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부산광역시에서1962년 2월 26일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
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운동 등 특별히 잘 하는게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안철수(安哲秀, 1962년 2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의사, 프로그래머, 벤처 사업
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0년에는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을 컴퓨터를 처음 접하였고 이후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1991년 《토끼 단일 심방근 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이라는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돈벌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7년 동안
모아놓은 모든 백신 자료들을 가지고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
하려고 정부 부처를 다니며 관계자들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특히 삼성 소프트웨어 관련에도 찾아가 삼성 로고를 달고 배포한다고 약간의 돈과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안철수는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간은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자신이 월급을 받지 않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
보통 CEO들은 회사를 창립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반면에
안철수는 회사를 창립한지 몇 개월 만에 유학을 갔다. 그후 한국에 남은 직원들이
2년 동안 회사를 열심히 키운 덕분에 안철수가 미국 유학 중 1997년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에게 1000만 달러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갔다. 보통 재벌그룹 회장 정도가 되면 직접
발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당시 인수에 의욕을 가졌던 맥아피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하며 인수를 제안했으나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에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또한 한국의 백신이 맥아피같은 해외 업체에 의해 장악당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안철수는 2000년에도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 125명에게 각각 650주씩, 자신의
지분에서 총 8만주 (전체 발행 주식수의 1.5%)를 나눠준 바 있다.
그는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개인적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딸도 미국에서 유학했는데 그 이유는 안철수의 부인이 나이 마흔에 ‘법’을 배우고
싶다며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유학을 갔기 때문이었다.
2005년에는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2005년 3월까지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의한 적도 있고,
참여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으며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등 종류별로 다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2010년 6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로 선임되었다.
이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뒤,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을 맡았다. 차세대융합기술원장 직은 2011년 10월 28일
사임했다.
간호사와 안철수연구소 직원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처럼 사회적인 지위가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과 가족에게도 존댓말을 쓴다는 점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안철수는 부부싸움을 하느냐는 질문에 “존댓말로 한다”며 “어린 시절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쓰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안철수에게 매번 존댓말로 대해주었으며 혼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동안 어머니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늦잠을 자서 택시타고 등교할 때 어머니가 “학교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자 택시
기사가 처음에는 사촌이나 친누나로 착각하고 “누나가 참 착하네요” 라고
하였으나 후에 어머니라고 밝히면서 “어떻게 어머니가 존댓말을 할 수 있느냐”
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의 존댓말이 평범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직원들이나 남들 앞에서 화를 내본 적도 한 번도 없으며 욕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2011년 중순부터 최측근으로 알려진 의사 전국을 박경철과 함께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했다.
2011년 11월 14일 안철수는 자신의 안철수연구소 주식 37.1%의 절반을 저소득
가정의 자녀 교육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12월 9일
기준으로 그가 기부할 주식의 가치는 약 2500억 원이다.
2012년 9월 6일 오후 4시에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 동안의 대화 끝에 박원순
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하였다.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고 자신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따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범을 보이지 않고 강요
한다면 아이들은 책읽는 흉내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독서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선 부모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내가 생각할 때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다. 한나라당은 응징을 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한다”라며 “그럼 답은
명료하다.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
그는 또 “나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인) 1970년대를 경험했다.
(현 집권세력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거 거꾸로 갈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문제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교육문제에 대해서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와의 1:1 가상대결에서 43.2%를 기록해 40.6%를 기록한 박근혜를 이겼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박근혜가 차기 대선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59.0%, 박근혜 32.6%로 나와 차이가 더 벌어졌다.특히 야권 후보들 중에는 지지율 31%를 기록해 2위를 차지한 문재인(16%)
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안철수는 강력한 추진력과 기업가 정신, 도덕성, 차분한 성격, 성공한 사람으로
써는 드물게 겸손한 이미지로 기존의 기득권층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어 젊은이
들의 가장 대표적인 멘토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교수직에 임하면서 동시에 박경철과 함께 ‘청춘 콘서트’라는 강의를
해오고 있다.
안철수 힐링 캠프출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23일 밤 11시15분 <에스비에스>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다. 녹화는 지난 18일 이뤄졌다. |
첫댓글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도자감으로 0순위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