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있는 청년은 강으로 간다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 시집, '자명한 산책', 문학과 지성사, 2003.
A 왈
나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고, 그 뜻을 왜곡하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나의 아내, 부모님, 형제, 가장 친한 친구 한 두명.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를 받아들인다.
B 왈
너는 행복한 녀석이야, 그만 하면 됐지 뭘 더 바란단 말이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목록에 아내, 부모님, 형제, 가장 친한 친구도 포함시킬 수 없는 사람도 있단 말이다.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는 시인의 말이 아니어도 나도 이제 더 이상 토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철이 들었다. '직접 강에 가서'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강은 너무 멀고, 영화 “화양연화”에서 앙코르와트 사원의 오래된 돌 틈에 이야기를 남기고 흙으로 막았던 양조위 처럼 이곳(인터넷 댓글)에 몇 줄 이야기로 끄적이고 말 뿐.
C 왈
그래, 너와 눈도 마주치지 아니하고 나는 직접 그 멀리 있는 강으로 갔다. 그리고 잡초 무성한 강 언덕 길로 돌아오는 길, 영원과 맞닿아 있는 너의 눈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