글자의 수효를 자수(字數), 활자의 대소를 나타내는 번호를 자호(字號), 수지 결산에서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일을 적자(赤字), 중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한자(漢字), 수를 나타내는 글자를 숫자(數字), 같은 문자를 동자(同字), 세간에서 두루 쓰이는 문자로서 정식의 자체가 아닌 한자를 속자(俗字),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옛 글자를 고자(古字), 한문 글자의 획수가 많은 것을 쉽게 줄여서 쓰는 글자를 약자(略字), 잘못 쓰이고 있는 글자를 와자(譌字), 둘 이상의 글자를 모아서 만든 글자를 합자(合字), 낱자를 늘어놓은 차례를 자모순(字母順), 수령을 달리 일컫는 말을 자목지임(字牧之任),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을 이르는 말을 식자우환(識字憂患),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발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름 또는 그 글자를 일컫는 말을 동음이자(同音異字), 한 글자의 값어치가 천금이다는 뜻으로 지극히 가치 있는 문장을 말함 또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맥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일자천금(一字千金),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함을 이르는 말을 대자특서(大字特書), 미인의 고운 눈썹을 비유 형용하는 말을 팔자춘산(八字春山), 글씨를 쓰다가 그릇 쓰거나 글자를 빠뜨리고 씀 또는 그러한 글자를 일컫는 말을 오서낙자(誤書落字), 주견이 없이 남의 말을 좇아 이리저리 함을 이르는 말을 녹비왈자(鹿皮曰字), 글씨에 능한 사람은 정신을 들이지 아니하고 붓을 던져도 글씨가 잘 된다는 말을 투필성자(投筆成字), 한 글자를 가르친 스승이라는 뜻으로 시나 문장의 한 글자를 바로잡아 주어 명문이 되게 해준 사람을 존경해 이르는 말을 일자지사(一字之師), 팔자에 의해 운명적으로 겪는 바를 일컫는 말을 팔자소관(八字所關) 등에 쓰인다.
▶️ 憂(근심할 우)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자(本字)는 頁(혈)과 心(심)의 합자(合字)이다. 머리가 위에서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는 뜻에서 근심하다를 뜻한다. 또는 뜻을 나타내는 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우)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憂자는 '근심'이나 '걱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憂자는 頁(머리 혈)자와 冖(덮을 멱)자, 心(마음 심)자, 夂(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니 憂자는 사람의 머리부터 심장, 발까지가 묘사된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憂자의 구조를 보면 머리와 발 사이에 心자가 있어 마치 큰 머리가 심장을 짓눌르는 뜻한 모습을 하고 있다. 憂자는 '근심'을 뜻하기 위해 이렇게 심장이 압박받는 모습으로 그려진 글자이다. 그래서 憂(우)는①근심, 걱정 ②병(病), 질병(疾病) ③고통(苦痛), 괴로움, 환난(患難) ④친상, 상중(喪中) ⑤근심하다, 걱정하다, 애태우다 ⑥고생하다, 괴로워하다 ⑦두려워하다 ⑧병을 앓다 ⑨가엾게 여기다 ⑩상제(喪制)가 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근심 없을 개(恝), 근심할 양(恙), 근심 환(患), 근심 수(愁)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을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을 우려(憂慮), 마음이 어둡고 가슴이 답답한 상태를 우울(憂鬱), 근심이나 걱정되는 일을 우환(憂患), 근심이나 우울과 수심을 우수(憂愁), 나라의 일을 걱정함을 우국(憂國), 시름하고 한탄함을 우한(憂恨), 근심하고 두려워함을 우구(憂懼), 근심하고 고민함을 우뇌(憂惱), 근심하고 개탄함을 우개(憂慨), 근심하여 슬피 욺을 우곡(憂哭), 근심스럽고 괴로움을 우군(憂窘), 근심스러워서 어찌 할 바를 모름을 우황(憂惶), 근심하고 괴로워함을 우고(憂苦), 근심과 즐거움을 우락(憂樂), 백성의 일을 근심함을 우민(憂民), 근심과 슬픔을 우비(憂悲), 근심하는 빛을 우색(憂色), 세상일을 근심함을 우세(憂世), 나라 일을 근심하고 충성을 다함을 일컫는 말을 우국진충(憂國盡忠), 시름하는 마음이 심함을 일컫는 말을 우심유유(憂心愈愈), 나라 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참된 심정을 일컫는 말을 우국지심(憂國之心), 세상일을 근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우세지사(憂世之士), 시름하여 마음이 술에 취한 것처럼 흐리멍텅함을 일컫는 말을 우심여취(憂心如醉), 근심과 걱정과 질병과 고생을 일컫는 말을 우환질고(憂患疾苦), 기나라 사람의 군걱정이란 뜻으로 곧 쓸데없는 군걱정이나 헛 걱정이나 무익한 근심을 이르는 말을 기인지우(杞人之憂),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을 이르는 말을 식자우환(識字憂患),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뜻으로 지사志士나 인인仁人의 마음씨를 일컫는 말을 선우후락(先憂後樂), 