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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침으로 남침을 유도한것은 왜놈 이승만과 미국이다?
묵셔가 =멕시코
고종때 조선같이 인구가 많은나라가 없다? ㅡ 조선본토는 어디?
한반도가 조선이라면 브라질 인구를 알수가 있나?
45년 2월 얄타회담때 딥스 두목지시로
유대인 대통 미영소가,
전범 왜놈대신 한반도 분단시키고 전쟁하기로 약속.
미국이 8월 9일 가짜 일본에 원폭 투하후,
지도보고 38선을 그어 소련에 제시하여 서로 합의.
▲ 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부 국기 게양대에 걸린 일장기가 성조기로 교체되는 사진.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로 교체? ㅡ 남한을 식민지 만들기 시작?)
주한미군이 2020년 9월 9일 공개했다.
45년 9월 8일,
남조선을 점령한다는 맥아더 포고령 발표후,
조선총독부 건물에 일장기 내리고,
태극기 대신 성조기 게양후 남조선을 식민지 만들기 작업 시작?
맥아더 포고령
제1조 -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정부의 모든 권한은
당분간 나의 관할을 받는다.
제2조 -
정부의 전 공공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기능 및 의무 수행을 계속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제3조 -
모든 사람은 급속히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권한하에 발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부대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혹은 공공의 안녕을 방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제4조 -
제군의 재산권을 존중하겠다.
제군은 내가 명령할 때까지 제군의 정상적인 직업에 종사하라.
제5조 -
군사적 관리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목적을 위하여서 영어가 공식언어이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혹은 일본어 원문 간에 해석
혹은 정의에 관하여 어떤 애매한 점이 있거나
부동한 점이 있을 시에는 영어 원문에 따른다.
제6조 -
추후 포고, 포고규정 공고, 지령 및 법령은
나 혹은 나의 권한하에서 발표되어 제군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구체화할 것이다.
1945년 9월 7일
소련군은 북한에 들어갔지만,
김일성이 6개월만에 돌려보냄?
맥아더 포고령 1조에.. 당분간 나의 관할을 받는다고 나옴?
80년이 당분간이나?
좌우합작으로 통일하자는 여운형이
이승만보다 인기가 높아지자 47년 암살.
남한 단독선거 반대해서 제주도민이 반대시위하자,
제주 4.3 사건 일으켜 수만명 학살후,
제주를 제외하고 선거후,
대선 안하고,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한 졸개 이승만을,
미국 식민지 남조선 대통에 임명한후부터,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
이후 북진통일한다고 3000회 북침으로 북한주민들 학살하자,
김일성이 참다못해 스탈린 허락받아
50년 6월 23일 밤 10시.
이승만 체포 서울시민 해방작전 시작.
남침으로 조작하기위해 장병 50%를 휴가와 외출허용.
일부러 서울점령 당함.
물론 왜놈 이승만은 세벽에 한강다리 폭파후 대전으로 도망침.
김일성은 할수없어 3일간 머물면서 작전을 짜서
이승만 잡으로 남진.
미군은 일부러 부산까지 후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왜국에 있던 맥아더가 몰래 인천을 시찰후,
49년부터 미리 부산에 반입시킨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약속대로 유대인 스탈린이 거부권 행사안해,
맥아더가 유엔군을 끌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시킴.
이때 김일성이 스탈린한테 속앗다고 깨달음.
6.25는 미소가 서로 이길려고 한 전쟁이 아님.
이승만이 반민특위 해체하여 친일파 처벌 한명도 못하도록 만듦.
오히러 이승만은 왜놈들 못가게 잡고
자금까지 지원해주어 한국인으로 개명한 왜놈이 130만명?
지금 몇명일까?
현재 지배층 1% 50만명 중에 왜놈이 45만명 이상?
이들 토착왜구 45만명이 지시하여 국민을 반으로 갈라 싸움붙이고
뒤로는 매년 정부 지자체 공기업 예산 각각 70%를
골수 친일파 후손인 재벌과 자기들이 챙기는것?
매년 550조가 블랙홀로 사라지고있다 ㅡ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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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침으로 남침을 유도한것은 왜놈 이승만과 미국이다?
김일성 남북연석회의 연설 육성
1948년, 평양에서는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의 명분은
남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남북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4월 19일, 이날 행사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남한의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이날 회의의 모습은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기록영화에 담겼습니다.
나머지는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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