내부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부로부터 받는 근심이란 뜻으로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태를 이르는 말을 내우외환(內憂外患), 병이 들어 나무를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기의 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채신지우(採薪之憂), 이 시름을 잊는 물건이라는 뜻으로 술을 이르는 말을 차망우물(此忘憂物),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칠실 고을의 근심이라는 뜻으로 제 분수에 맞지도 않는 근심을 이르는 말을 칠실지우(漆室之憂), 밤낮으로 잊을 수 없는 근심이라는 뜻으로 깊은 근심이나 묵은 근심을 이르는 말을 숙석지우(宿昔之憂),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 또는 술을 마시면 근심 걱정을 잊게 된다는 데서 온 말을 망우지물(忘憂之物), 어진 사람은 도리에 따라 행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근심을 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자불우(仁者不憂), 보는 것이 탈이란 뜻으로 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으면 그만인데 눈으로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우환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견물우환(見物憂患) 등에 쓰인다.
▶️ 患(근심 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괴로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串(관, 환)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患자는 '근심'이나 '걱정', '질병'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患자는 串(꿸 관)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串자는 사물을 꿰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물건을 관통하는 모습을 그린 串자에 心자가 결합한 患자는 꼬챙이가 심장까지 관통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근심은 마음을 짓누르는 병이다. 병이 들거나 근심 걱정이 생기면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되니 이렇게 심장을 꿰뚫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 患자는 '근심'이나 '질병'을 뜻한다. 그래서 患(환)은 환난(患難), 마음에 걱정이 생기는 근심의 뜻으로 ①근심, 걱정 ②병(病), 질병(疾病) ③재앙(災殃) ④근심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 ⑤미워하다 ⑥앓다, 병에 걸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근심 없을 개(恝), 근심 수(愁), 근심 우(憂)이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근심과 걱정을 환난(患難), 병이나 상처가 난 곳을 환부(患部), 앓는 사람이 있는 집을 환가(患家), 근심과 재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환란(患亂), 근심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환고(患苦), 가난함을 걱정함을 환빈(患貧), 앓는 자리를 환소(患所), 병 또는 근심과 걱정을 환우(患憂), 앓는 부위를 환처(患處), 환난으로 생기는 해로움을 환해(患害), 병든 가축을 환축(患畜), 웃어른의 병을 높이어 일컫는 말을 환후(患候), 환난이 생겼을 때 서로 도와 주는 것을 이르는 말을 환난상휼(患難相恤), 이익이나 지위를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근심하고 얻은 후에는 잃을까 해서 걱정한다는 뜻으로 이래저래 근심 걱정이 끊일 사이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환득환실(患得患失), 병이 나아 평상시와 같이 회복됨을 일컫는 말을 환후평복(患候平復),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된다는 말을 식자우환(識字憂患), 내부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부로부터 받는 근심이란 뜻으로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태를 이르는 말을 내우외환(內憂外患), 범을 길러 화근을 남긴다는 뜻으로 은혜를 베풀었다가 도리어 해를 당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양호후환(養虎後患), 도둑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근심을 일컫는 말을 절발지환(竊發之患), 보는 것이 탈이란 뜻으로 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으면 그만인데 눈으로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우환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견물우환(見物憂患)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